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김치
12월이 내려앉은 친정집 마당은 올해 유난히 고요했다. 매년 이맘때면 분주히 배추를 뽑으시던 아버지의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병실 창문 너머로 겨울을 맞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올해 김장은 예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주말이 되어, 아버지를 대신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김장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도 하룻밤 묵을 짐을 챙겨 이른 아침 친정집으로 향했다. 언니네와 동생네 가족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모이자 한동안 조용했던 시골 마당은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게 느껴졌지만, 가족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그 공백을 채우려는 듯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엄마는 씩씩한 모습으로 우리를 이끄셨다. “올해도 맛있게 김치를 담자.”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아버지의 공백에서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듯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배추를 살피고, 양념거리를 챙기셨다. 그러나 가끔은 마음 한편 눌러 놓은 허전함이 튀어나오는지 “너희 아버지가 계셨다면…” 하시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엄마를 돕기 위해 더욱 열심히 움직였다.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분주하게 손발을 맞췄다. 낮에는 집 앞 텃밭으로 나가서 딱딱하게 얼어붙은 흙을 헤치며 배추를 뽑았다. 묵직한 배추를 품에 안아 나르고, 흙을 털어 손질했다. 소금물에 절이는 동안 아이들도 신발까지 흠뻑 적셔가며 작은 도움을 보탰다.
해가 저물고는 주방과 거실에서 양념 작업을 하였다. 엄마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육수를 정성껏 끓였다. 제부는 믹서기로 배와 마늘을 연신 갈아냈고, 남편은 전자저울로 재료의 무게를 맞췄다. 그 사이, 나는 작년에 아버지와 함께 작성한 블로그 김장 레시피를 펼쳐 참고하며 양념 비율을 점검했다. 거실은 금세 분주한 작은 김치공장으로 변해 깊은 밤까지 활기차게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형부와 남편이 마당 한가운데 캐노피를 설치하고 등유 난로를 피우며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되었다. 절인 배추를 깨끗한 물에 다시 씻은 뒤 캐노피 안으로 옮겼다. 제부는 분위기를 띄우려 지니에게 최신 케이팝을 틀어달라고 했다. 그날의 노동가는 로제의 ‘아파트’였다. 작업 테이블 앞에 나란히 선 언니와 나는, 양념을 덜어내어 절인 배추 한 잎 한 잎에 정성스레 버무렸다. 제부가 틀어놓은 신나는 노래 덕분에 작업 분위기가 한층 들떴다.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까지 “나도 할래!” 하며 캐노피 안으로 들어왔다. 신이 난 얼굴로 손을 보태겠다며 나섰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시작하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배추 한 포기를 붙잡고는 작은 손으로 양념을 꾹꾹 눌러 바르기 시작했다. 세 번째 맞는 김장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의 손길에서도 제법 익숙함이 느껴졌다. 자신이 만든 김치가 김치통에 차곡차곡 쌓여갈 때마다 아이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잘했지?”를 외쳤다.
늦은 오후, 마침내 70 포기에 달하는 김치 대장정이 끝났다.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갓 담근 김치와 따끈한 수육을 나누었다. 길게 찢은 김치 한 점을 입에 넣자마자 “올해 김치 잘됐네!” 감탄을 쏟아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고된 작업 끝에 맛본 김치와 수육은 그 어떤 음식보다 특별하고 값진 보상이었다.
1박 2일간 이어진 이번 김장은 단순히 겨울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었다. 가족의 손길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엮이는 과정이었다. 밭에서 배추를 뽑는 과정부터 시작된 김장은 분명 힘든 일이었지만, 서로를 도우며 웃음을 나눔으로써 그 고됨이 달게 느껴졌다. 양념이 묻을까 흘러내린 고무장갑을 살짝 고쳐 올려주거나, 묵묵히 무거운 배추를 옮기는 가족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함께 계셨다면 누구보다 흐뭇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셨을 것이다.
올해 우리 집 김치에는 깊은 정성과 따뜻한 추억이 담겼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여전히 크게 느껴지지만, 그 김치는 겨우내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특별한 끈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