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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글적글적 Nov 29. 2024

겨울날의 소소한 설렘, 붕어빵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붕어빵




  스산한 날씨가 찾아오면 따끈한 간식이 생각난다. 그럴 때 길을 걷다 우연히 주홍색 비닐로 덮인 작은 포장마차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평소 길거리 음식을 자주 먹진 않지만, 붕어빵 노점을 만나기 힘든 요즘, 붕어빵 마차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우리 동네 붕어빵 포장마차는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인도에 자리 잡고 있다. 집에서 걸으면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 근처라, 진료를 받거나 약국에 갈 일이 있을 때면 한 번씩 들르곤 한다. 천막이 활짝 펼쳐진 주홍빛 포장마차는 멀리서도 눈에 띄는데, 붕어빵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 덕분인지 병원 가는 길이 가끔은 설레기도 한다.     


  오늘 오후, 나는 아이들의 비상약을 사러 동네 약국에 들렀다. 약국 문을 나서는 순간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는 자연스레 포장마차로 발길을 옮겼다. 온기가 퍼져 나오는 주홍색 천막 안으로 들어서니, 중앙의 철판 위에는 노릇하게 갓 구워진 붕어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붕어빵 틀에서는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장님이 붕어빵을 하나하나 뒤집는 모습은 마치 작은 공연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워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었다.      


  잠시 넋을 놓고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몇 개 드릴까요?” 주인장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팥 이천, 슈크림 이천이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따끈따끈한 붕어빵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그 길고도 짧은 시간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작은 설렘처럼 느껴졌다.    

 

  붕어빵의 겉모습은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해 보이지만 속 재료와 먹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팥으로 가득 찬 전통 붕어빵부터 부드러운 슈크림으로 속을 채운 슈크림 붕어빵까지. 요즘에는 초콜릿, 피자, 고구마처럼 색다른 재료로 변신한 붕어빵도 간간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팥 붕어빵을 가장 좋아한다. 갓 구운 붕어빵에는 팥소가 가득 들어 있어, 입천장이 데지 않게 호호 불며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 그러면 달콤한 팥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지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마도 국화빵이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날, 외출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두꺼운 외투 속에서 국화빵을 꺼내 주셨다. 이미 식어서 거의 오그라든 빵이었는데, 그것을 건네주시던 아버지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작은 풀빵 하나가 너무나 소중해서 천천히 아껴먹던, 그 장면이 내 어린 시절 몽글몽글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슈크림 붕어빵에 푹 빠져있다. 따끈한 슈크림 붕어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한 입 베어 물면, 연노란색 슈크림이 촉촉하게 흘러내리는데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기가 막힌다. 은은한 바닐라 향까지 더해져서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예전엔 팥 붕어빵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슈크림 붕어빵은 뭔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맛이랄까. 붕어빵의 변신이 놀랍기만 하다.     


  붕어빵은 먹는 순서를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다. 어느 부위부터 먹는지에 따라 성격을 알아보기도 한다. 머리부터 먹는 사람은 낙천적이고 리더십이 강하며, 꼬리부터 먹는 사람은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외에도 붕어빵의 지느러미나 배부터 먹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항상 머리부터 먹는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머리에서부터 차근차근 내려가며 먹는 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붕어빵은 속이 가득 찬 몸통이 가장 맛있다고들 하는데, 같은 붕어빵이라도 어디서부터 먹느냐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잠시, 주홍색 비닐 천막 안에서 주문한 붕어빵이 모두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붕어빵을 사러 오는 손님들의 주문도 다양하게 이어졌다. 똑같아 보이는 붕어빵이지만 누군가는 팥을, 또 누군가는 슈크림을 고르고, 어떤 이는 갓 구워진 따끈한 것을, 또 다른 이는 조금 식어야 먹기 편하다며 진열된 붕어빵을 담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는 모두 같은 붕어빵을 찾으면서도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 다양함 속에서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을 찾으며 즐기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여겨진다. 붕어빵 포장마차가 점점 사라지는 요즘, 이 작은 즉석 빵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소소한 즐거움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손님, 여기 주문하신 붕어빵이요. 맛있게 드세요!”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팥과 슈크림 붕어빵이 각각 담긴 봉투를 손에 들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새하얀 봉투에서 따스함이 전해왔다. 붕어빵에 담긴 달콤함과 소소한 설렘이 동장군에 움츠러든 내 마음을 포근하게 데워주는 듯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 나는 붕어빵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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