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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40대 남자의 소개팅(맞선?) 경험기

by 차밍

토요일 저녁,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우리는 서로 반대편에 살아서 가운데쯤에서 만나기로 했다.

각자 약속장소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최소한 늦지 않기 위해 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출발했다.

(하필 그날 포항친구가 서울에 올라와서 우리 집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다.

멀리서 온 친구를 혼자 집에 남겨두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소개팅 약속 장소는 실내가 어둡고 아늑했으며, 노란 조명이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만들었다.

식당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창문으로 서울 도심의 아름다운 야경이 통째로 보였다

토요일 저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소개팅 장소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소개팅 상대가 어떨지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얼굴이 작고 흐리게 나와서 실물이 어떨지 예상하기 쉽지 않았다.

그날 몸 컨디션이 좋지가 않아서 소개팅 자리에 집중하기 어려울 거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평소보단 컨디션이 괜찮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드디어 소개팅 상대가 도착했다.

카톡 프로필 사진과 실물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솔직한 감정으로 약간 실망했었다.

(그분도 마찬가지였을 수도 있다)

얼굴에 화장기는 거의 없었고, 꾸밈이 많지 않는 수수한 스타일이었다.

청바지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처음엔 옷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자리에 앉아 코트를 벗으니 하얀 털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의가 드러났고 옷에 신경을 쓰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난 100% 캐시미어 베이지색 목티에 네이비색 두꺼운 고급소재 면바지와 염소가죽 항공점퍼자켓을 입고 갔다. - 옷에 어느정도 힘을 주고 갔다. 이것보다 더 힘을 잔뜩 줄 수 있지만 자제했다.)


상대여성분은 처음 나를 보더니 뻘쭘해 했고 카톡으로 서로 대화했을 때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나를 보고 실망하신 건가라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다.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최대한 반갑게 인사했다. 우린 같은 계열의 직장을 다니고 있어 직장 이야기를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얘기를 굳이 많이 하지 않아도 완벽에 가까운 식당 분위기 덕분에 소개팅 자리가 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음식까지 맛있었다. 내가 먹어본 양식 중엔 최고 맛있었던 것 같다.


해외여행은 어디 가보았는지, 직장 생활은 어떤지, 주말이나 퇴근 후엔 뭐하는지, 운전은 하는지,

형제자매는 어떻게 되는지, 대학은 어디 나왔는지(정말 놀랍게도 같은 대학출신이었다), 자취생활 얼마나 해봤는지, 최근 사귄 적이 언제인지, 제일 오래 사귄 건 얼마인지, 운동은 어떤 걸 하는지, mbti가 뭔지(요즘 첫만남에 빠지지 않는 질문), 혈액형이 어떻게 되는지(나도 이젠 기성세대라서)등....


내가 대화 주제가 떨어지면 상대 여성분이 먼저 질문해 주시고 편하게 해 주셔서 내 마음도 편해졌다.

사실 내 이상형까진 아니었지만 같이 대화할 때 마음이 편하고 서로 통하는 게 있으니 호감이 생겼다.


식당에서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소개팅 자리가 끝났다.

집에 도착해서 자연스럽게 애프터 신청을 했는데 왠지 거절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생각보다 여자분 반응이 전체적으로 조용했기 때문이다.


며칠 뒤에 종로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내 차로 야경 보러 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그 분과 같이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소개팅 장소로 골랐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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