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직장 생활에 지쳐가던 어느 날, 추석 연휴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루 연가를 냈다.
연가를 낸 날. 부서 상사까지 휴가라 '어쩌면 그냥 출근해도 좀 편하려나?' 하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하지만 이미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난 내 몸이 보내는 비상 신호에 응답하기로 했다.
주저 없이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휴가날, 난 새벽 일찍 일어났서 뷰가 좋은 창가에 앉아 독서와 글쓰기를 할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비록 짧은 하루지만, 평범한 동네 도서관이 아닌 서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 마치 작은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은 바로 남산도서관이었다.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나 아침으로 돼지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노트북과 책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이른 새벽의 옅은 어둠이 깔리고, 새로운 하루가 깨어나기 전의 고요하고 선선한 공기!
그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
직장에 출근할 때도 이 새벽 공기가 참 좋았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자유롭운 날 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니! 이젠 완전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왜 다들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것 같다!
아침은 마치 현실 세계와는 다른, 마법 같은 평화로운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선물해 준다.
집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떨어진 남산도서관 앞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이른 아침이라 도서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도서관 뒤편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지는 뜻밖의 풍경!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렇게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니, 잊었던 설렘과 기쁨이 밀려왔다.
'아, 맨날 가던 곳 말고 새로운 곳들을 좀 다녀봐야겠다!' 자연스럽게 다짐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넓은 한양도성 유적지가 펼쳐져 있었고,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광활한 언덕이 숨어있던 보석처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책로도 너무 잘 되어 있고, 남산타워와 가까워서 마치 동화 속 놀이공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 오픈 시간에 맞춰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니, 벌써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 자리를 골라 앉아, 여유롭게 독서를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편안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즐길 생각에 들떠 있는데… 띠링!
직장에서 업무 관련 카톡이 왔다.
그 내용을 본 순간, 난 또다시 직장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달콤했던 휴식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온 신경이 업무 쪽으로 향하더니, 어느새 뇌는 수십 개의 걱정들로 가득 차 버렸다.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그 업무는 블랙홀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었다.
지금 이 업무를 깔끔하게 끝내야만 나의 안락한 휴식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완벽주의라는 블랙홀에 더 깊이 빠져버렸다.
'아, 이러다간 휴가를 망치겠어!'
다급히 마음을 다시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지.
'세상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세상의 흐름에 나를 놓아두자!'
이를 되새기며 불안했던 마음을 진정하고, 온전한 자유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독서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빼앗겼지만, 세상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책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이미 체력과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터라 독서 목표량은 채우지 못했다.
책을 접고, 기분 전환을 위해 남산 돈까스 맛집 투어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버스를 잘못 타서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세상의 흐름에 몸을 놓자'는 마음으로, 그냥 버스가 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러다 문득 마음에 끌리는 곳에 내렸다. 그곳은 바로 명동성당이었다.
우선 밥부터 먹으려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딱히 눈에 띄는 식당이 없었다.
그러다 '생활의 달인'에 방영됐다는 간판을 보고 '그나마 여긴 괜찮지 않을까'하며 돈까스집에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외관이나 내부 모두 맛집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돈까스 맛은… 역시 예상대로 평범 그 자체! 별 감흥도 없었고, 15,000원이 아까웠다.
다음부터는 진짜 맛집이 아니면 차라리 굶거나, 아니면 무난한 편의점이나 햄버거집을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명동성당은 정말 고풍스럽고 웅장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거대한 서양식 고전 건축 양식의 성당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대학생 때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다시 보니 또 다른 웅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곧 퇴근 시간이 되면 버스가 붐빌 것 같아서, 조금 이른 오후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블로그 글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독서도 오래 하고, 꽤 많이 걸어 다녔던 터라 몸이 노곤했다.
소파에 앉아서 그냥 편하게 TV나 보고 싶었다.
다행히 TV 리모컨을 지하 주차장 차 안에 두고 온 덕분에 TV의 유혹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 핸드폰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한 시간 넘게 유튜브 쇼츠 영상을 보면서 부족한 도파민을 충전하고 말았다.
시간을 날리고 있다는 죄책감 속에서도 영상을 계속 보다가 겨우 핸드폰 전원을 껐다.
TV 대신 핸드폰이 나의 황금 같은 시간을 고스란히 빼앗아 간 셈이었다.
이젠 핸드폰도 따로 조치를 취해야겠다.
앞으로 퇴근할 때는 아예 직장에 핸드폰을 두고 와야 할 것 같다.
오늘 하루, 새벽과 오전은 정말 알찼지만 오후부터는 나 자신이 흐트러지면서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충분히 충전하고 돌아볼 수 있는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