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by 차밍

직장에서 지원하는 임대 주택으로 이사 온 후,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경할 겸 가족들이 모두 서울에 모이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내가 살게 된 동네, 연희동의 매력을 가족들에게 한껏 뽐내고 싶어 기대에 차 있었다.

게다가 넓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은 가족 모두가 하룻밤을 안락하게 묵기에 딱 좋았기에. 집 구경을 시켜주는 설렘도 남달랐다.


가족 상봉 전날, 나는 이사짐 일부를 고향에 가져다 놓기 위해 포항에 들렀다.

다음 날 아빠와 함께 서울로 출발했고, 중간에 여동생 집에 들러 동생까지 태우고 셋이서 서울로 향했다.

부천에 있는 남동생은 대구에서 ktx타고 올라오는 엄마를 서울역에서 태워서 오기로 했다.


그런데 차가 서울에 다다르자, 길고 긴 정체가 시작되었다.

코 앞의 연희동 집까지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도착 예상 시간은 한참 뒤로 밀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역에 만나 근처 남이섬 구경을 한 후, 저녁에 우리 동네인 연희동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정체에 남이섬에 갈 시간은 이미 빠듯해져 있었다.


가족들에게 서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발목 잡힌 교통 상황에 내 안에서는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결국 남이섬 구경은 아쉽게도 포기하고, 모두 바로 연희동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우리 동네에 도착할때까지도 계속 차가 심하게 막혔다.

결국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을 땐 이미 남동생과 엄마가 먼저 와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저녁에 연희동 동네를 구경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족들을 이끌고 연희동의 골목골목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연희동의 고급스러운 감성과 분위기에 크게 감탄했고 나의 연희동 동네 소개는 대성공으로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은 용산의 `용리단길`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골랐다.

양고기집 식당으로 결정하고 식당으로 가니 이미 자리가 없어 우리는 대기를 신청했는데,

인원수별로 대기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4인으로, 대기번호 1번을 받았다.

곧바로 자리가 나올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30분이 지나도 호출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식당 안에 들어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앱을 통해 예약을 한 팀이 하나 더 있다며 30~40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설상가상으로 4인 이상 테이블이 거의 없고, 2~3인 테이블이 대부분이었다.

대기 시스템 상으로는 우리가 첫번째였지만, 사실상 4인석은 부족했고 다른 예약까지 있었으니 자리가 금방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럴거면 진작에 대기팀이 1팀이라고만 알려줄게 아니라, 4인팀은 대기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는 걸 미리 알려줬어야지!`

그날 가족들과 함께 할 소중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식당 대기에 귀한 시간을 많이 뺏겨 화가 많이 났다.


가족과 함께한 이틀동안 가을이 떠나지않고 이렇게 가족들의 서울 나들이를 맞아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나는 그 감사함을 잊고 눈앞의 상황에만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감사함을 떠올리며 짜증을 내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이 두 상황을 종합해보면 욕구가 클수록 그 욕구를 방해하는 상황에 화가 더 많이 났다

그렇다면 화를 최대한 내지 않기 위해 욕구를 최대한 줄여야 되는 것일까?

욕구가 커지는 건 인간의 본성인데, 화날 상황에 대비해 일부러 욕구를 줄이며 통제해야 할까?

아니면 욕구 자체는 본성이니 그대로 두고, 욕구를 방해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냥 화를 내도록 두는 게 맞는 걸까?


화를 내고 나면 그 이후의 기분을 망치게 되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지만,

이는 바늘에 실을 한번에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내 오랜 과제였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통제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특히 내 본성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내 본성 그대로를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자체가 중요했다.

즉, 내가 화가 났을 때 그 감정을 애써 부정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아 내가 지금 화가 나 있네'하고 그 감정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게 중요했다.


이미 이전에도 책에서 여러번 읽고 글로도 썼던 사실인데, 나는 그 진실을 또다시 잊고 있었다.


이번 서울 가족 나들이에서 겪었던 일들을 계기로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이 소중한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번만큼은 쉽게 잊지 않고 앞으로 살면서 겪게 될 다양한 상황에서 이 '감정 알아차리기'를 잘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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