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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뷔페음식보다 좋았던 것들

사촌동생 결혼식 다녀와서

by 차밍

사촌동생 결혼식에 가기 위해 아침 7시 행신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ktx를 탔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 5명이 다 모이는 날이라 기분이 좋았다.

부산역에 도착해서 동생들(남동생, 여동생)을 만나 택시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동생들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신이 난다.


결혼식장은 오랜만에 외가 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사촌형제 자녀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사촌들을 만나지 못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나를 모르는 게 아쉬웠다.


작은 외삼촌과 외숙모는 아들 결혼식에 와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릴 때만 봤던 사촌동생이 어엿한 청년이 되어 결혼하고, 무엇보다 사촌형제 자녀들이 어느새 훌쩍 큰걸 보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하고 신부 친구들이 신부에게 축하 편지를 낭독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신부친구는 편지 낭독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나려는 걸 애써 참으며 말을 이어갔지만

다시 눈물에 목이 메어 말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 감싸기를 반복했다.


처음에 우리가 볼 땐 신부친구가 웃음을 참는 건지 울음을 참는 건지 헷갈렸다.

"친구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에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자 목소리가 성우같이 우렁차고 명확했고, 상황에 맞게 말도 센스 있게 잘해서 멋있어 보였다.


두 번째 친구도 신부에게 편지낭독을 하는데 또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나려 하며 목이 메었다.

두 친구가 연속으로 편지낭독 시작하자마자 우는 모습에 하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편지내용은 귀에 안 들어왔고 그 장면만 보였다

마음이 순수한 친구들의 편지낭독 부분이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예비신랑인 사촌동생이 신부를 위해 축가로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노래를 불렀다.

앞에 있는 결혼식 진행자 요청에 하객들은 라이트를 켠 폰을 위로 들어 노래에 맞춰 흔들어 줬다.

신랑이 신부에 대한 사랑을 담아 부르는 축가에 신부가 호응해 주는 모습은 내가 처음 상상했던 로맨틱한 분위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도 결혼할 때 내가 직접 축가를 부르고 싶다고 동료직원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미 결혼한 동료직원은 그건 추천하지 않는다 했다.

신랑이 축가 부를 때 신부가 혼자 서 있으면 어색하고 민망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결혼식을 보면서 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궁금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가족 5명은 다 같이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뷔페 음식은 처음엔 다양한 음식들을 보면 설레는데 막상 먹으면 맛이 없고 뒤끝이 별로다' 진리는 이번 식장에도 적용됐다.


사촌형제들이 우리 가족 테이블에 와서 남동생에게 2살 된 아들 키우는데 보태써라고 돈을 각각 10만 원씩이나 주고 갔다. 사촌형제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고, 반성도 하게 되었다. 난 사촌형제 자녀들에게 해준 게 없기 때문이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에 큰 외삼촌 가족들과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눴는데 초등학교 6학년쯤으로 보이는 사촌누나 딸이 나에게 예의 바른 모습으로 허리를 90도 굽히며 인사를 했다.

얌전하게 인사하는 그 모습이 너무 착하고 사랑스러웠다. 사촌누나가 딸을 어떻게 이렇게 예의 바르게 키웠을까 생각했다.

이런 조카들을 자주 만나지 못해 잘 모르고 지내온 게 너무 아쉽다.

속을 느끼하게 채운 결혼식 뷔페음식보다 가슴에 따뜻함을 채워준 친척들의 정이 나를 더 든든하게 만들었다.


우리 가족은 1시간 반 걸려 고향인 포항 집에 도착해서 뷔페음식들로 인한 느끼한 속을 귤과 사과로 달랬다.

역시 과일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저녁으로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 소고기가 가득 들어있는 곰국, 집 김치를 먹고 나니 속이 풀리고 든든해졌다. 오늘 먹은 비싼 뷔페음식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 친척들과 다 함께 모여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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