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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18. 2022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짠 손!

나는 이 맛에 산다.

  “보건 선생님! 제 손톱이 깨졌나 봐요.”

  “그래, 어디 보자. 손톱이 길어서 끝이 갈라졌구나. 오늘은 특별 서비스다.

  다음번에 꼭 깎고 와야 해. 손톱은 잘못하면 할퀴는 무기가 될 수 있어.

  손톱 길게 기르다가 뒤로 홀랑 뒤집혀서 손톱을 뽑아야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단다.”

     

  열 손가락 예쁘게 손톱을 깎아주며 넌지시 압박을 가한다. 부모가 바빠서 손톱을 깎아 줄 시간이 부족한가 보다. 내가 바쁠 때는 미쳐 다 깎아줄 수가 없겠지만 손톱이 길면 또 찾아오겠지.


   4학년 남학생이 눈물이 그렁그렁 목이 메어 할 말을 미쳐 다 못한다.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심한 장난으로 자기가 다쳐서 너무 억울하다고….

  급식 차는 신나는 이동 킥보드 놀이기구이다. 마구 밀어서 발목에 찰과상을 입었다. 화가 나서 밥도 아직 못 먹었단다.

      

  “많이 아프겠다. 친구들 내가 혼내줄까? 네게 사과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점심밥은 맛나게 먹어야 해.”

  조그만 상처 앞에서조차 아이들은 위로받기를 원한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내가 더 큰 상처도 봤는데 치료하면 잘 낫더라.”

  큰 상처에는 침착하게 ‘요정도 가지고 뭘’ 하는 액션을 취하며 놀라지 않게 안심을 시켜야 한다.



      

  매일 같이 보건실을 방문하는 아이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시를 빼 달라고 오기도 하고, 과학 준비물을 빠트리고 왔는데 혹시 약솜을 얻을 수 있느냐고, 단추가 떨어졌는데 달아 줄 수 있느냐고, 일회용 밴드 좀 달라고, 연필에 찔려서, 가위나 칼에 베여서, 발목이 삐어서, 친구와 다투어서, 바지에 실례해서, 심지어 장난치다 의자에 머리가 끼여서, 그냥 심심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를 만들어 북적거리는 흔한 초등학교 보건실 광경이다. 게다가 혼자 오는 게 아니라 꼭 보디가드 친구 2명쯤 거느리고서 나타난다.


  나는 일회용 밴드를 잘 안 붙여준다. 

  출혈이 있는 불편한 부분은 반드시 붙여주어야 한다. 밴드가 필요치 않고 소독해서 공기 중에 노출했을 때가 더 좋은 상황에는 학생에게 설명해주고 선택의 자유를 주기도 한다. 어떨 때는 한 개 더 들려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종일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이 아플 땐 말없이 붙여주기도 한다.

    

  나는 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는 약도 마찬가지다.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주지 않는다. 집에서 다른 약을 먹고 왔다면 복용 시간을 계산해 봐야 한다. 그리고 약물 알레르기가 있는지 건강조사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증상을 가릴 수 있어서 더더욱 신중하게 투약해야 한다. 실망하여 돌아가는 학생 뒷모습이 축 처져 보일 때는 다시 불러 비타민을 주기도 한다.


  도대체 언제 약을 주겠다는 거지? 

  학생이 보건실을 방문하면 해 년마다 보건 일지에 누적해 기록해둔 건강 이상 학생 자료를 컴퓨터 모니터에서 확인한다. 개개인의 건강상 유의해야 할 사항 등을 슬쩍 살펴보면서 확인한 내용을 넌지시 질문하거나 최근의 건강 상태를 두루 살피게 된다. 3월 학기 초에 실시하는 학생 건강조사는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가정에서 자세하게 기록해서 보내주어야 한다. 특히 신입생의 경우는 처음 파악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록내용과 학생들을 더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외상 부분은 응급처치로 잘 대처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또한 찾아내어 돌봐주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2학년 학생 두 명이 보건실 문을 나서며 하는 말이 내 귀에 꽂힌다.

    

  그것 봐! 보건 선생님이 안 착하잖아. 약도 안 주고.”


  미안하다. 내 손이 약손이 아니고 짠 손이라서.”   

  


  

  코로나 때문에 3년을 연달아 매일 아침 운동장에 나와 교장선생님과 함께 학생들을 맞이하고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큰 규모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분주한 학생들이 보건실에 들이닥쳐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주 쬐금은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학교 만기 5년을 채우고 어찌어찌 1년 유예 신청을 하게 되어 내리 6년째 근무 중이다. 학생 수가 300명 정도의 소규모 학교다 보니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웬만하면 전교생의 이름을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들에게 기분 좋은 한 마디씩 건네주려고 외모부터 훑어본다. 파마머리가 예쁘다. 알록달록한 실내화가 멋지다. 공주님 같다...


  오늘은 유치원 울보 아이가 활기차게 통통 뛰어오는 기분 좋은 표정에 반갑게 하이 파이브를 해줬다. 울보는 교장 선생님 손에 끼고 있는 펭수 인형에게도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아침마다 반겨주는 젊고 멋진 펭수 아저씨를 전교생 모두가 좋아한다.  

   

  “다육이 꽃이 피었습니다.

  손톱보다 작은 꽃봉오리!

  담담하게 꽃을 피우는 걸 보니 그냥 예뻐서 자꾸 들여다보게 됩니다.

  아침 공기는 탁한데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이 따땃해서 참 좋습니다.

  온종일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참 매력 있네요.

  꽃마다 다른 느낌 신기하지요?”

     

  따뜻한 창가에서 다육이 꽃을 관찰하며 인생 친구님과 나눈 반가운 메시지 대화 내용이다.

  5년의 기다림 속에 다육이 꽃이 피었다. 숨은 진주를 발견하듯 꽃대가 올라오는 걸 보고서야 다육이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육이 꽃대에서 찾은 기다림의 철학을 배운 날이기도 했다.

  

  기다림의 연속, 아이들도 함께 자란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엿보는 일상에서 내 마음속에서도 조금씩 말랑말랑한 기쁨이 자라고 있다. 



    

  학급수가 큰 학교에 근무할 때는 친절해지려야 친절할 수가 없었다. 

  출근 전부터 보건실 문고리를 잡고 기다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친구까지 앞세우고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럽고 아픈 학생이 호소하는 목소리도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았다. 급기야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따라온 친구는 보건실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내모는 나쁜 선생님이 되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하고 점심시간에도  방문하는 학생이 있으면 숟가락을 두세 번 놓는 일도 종종 생겼다. 보건교사는 큰 학교를 선호하지 않는다. 요새는 일정 규모 이상의 큰 학급수 학교에 보건교사를 2인 배치하는 일이 시작되고 있으니 보건 서비스 혜택을 골고루 주게 되면 학생들에게 미안함이 줄어들 것 같다.

    

  학급수가 적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스스로 친절한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보건실 방문 학생 수가 좀 적어지다 보니 미주알고주알 대화시간도 길어지고 심지어 하교하기 전에 다시 한번 들렀다 가도록 권유하는 여유도 생겨났다. 어떤 학생은 보건실의 침대를 무척 부러워하며 한 번만 누워봤으면 하고 소원하기도 한다. 형편 때문에 자기만의 공부방을 가지지 못하고 침대가 없는 집에 살기 때문이다. 보건교육 시간에 수업 태도의 보상으로 가끔은 ‘1시간 무조건 침대 이용권’을 남발하기도 한다. 추억 속의 보건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작은 명분을 만들어 주면 되는 일이다.


  규모가 적은 학교에 근무한다고 쉬운 일은 없다. 모든 직장인이 자기 업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건교사도 학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이 말을 누가 인정해주거나 말거나 일반 교과 교사들이 수업만 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건교사도 보건수업과 보건실 운영만 하면 좋겠다고 하소연해본다.

    

  꽃들도 빨간 꽃, 노란 꽃, 예쁜 꽃, 미운 꽃 사람들 생각만큼 다양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 명 한 명 살펴보면 다 예쁘다. 

  바쁠 땐 고만 좀 왔으면 싶다가도 방문해준 꼬맹이들이 반가울 때가 더 많다. 찾아오는 말썽꾸러기 학생들에게 자꾸 손길이 가고 두 눈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세월이 깊어가면서 조급한 성격이 느긋해진 탓도 있으리라. 우리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날마다 궁금해하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의 위기 관계 그 중심에 서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고 싶다.

  먹는 약 대신 약이 되는 꼼꼼한 작은 배려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다.

  최선을 다한다고 믿고 싶다.

 

  나는 이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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