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중에서. -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느긋하게 앉아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고등학교 친구의 부친상 부고가 올라와서 화들짝 놀랐다. 학교 졸업 후 결혼해서 다시 뭉치게 된 4명의 절친 모임으로 위로를 하러 가야 마땅한데 밤 중에 지방 장거리 왕복 운전을 해야 한다는 일이 몹시 어려웠다. 더구나 나에겐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로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고 다음 날은 남편의 중요한 병원 검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른 친구의 다음 날은 늦둥이 셋째가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고, 또 다른 친구는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중국에 나가 있어서 절친이라는 세 명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었다. 애가 탔는데 순간 장례식장과 1시간 거리의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떠 올라 전화를 했다.
“아들아, 엄마 부탁 하나만 들어주렴. 경녀 이모네 장례식장에 가서 엄마와 이모들 대신해서 정중하게 위로해 줄 수 있겠니?”
“네. 지금 퇴근길이니 제가 다녀올게요”
3년째 접어든 코로나가 일상생활을 바꾸고 있었다. 이별의 시간도 없이 먼발치서 곧바로 고인을 화장장으로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장례식도 많아지고, 결혼식도 각종 모임도 참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라도 위로의 마음을 보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어울렸던 탓에 추억을 떠올리며 반가운 꼬맹이들의 싱그러운 20대 얼굴들을 장례식장에서 만나고 왔노라 전하는 아들의 전화 보고였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아들은 몇 차례 장례식장을 다녀온 경험을 전한다. 직장 상사의 젊은 가족이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는 분위기가 정말 엄숙해서 말도 하기 어려웠는데, 그래도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이 드신 어른의 장례를 치르는 분위기는 좀 낫다고 이별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부친상을 치른 친구를 포함해서 세 명의 친구에게서 나에게 부족한 만능 주부의 꼼꼼함을 배운 이야기다.
지방 도시의 여자 고등학교 시절 2학년 진급하면서 진로를 결정할 때 나는 이과를 선택했고,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은 문과를 선택했었다.
'윤희'는 1학년 때 같은 반 단짝 친구였고, 부친상을 치른 '경녀'와 중국에 있는 '형옥'이는 진로가 다르고학창 시절 때는 같은 반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서 안면만 있는 정도였는데 결혼 후에 만나서 친해진 여고 동창생이다. 내가 먼저 결혼해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윤희'의 결혼 소식과 함께 신혼집을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알고 보니 고향 떠나 넓고 넓은 수도권에서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을 우연히 계약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그렇게 6개월을 알콩달콩 지냈는데 어느 날 또 우연하게도 '윤희'가 집 앞 마트에서 '경녀'를 마주친 것이다. 두 친구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2대의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근처의 '형옥' 친구까지 연락이 되어 절친 4인이 탄생했다.
나는직장생활로 늘 바빠서 집안일을 잘 챙기지 못했지만, 세 명의 친구는 정말 꼼꼼한 만능 주부 재주꾼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네 집에서 돌아가며 모였다. '형옥'의 정리하는 습관은 달인이 따로 없었다. 언제나 반듯하게 정리된 살림살이를 보면 너무나 부러웠고 10명의 꼬맹이가 모두 모여 북적여도 조리사 자격까지 갖춘 정성 담긴 음식으로 최고의 요리사 솜씨를 발휘해 식당 음식은 늘 뒷전이었다.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 한 땀 한 땀 멋스러운 작품들을 만드는 능력도 타고난 듯하다. 그에 비해 아이들의 어지르는 습관을 못 견뎌하는 나의 조급함은 두고두고 친구들의 애정 어린 놀림감이 되곤 했다.
‘경녀’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윤희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친구 산후바라지를 해주었다. 남편의 출근길 배웅을 마치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산모 윤희 집으로 출근해서 미역국도 끓여주고 집안 살림을 해주며, 친구 남편의 저녁 식사까지 준비해 두고 자기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다. 심지어 직장 때문에 바쁜 나에게는 휴일 아침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찌개 냄비를 자주 놓고 가곤 했다.
게다가 출산 휴가 기간에 딸아이를 잠깐 맡겨두고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피치 못해 한 번도 모유 수유를 못 하고 분유만 먹고 크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나 대신 모유 수유까지 해주었다. 마침 둘째 딸들이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탓에 자기 딸에게만 모유를 먹이는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후로 우리 딸은 내 친구가 준 그 모유 한 번에 자기는 엄마 젖 먹고 자랐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 그냥 모르는 척 인정해 주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 흔한 돌잔치도 밖에서 못 해 봤다.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집에서 가족끼리 생일을 준비하자던 남편의 생각 차이로 불만은 좀 있었지만 어쩌랴. 그런데 친구들이 돌잔치는 못하더라도 근사한 사진은 남겨줘야 한다고 우리 집으로 한복이며 음식까지 장만해 와서 미리 첫 생일잔치를 해 준 것이다. 그 시절 사진을 보고 있자니 고마운 마음이 새록새록 든다. 꼼꼼한 만능 주부님들의 안목으로 집안 커튼을 골라준 일이나 육아 시기에 따라 필요한 중고 아기용품들을 대신 구해 준 일 등 살림에 둔한 내게는 구세주였다.
그 들은 나를 ‘장 사장’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단 하나 맞벌이 부부라고 소득이 중소기업 수준은 될 거라고 무조건 밥은 내가 사야 한단다. 맞벌이 중소기업이라니 착각도 유분수지! 내가 중소기업 사장님이면 내 친구들은 가정경영 기업의 회장님이 분명하다. 그 들은 나의 회장님이다.
“꼼꼼한 만능 주부님들, 장 사장은 두 손 들었네! 회장님들께서 한 수 가르쳐 주시게나!
그대들의 꼼꼼한 보살핌에 젖어들었던 그 시절로 한 번만이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네.”
세 분 가정주부님은 훌륭한 육아전문가이고 한 가정을 경영하는 대표자이다. 꼼꼼한 경영 능력을 발휘하여 가정 구성원들의 복지 향상에 이바지한 숨은 공로자들이기에 예찬받아 마땅하다. 두 분의 대표님은 육아 전문가답게 각각 세 명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이 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가정경영 전문가님에게 박수를 보낸다. 주부님은 휴일이라고 쉬는 날이 없다. 필수적인 의식주 모든 부분에서 경영자만의 특급 기술과 경영전략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 가정의 건강과 행복이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가족 구성원이 직장으로 나가 사회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돕는 원동력이며 튼튼한 국가 경제에 초석이 되는 기초 서비스산업의 전문 경영인이다.
‘한 가정의 생사가 바로 그대들 손에 달려 있다’라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늦은 밤 속상한 마음에 맥주 한 병들고 찾아가 실컷 남편 흉에 맞장구쳐줄 지란지교(芝蘭之交)가 있는가?
코로나로 바뀐 시대 상황에 컴퓨터 화면을 통해 친구와 건배를 외치는 심심찮은 장면도 괜찮아 보이기는 하지만 직접 대면하는 즐거움에 어찌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