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기는데 꼼꼼함 때문에 조금 손해 보는 듯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여러 번 있다. 꼼꼼한 성격의 호기심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축구 한일전이 예정되어 온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서 열광하던 날, 밤늦게까지 식구들과 응원하며 밤잠을 설쳤다. 그런데 한밤중에 두 눈이 아파서 일어났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눈꺼풀이 얼마나 무거운지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남편이 깜짝 놀라 눈을 떠보라고 옆에서 심청이 되어 애원하였다. 남편 팔에 의지해서 두 눈을 감은 채 새벽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안과의사가 눈에 마취제를 넣어준 뒤에야 눈이 떠졌다. 심 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 이런 걸까? 갑자기 특별한 일도 없이 눈을 뜨지 못한 상황이 찾아오니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갔다.
“휴! 다행이다. 이제 눈이 떠져요. 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각막 화상이라고 각막이 벗겨져서 눈꺼풀이 닿으니 눈을 뜰 수가 없이 아픈 겁니다. 혹시 낮에 강력한 빛에 쏘인 적이 있나요?”
“선글라스 없이 스키를 타러 갔다 온 일도 없고 그렇다고 보안경 없이 산소 용접을 한 일도 없는데….”
그러고 보니 전날 근무 중에 학교 복도에 있는 컵 소독기 안의 파란 불빛을 쳐다보았다. 기다란 자외선 살균 전등이 수명을 다한 탓에 전구를 빼내고 교체하는 과정에서 전등 교체를 어떻게 해보려고 다른 층 소독기를 비교해가며 살펴보느라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본 호기심이 부른 참사였다.
‘설마 1분 정도의 그 짧은 순간 자외선 살균 전등에 내 각막이 벗겨졌다고?’
이런 나를 누가 꼼꼼하다고 인정할까?
전문가에게 교체해달라고 하지 그새를 못 참는 헛똑똑이지!
“며칠간 안과 외래로 오셔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 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마취제 풀리면 눈 못 뜨십니다.”
나는 눈을 안대로 가리고 다시 장 봉사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집안에서 더듬거리며 어둠 속에서 움직였고, 그동안 근처에 사는 친구가 나의 팔을 잡고 병원으로 이끌어주었다. 다시 출근하게 되던 날 문제의 자외선 컵 소독기 문짝에 아주 크게 안내 문구를 붙였다.
‘경고, 파란 자외선 불빛을 쳐다보지 마세요. 당신의 눈을 상하게 합니다’
우리 집 욕실의 칫솔 살균기와 주변의 식당, 휴게소, 학교 등에 설치되어있는 자외선 살균 소독기 파란 불빛이 이렇게 무서운 물건임을 새삼 깨달았다. 파란 불빛만 보면 그때의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보건교육 시간 눈의 건강 단원에서는 무지했던 장 봉사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꼭 들려준다.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는데 나도 잡동사니 물건들을 얼른 버리지 못하고 잘 쌓아두는 편이다. 부서진 싱크대를 교체하다가 어느 순간 또 드라이버를 가지고 문짝에 붙은 경첩을 떼어내고 있었다. 보건실에 커다란 붙박이 약품 수납장이 있는데 소독약품 때문에 약품 장 문짝 경첩이 부식되어 덜렁거리는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전동드라이버를 가지고 드르륵 몇 번 하니 딱 맞춤이다. 역시 눈여겨본 보람이 있구나. 내 어깨가 으쓱으쓱 춤을 춘다.
직장 때문에 남편과 주말부부 기간이 길었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건 내 손으로 해결할 때가 많다. 형광등 교체, 거실 등 안정기 교체도 남편 대신 척척, 비데 설치도 설명서를 꼼꼼히 살펴 가며 뚝딱. 설거지도 미덥지 않아 남편에게 못 맡기는 미련퉁이, 그릇도 언제나 쓰던 제자리에, 그러면 나만 손해인데….
첫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면서 드디어 자가용을 사게 되었다. 결혼 전 따놓은 장롱 면허로 아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출퇴근을 하다 보니 운전실력이 늘었다. 운전면허도 없고 운전할 생각을 안 하는 남편을 데리고 개통 전인 한적한 도로에서 운전 연습을 시켰다.
“무슨 남자가 시동을 그렇게 잘 꺼트립니까? 그렇게 해서 운전면허 따겠습니까?”
남들은 마누라 운전 연습시키다 부부 싸움한다고 하던데 우리 집은 그 반대로 남편이 나의 퉁사리를 참아가며 운전 연습을 한 결과 운전학원에 가지 않고도 면허를 획득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먼 장거리 운전할 때는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서로 재빨리 조수석 쟁탈전을 벌인다.
둘째 아이 출산을 위해 미리 시골 친정집으로 내려갔다. 출산 예정일이 토요일이라 남편은 대기 중인데 소식이 없던 차에 일요일 새벽녘이 되어 진통 신호가 왔다. 11월 찬 공기 때문에 도로가 살짝 얼어 새벽 운전이 걱정되었다. 면허 딴지 얼마 안 된 남편이 운전에 겁을 내는지라 조수석에 남편을 앉히고 40분 거리의 도시 산부인과 병원으로 내가 운전해야 했다. 물론 퇴원할 때는 언니가 와서 내 차를 운전해줬지만.
“무슨 좋은 일 한다고 운전은 내가 먼저 시작했을까? 아쉬운 내가 우물 판 격이니 누구를 탓하랴!”
두고두고 잔소리라도 해야지.
남편은 할 줄 알면서도 나에게 양보를 한 것이리라. 마음은 있어도 직장 때문에 몸이 멀리 있으니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라 생각하면 그리 섭섭한 일도 아니다. 장거리를 주말마다 집으로 달려오느라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표현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이해해 주어야지. 시간이 흐르면 퇴직해서 지겨울 만큼 옆에 있는 날 오지 않겠는가? 지금도 여전히 주말이면 고속열차 역으로 마중을 나간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운전사가 되어줘야겠다.
비록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세상 사는 나의 일상이다. 실제로 너무 작은 것에 신경 쓰다가 손해를 본 적도 있다. 거스름돈으로 큰 지폐 받는 걸 잊어버리고 동전만 받아 오면서 룰루랄라 온 기억….
소지품 검사가 성행하던 국민학생 때 내 가방을 열어보시고 가방 정리를 잘했다는 칭찬!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를 듣고 난 후 꼼꼼한 습관은 늘 몸이 먼저 반응하며 저만치 앞서 나갔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누군가의 습관도 속히 꺼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적당한 불안감을 유발하는 꼼꼼함도 즐거운 꼼꼼함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 오래된 아기 수첩에 기록해둔 예방접종 같은 꼼꼼함을 내 기억 속에서 꺼내어보자. 명절 연휴 막힌 귀성길에 차량 내비게이션 대신 전국 지도책을 펼쳐놓고 사이사이 논둑길을 꼼꼼하게 검색하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당신의 좋은 습관들이 하나둘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꼼꼼하게 살펴보라.칭찬에 인색하지 말자. 칭찬거리를 찾는 건 어려울 수도 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면 단정한 모습이 참 멋지다고 해도 괜찮다. 나쁜 말만 골라 쓰는 밉살스러운 녀석에게는 예쁜 말만 쓰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고 미리 선수 쳐 볼까? 등굣길에 마주친 1학년 학생은머리핀이 예쁘다는 한마디에 내게 머리핀을 빌려주겠다고 선뜻 내어줄지도 모를 일이고, 심지어 창가에 놓인 작은 화초에게 건네는 정겨운 인사말에 활짝 핀 꽃으로 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