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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14. 2022

가출(家出)할래? 출가(出家)할래?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

  한때 한국에서는 북한이 남침을 못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이야기가 돌고 관심을 받았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심리적 혼란을 많이 겪는 중학교 2학년은 무서움이 없는 반항아 기질이 강해서 생겨난 비속어라고도 한다.

    

  중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는 힘든 시기를 경험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사건이 몇 가지 떠오른다.  

   

   어느 날 아들의 학급에서 수업 공개가 있던 날이었다. 출근하는 나에게 묻는다.

  “엄마, 오늘 우리 학교에 수업 참관하러 오실 수 있나요?”

  “오늘 할 일이 많아서 오후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못 가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구나” 하고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오전에 중요한 일들을 부지런히 처리하고 오후에 조퇴해서 아들의 공개수업을 참관하러 갔다. 엄마의 깜짝 방문에 뒷줄에 앉아있던 아들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더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런데 아침 등굣길에 보았던 옷차림과 조금 달라 보인다. 반듯하게 칼주름을 잡아가며 입혀 보낸 넉넉한 교복 바지가 발목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딱 달라붙게 바지통이 줄어들어있어서 그야말로 소위 말하는 ‘날라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살펴보니 바짓단에 지퍼를 달아서 불편함을 해결하고 멋쟁이로 거듭나고 있었고 센스 없는 엄마는 아들이 그런 교복을 입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던 바보였던가 보다.

 

  그뿐이랴? 한쪽 귀에 검정 귀걸이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순간 속에서 천 불이 올라오는 듯했다. 아들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사춘기의 많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엄마 앞에서 감히 행동할 수 없었으리라.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내 가슴을 뻥 뚫어줄 사이다가 필요했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우리 집에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중학교 여학생들이 1층 주차장 쪽에서 길이를 짧게 줄인 교복 치마로 바꿔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한탄한 적이 있었는데, 또래 남학생들도 졸업한 형들에게서 얻은 교복 바지를 그렇게 고쳐서 입고 싶었던 모양이다. 멋지게 보이려고 외모에 관심이 많다 보니 중2병이 이런 식으로도 나타나고 있었고 아들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평범하고 똑같은 중학생이란 걸 뒤늦게 깨달은 이 일은 그냥 애교로 넘길만한 사건이었다.



  중2병을 앓는 아들의 가출로 인해 더 큰 시련을 겪은 일이 있었다. 꼼꼼한 성격을 가진 엄마의 지나친 기대와 잔소리에 가출한 건 아닌가? 꼼꼼함 때문에 정말 아들을 잡은 것은 아니었는지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늦게나마 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춘기를 유독 심하게 보낸 자식 때문에 마음 졸이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나의 세대 부모들은 자식 잘되라는 한 가지 이유로 부모의 강요를 압박하는 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지금 세대 부모들은 자식이 행복한 방향으로 부모의 기대치를 낮추는 양보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말대꾸하는 아들에게 평생 처음 내 손이 올라갔다. 남편은 평소 손찌검을 하는 건 자식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 뒤엔 더 큰 폭력으로 이어져 이미 깨져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신념 아래 대화로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남편은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터질듯한 상황에서도 참고 참았던 행동을 내가 먼저 깨뜨리고 말았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원망의 눈길로 나를 쳐다보는 아들 얼굴을 보는 순간 아뿔싸! 나는 마음속으로 울면서 후회했다. 엄마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사춘기 아들의 행동은 끝없는 잔소리를 불러왔고 견디지 못해 가출한 것이다.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둔 채 편지를 써놓고 단돈 2만 원을 들고 그렇게 집을 나갔다.


  “엄마, 아빠! 제가 1주일간 반성의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여름방학 기간이라 학교 출석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1주일간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남편은 친구들 집을 찾아다니며 꼭꼭 숨어버린 아들 소식을 수소문하고 나는 죄인 같은 기다림으로 시간이 그냥 멈춰주기를 희망했다. 1주일 만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는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고 눈만 껌벅거리는 아들을 말없이 보듬어 주었다. 며칠은 거리에서 헤매고 며칠은 집에서 좀 떨어진 친구 집에서 보내다 왔단다. 본인도 걱정이 되었던지 가출 중간 새벽녘에  집 앞에 몰래 쪽지를 놓고 갔는데 그때라도 들어왔으면 좋았을 걸 자존심은 있어서 의지대로 1주일을 꼬박 채우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친구 따라 노랑머리로 염색을 하고 돌아왔는데, ‘개학하기 전에 검정 머리로 다시 염색하면 되지’ 하며 그렇게 나의 마음도 누그러졌다. 아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스스로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조언과 함께 며칠간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준 친구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또다시 집 나갈래?”

 엄마, 등 떠밀어도 절대 못 나가지. 집 나가면 개고생 합니다!”



  

  가출로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가출(집을 나감)과 출가(세속의 집을 떠나 불문에 듦)는 글자 앞뒤만 바뀌었을 뿐인데 의미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똑같이 집을 떠나는 것에서 살펴보면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한 것 같다. 방황과 번뇌하는 마음의 시작이 닮아있다. 새로운 깨달음과 반성이 끝나면 집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가출한 사람은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출가한 사람은 사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른인 나도 가끔은 가출을 하고 싶어 진다. 어디로 가출을 할 것인가? 템플 스테이(사찰 체험)를 한번 알아볼까? 마음을 정화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충전할 수 있는 곳!

  

  가출해서 출가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가출과 출가를 서로 연관 지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행하고 싶은 이유를 억지로 찾아내는 일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다.  마음 정한 대로 시간을 내어서라도 온 가족의 가출을 실천에 옮겨보는 건 어떨까?

  물론 출가로 이어지는 건전한 마음가짐을 안고  재충전의 기회를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가출이냐, 출가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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