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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19. 2022

바람 앞에 등불들

위기의 아이들 1

  지난번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학구 내에 다가구 주택이 많고 아파트가 하나도 없어서 엘리베이터 구경을 못 해본 학생들도 있었다. 그나마 사제동행 프로그램으로 담임선생님과 학생 4~5명씩 순번을 정해서 동네 서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을 방문하여 평소 경험해 보지 못한 활동을 하며 피자나 햄버거 한 개에도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학생들을 보았다. 지역에 따라 문화적 혜택을 못 받는 학생들 있 몸과 마음이 불편한 학생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어느 학교나 바람 앞에 꺼질 듯 위태로운 등불 같은 위기의 아이들이 있다. 

내가 보아왔던 아이들을 지면에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슴에 남는 아이가 생각난다.  

   

  머리는 헝클어진 채 세수도 안 했는지 그냥 땟국물이 흘러내릴 것 같다. 철 지난 점퍼에 소매까지 짧아져 더욱 커버린 듯한 모습인데 실상은 말라서 또래 학생들보다 작아 보인다.

    

  지난 2년간 지켜봐 왔던 수향이는 다문화 가정의 학생인데 유치원 동생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따뜻한 누나였다. 맞벌이 부모의 무관심 속에 동생을 챙기는 건 수향의 몫이었다.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으로 등굣길 운동장에서 매일 만난 앳된 3학년 아이의 모습이 5학년 사춘기 소녀로 변했지만, 여전히 남루한 옷차림이다.

     

  우리 학교의 다문화 가정 학생 중 일부는 특히 엄마와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향이 어머니도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느라 집에 오는 날이 많지 않아 보였다. 가정에 남겨진 남매는 늘 외로워 보였고 조용했다. 3학년 수향이가 등교 수업 해당일이 아니어서 온라인 수업으로 가정학습을 하는 날도 여전히 목이 드러난 추운 모습으로 교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치원 동생을 데려다주고는 돌아갔고 유치원 하교 시간에 맞춰 또다시 교문에 나타났다. 아침밥을 챙겨줘야 하는 엄마의 역할까지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 보였다.

     

  유치원 교사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동생은 아침밥을 못 먹는 날이 많아서 자주 배가 고프다고 이야기한다고. 동생의 영양상태와 발육상태도 나빠 보였고, 언어발달과 소근육 발달이 늦어져 아침 등굣길 걸어오는 모습이 균형을 못 잡고 넘어질 듯 불안 불안해 보인다.

     

  어찌하리, 어찌하리! 애가 애를 돌보고 있으니!”  

   

  제비꽃처럼 가냘프고 예쁜 수향이, ‘나를 생각해달라’는 꽃말처럼 너무 안타까워라.

  3학년 담임선생님과 늘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보건실에 올 때 보니 또 맨발이라 5학년이 되어도 달라져 보이는 건 별로 없었다. 5학년 들어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비만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



  눈에 드러나는 상처는 해결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아동 방임과 학대를 의심하는 징후들을 찾아내어 신고할 의무가 있다. 보건실을 방문하는 아이 중에도 멍이 들거나 상처가 의심스러울 때는 꼬치꼬치 묻게 된다. 어느 때는 정말 아동 방임으로 신고하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다.

     

  건강 이상 학생 중에는 눈여겨 살펴봐야 할 학생들도 많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매일 호르몬제를 복용해서 항상 늘어져 보이는 아이,

  빨간 반점(화염상 모반 피부질환)이 하필이면 얼굴에 자리 잡아 늘 가리고 싶어 하는 아이,

  소아 당뇨 등 난치성 희귀 질환으로 주의가 필요한 아이,

  배뇨장애(요도하열)로 화장실 이용이 불편한 아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약 복용으로 가슴이 울렁울렁 토할 것 같다고 호소하는 아이,

  다운증후군 및 지적장애가 있는 특수학급 아이,

  심장병 수술 병력 및 천식 치료 중인 아이,

  인공 달팽이관(청력장애)을 삽입한 초등학생 남매...

  한쪽 눈에 인공 안구를 삽입한 여학생도 만났다.

  ‘한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

  학교에서나마 큰 탈 없이 생활하기를 바란다.  

   

  그나마 자칭 나의 약손에 기대어 보건실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상처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사계절 맨발의 아이들은 병원을 가지 않으니 보건실 애용자가 될 수밖에 없다.

  꿰맨 뒤의 드레싱도 나의 몫이고 실밥을 풀 때가 되어도 여전히 단골 방문객이 된다.

  귀걸이 때문에 귓바퀴가 찢어지고 귀를 뚫어 고름이 나는 귓바퀴 소독도 공짜다.

  모기들에게 귀빈 초대장을 받고 퉁퉁 부은 살갗을 진물이 나도록 박박 긁으며 나타난 아이도,

  책상이 넘어지면서 엄지발가락이 쏙 빠져서 울고 온 1학년 남학생도,

  체육 시간에 발목이 삐었다고 탄력붕대를 감아줬는데 신나게 놀다가 붕대가 풀려서

  다시 감아 달라고 엄살을 부리는 철수도,

  팔에 깁스하고 헤헤거리며 철수를 따라온 창식이도,

  방과 후 방송 댄스 시간에 열심히 춤추다 부딪쳐 머리통에 혹이 나서 냉찜질이 필요한 영숙이도

  나에게는 소중한 귀빈(VIP) 고객님이다.


  오래전 학교 행사 때문에 운동장에 훌라후프를 박아 고정해 두었는데 장난꾸러기들이 뒤집어 놓는 바람에 멋모르고 조회대에서 뛰어내린 남학생의 운동화 위로 대못이 올라오는 사고로 119를 부른 일도 생각난다. 개에게 얼굴을 물린 일, 운동장 배수구에서 넘어져 다리뼈가 드러나 수술을 네 번이나 한 일, 뇌전증(간질)으로 쓰러진 일, 심장마비로 쓰러진 일 등 119를 부르는 날엔 온종일 혼이 쏙 빠진다. 무수히 많은 사고가 기억 저편으로 하나둘 달아나고 있다.

      

  하얀 가운만 보면 기겁을 하는 특수아동 덕분에 나는 베이지색 예쁜 가운도 하나 새로 장만했다. 가운을 입으면 상처에서 나는 혈액이나 분비물이 묻어도 조금은 방어가 되고 응급처치 활동이 자유로워서 좋다. 내년엔 분홍색으로 하나 마련할까 보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고객님들의 방문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보건실은 나의 직장이며 전교생을 만나볼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쉼터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이용하기 쉬운 위치, 햇살이 잘 드는 좋은 장소에 설치되어 있다.

  알록달록 예쁜 이불도 동물 베개도 준비되어 있다.

    

  어떤 분의 멋진 말씀이 눈에 들어와 나도 되뇌어 본다.

  “등으로 짊어지면 짐이 되지만, 가슴으로 안으면 사랑이 된다.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20160508_222/69snowman_1462689897926ysop3_PNG/18.png?type=o_webp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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