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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21. 2022

그네 타러 갈래?

긴급 돌봄 서비스 출동

  2020년 4월, 첫 번째 봄날.


  출퇴근길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광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바람에 흩날리며 연분홍 비단길을 포장한 모습 뒤로 진분홍빛 철쭉들이 나 좀 봐달라고 앞다투어 울긋불긋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나간 겨울에는 눈다운 눈 구경도 못 하고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인지 예년보다 봄꽃들이 스무날이나 빨리 피어나고 있다.

      

  21층에 자리한 우리 집 베란다 창밖으로 내려다본 철쭉동산이 날이 갈수록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걸 보니 봄은 왔는데 마음의 봄은 아직도 멀리 있음을 느낀다.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낀 채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혹독한 봄날을 견뎌내고 있었다.

   

  전국의 봄 축제들이 취소되고 나들이객들의 이동을 막고자 눈물을 머금고 내년을 기약하며 애써 키운 튤립 꽃들을 뚝뚝 잘라내고 노란 유채 꽃밭을 갈아엎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선결제 등 착한 소비 운동에 동참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잘한다 잘한다고 칭찬 하면 더 잘하는 대한민국 국민 반드시 이겨낼 것이리라.

      



  2020년 봄날을 빼앗아 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때문에 태어난 지 5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온라인 개학과 4월에도 아이들이 없는 텅 빈 학교 운동장이 쓸쓸해 보이는 오후!


  학생들 등교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답답함 속에 출근해도 맘은 바쁘고 자꾸 변경되는 교육과정 수정과 온라인 학습 준비 때문에 분주한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학부모도 함께 지쳐간다. 감염병 예방 교육자료를 준비하여 온라인 학습 자료방에 올리고 코로나 감염병 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필요한 방역물품을 비축하고 화상 발열 측정기를 설치하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내 순서가 되어 긴급 돌봄 학생들을 만나러 갔다. 

  1학년, 2학년, 3학년 여덟 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있는데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애처로웠다. 평소 돌봄 교실을 이용하는 학생들 외에도 늦어진 개학으로 긴급하게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학생들인데 부모 모두 맞벌이를 하는 까닭에 집단 감염의 위험이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한 것이다. 오전에는 컴퓨터실에 가서 온라인 학습을 하고 오후에는 학년에 맞는 학습지 풀기, 독서 활동 등을 한다.

    

  점심을 먹고 실내 활동에 흥미를 잃어갈 시간, 햇살 좋은 운동장으로 함께 나갔다. 1학년 학생들의 손을 잡고 학교 울타리 안에 핀 꽃들을 구경하면서 한바탕 공놀이를 했다. 3학년 남학생들은 두더지처럼 두 손으로 힘차게 모래를 파내고 모래성을 쌓으며 자신들의 모래 왕국을 건설하는 중이었다. 나는 1학년 학생들과 시소를 타고 그네를 밀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보건 선생님, 그네 세 번만 밀어주세요.” 겁이 나는지 세 번씩만 밀어 달라는 아이,

 “내 그네는 높이 안 올라가요.” 아직 발 구르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아이.

     

  그네를 타 본 적이 언제였는지 학생들 덕에 나도 추억의 그네를 한번 타 봤다. 나는 한쪽 시소에 앉아 반대편에 두 명의 학생을 태우고 신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까르르 웃는 학생들과 동심의 세계를 잠깐 다녀왔다.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인데 학교에서 늦은 시간을 보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한 시간이나 놀았으니 이제 교실로 가자.” 

  못내 아쉬워하며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과 화장실에 가서 손 씻기 교육 시작!

 “구석구석 숨어있는 세균들을 물리쳐 볼까?”

     

  비누를 칠하고 열심히 손을 씻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칭찬 몇 마디로 부족했다. 두서너 명씩 주사위 놀이를 하기도 하고, 교실에 비치된 책을 읽기도 하고, 온몸을 비비 꼬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개인별 학습지를 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 등굣길에 만났던 정윤이! 학교 오기 세상 귀찮아하던 아이가 2학년이 되어 그래도 지각 안 하고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걸으며 왔는데 쌀쌀한 날씨에도 종종 양말을 안 신고 온다. 감기 걸리면 열나서 학교 못 온다고 양말 꼭 신고 오라 했더니,  "양말 안 신고 오면 못 오나요? 학교 오기 싫어서 일부러 안 신고 오는 건데요." 하며 맞받아치는데 얄밉지 않다. 말대꾸할 정도로 많이 큰 것 같아서 아침부터 나를 하하 웃게 만든 아이다.

     

  하교하는 시간도 제각각이라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자 3학년 승용이가 심심해한다. 오전에 공부를 많이 해서 책은 보고 싶지 않다고 투정을 부린다. 오후 5시에 하교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는데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니 만화영화를 보고 싶단다. 유튜브 교육 영상을 찾아서 잠시 미니 영화관으로 전환, 관객은 3명, 관람료는 무료다. 


  오후 5시. 하교하면서 또 태권도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의 어깨와 뒤통수가 무거워 보인다. 모두 하교한 뒤에 구석구석 먼지를 쓸고 책상과 의자 문손잡이 등을 소독제로 닦아냈다. 힘든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나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아이들은 날마다 오죽하랴!

      



  봄은 아직도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는데 저만치 봄날 하루가 달아나고 있다. 퇴근길에 만난 차창 밖 주홍빛 진분홍빛 철쭉꽃이 유난히도 서러워 보인다. 반겨줄 사람 없는 그 자리에서 붉은 눈물을 주르륵 대신 흘려주고는 힘들었던 봄날은 멀어져 간다. 아쉬워라!


  노란 테이프가 둘러쳐진 동산에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저 예쁜 꽃들을 내년에는 가까이서 만져볼 수 있을까?

      

  ‘철쭉꽃은 내년에도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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