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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26. 2022

내 손가락은 어디 갔을까?

위기의 아이들 2

  지난주까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출근길 봄 겉옷을 걸치다 다시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말에 갑자기 활짝 핀 벚꽃에 마음은 어느덧 미친0 널뛰듯 날아올랐다. 월요일 출근하니 교정에 연분홍 빛깔을 뽐내는 벚꽃들 때문에 드디어 내 몸도 따사로운 봄기운을 맞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너무 더워져 봄을 느끼기도 전에 여름을 맞이한 것 같다. 4월 초순인데 등교하는 학생들 모습에서 벌써 여름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맨발에 반바지와 짧은 반소매 티셔츠 차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애들아, 아직은 양말을 신어야지 맨발은 안 돼요. 기온 차가 심해 감기 걸리기 쉽단다.”

     

  오늘 보건실에 방문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맨발이다. 발에 상처 난 아이를 보니 또 잔소리쟁이가 된다.

    

  “양말을 신었으면 안 다쳤을 텐데, 맨발에 실내화를 신으면 실내화에 있는 균들이 상처 난 곳으로 들어간단다. 그리고 발에 난 땀으로 실내화에 균이 번식해서 발 건강에 해롭겠지? 발 냄새도 심하게 날 수 있지.”

  


   

  2교시 중간에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던 5학년 정운이가 마스크가 반쯤 벗겨진 채 코피를 줄줄 흘리며 보건실에 방문했다. 평소에 고집이 세기는 하지만 명랑 쾌활하고 등교 시간에 운동장에서 마주치면 코로나 때문에 힘내라며 내 손에 초콜릿을 쥐여주던 아이였다. 일단 코피를 멈추게 하고 얼굴을 씻기고 새로운 마스크를 씌워주면서 어떻게 다쳤는지 질문했는데 대답이 없다. 공에 맞았는지 부딪쳤는지 아니면 친구와 다투었는지. 지레짐작하고 말을 시켜봤지만….

     

  “지금은 말할 기분이 아닌 것 같구나. 그럼 너의 의사를 존중해 줄게.

  선생님에게 말해주고 싶으면 언제든지 다시 오렴.”  

    

  오전 날씨는 여름 같더니 퇴근 무렵에는 돌변한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더니 연분홍 꽃비를 뿌린다. 그 아래 꽃비를 맞으며 노란 우산을 받쳐 든 개나리는 살랑살랑 손짓하고, 목련은 거만하게 하얀 부채를 쫙 펼쳐 들고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정운이 마음에도 꽃비가 내려서 환하게 돌변했으면 좋겠다.




  “예지야, 어서 와! 부지런히 교실로 올라가야지. 벌써 9시 수업 시작할 시간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운동장에서 지각 대장을 만났다. 6학년 예지는 아슬아슬 지각을 모면했지만 세월아 네월아 뛰는 시늉도 안 한다. 머리카락은 바람에 펄럭이고 한 손에는 준비물 가방을 들었다. 다른 한 손은 긴 옷소매에 감추고 실내화 주머니를 팔꿈치에 대롱대롱 매단 채 느린 걸음으로 등교 중이다. 아침은 먹었는지 물어보면 배시시 웃기만 한다.


  예지는 1학년 입학할 때 만났다. 내가 이 학교에 6년을 근무하고 있으니 졸업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할 진짜 아픈 손가락이다. 선천성 수지 발육부전으로 장애 5급 판정을 받아 왼쪽 엄지를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이 없고 흔적만 남아있다.

  6학년 여학생이라 자신의 신체상 때문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춘기 소녀다. 스트레스로 심리적인 위축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이며 '지각'으로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가?  


( *신체상 :신체에 대하여 갖는 느낌이나 태도로서, 자기 신체 부위와 기능에 대한 만족의 정도를 말한다. 만족의 정도가 높으면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한다고 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등교 상황이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5~6학년 내내 지각을 밥 먹듯 하고 있다. 저학년 때까지 손가락 성장발육 수술을 몇 차례 했지만 더는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1학년 때는 왼손을 내보이며 손가락이 자라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커가면서 많은 상처를 받을 텐데’ 하고 속으로 걱정했었다.


  예지의 6학년 학교생활은 어떤지 궁금해서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동이 좀 느리지만 성격이 차분하면서 꼼꼼한 면도 많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 급식 배식할 때 불편한 손을 여전히 소매로 가리기는 하지만 괜찮다고 격려해주면 웃으면서 부끄러워한다고 말씀하셨다. 누구보다도 세심하게 살펴주시는 담임 선생님과 배려심 많은 훌륭한 학급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정에서도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예지는 앞으로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힘든 난관을 잘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




  재학생 건강 이상 학생과 더불어 올해 새로 확인된 1학년 신입생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학교에는 이처럼 관심을 주어야 할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눈에 띄는 신입생의 질병 진단명과 수술 입원 병력도 참 다양하다.

  좌측 폐 부분 절제술, 선천성 심실중격 결손(소아 심장병), 성조숙증 치료, 성장지연 치료(성장호르몬 주사), 자폐성 장애, 고환 고정술 치료(잠복고환), 귀 진주종, 백반증(피부질환)….


  학생 보호자 한 명 한 명에게 상담 전화를 해야겠다. 

  얼마나 힘드시냐, 학교에서 주의할 사항은 없느냐, 바라는 게 있으시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보건실로 연락하시라고 그 외의 건강정보를 탐색하여 아이에게 관심을 쏟겠다는 약속으로 보호자의 걱정을 덜어주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눈물겨운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오늘도 학교는 이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20160402_175/69snowman_1459588224254vH30U_PNG/4.png?type=w800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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