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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28. 2022

목발 빌려드립니다.

다문화 꽃들에게 사랑을!!

  누런 실내화를 신고 멀리서 교문에 들어서던 '상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느릿느릿 운동화로 갈아 신는 모습이 보인다.


  “딱 걸렸네. 상구야! 개학하고 두 달도 지나기 전에 벌써 10번도 넘게 규칙을 어겼구나.

  도대체 왜 실내화를 신고 등교를 하는 거니?”

  그냥 신발 갈아 신는 것이 귀찮아서요.”


  마지못해 다음번엔 신발을 신고 오겠다고 했지만 속아 주면서도 방법은 없다. 3학년 때부터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지각을 밥 먹듯 하고 전날 실내화를 신은 채 하교했다가 다시 실내화를 신고 등교하는 일이 습관화되어 있다. 슬슬 구슬려서 비타민을 주며 칭찬도 해보고 살짝 협박도 해보지만 허사다. 수업 시간에도 무기력함이 드러나 보이고 모든 일에 의욕 자체가 없어 보인다.

     

  교실에서는 담임교사가 일부러 앞자리에 배치하고 시간마다 교과서를 꺼내 줘야 할 정도이니 얼마나 속이 터질까? 새로 교실 바닥공사를 해서 밝고 깨끗한 상태라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 앉아 공기놀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내화에 묻은 흙 속 먼지가 바닥에 묻고 날아다니면 호흡기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저기 금쪽 손자님도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신장질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건강 이상 관리 학생’이기도 하다. 2학년이 되고서는 교문 앞에서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학년 때는 할머니가 교문 앞에 서서 금쪽 손자가 멀리 현관을 통해 교실로 올라갈 때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실내화를 갈아 신는 동안 옆에 앉은 친구랑 한마디 말이라도 한다 싶으면 멀리 떨어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너무 귀한 손자라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도록 감시하는 중이었다.

     

  귀한 손자와 다툰 같은 반 친구를 등굣길에 야단을 쳐서 울게 만들고, 그 일로 학생들 등교하는 교문 앞에서 다른 학부모와 목청 높여 싸운 일도 있다. 급기야 담임교사가 학생 아버지에게 할머니 관련하여 상담 전화를 했고 며칠간 보이지 않다가 소위 말하는 ‘진상 할머니’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은 학교 담장 옆에 숲이 있어서 작은 뱀이 담장 안으로 들어왔는데 누군가 119에 신고를 해서 바쁜 아침 시간에 구조대원이 출동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새 뱀은 도망가고 없는데, 도대체 누가 신고를 한 건지 알고 보니 귀한 손자님 할머니였다.

     

  또 다른 3학년 남학생은 4일 내내 실내화 한쪽만 가지고 등교하면서 ‘실내화를 못 가져왔다’라고 4일째 나에게 이야기한다. 어차피 운동화를 신고 올라갈 거면서….


  못 가져온 건지 안 가져온 건지, 나더러 어쩌라고? 어휴, 내 입만 아프지!’ 

    

  왜 내 눈에는 기본습관이 안 된 학생들이 자꾸만 보이고, 학생 외에 관심 두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보이는지 참 피곤한 일이다. 아예 눈을 감고 살아야 할까?



      

  4학년 메셀리1주일 만에 빌려 간 목발을 반납하러 보건실에 왔다. 

  발목은 괜찮아졌는지 싱글벙글해서 나도 덩달아 즐겁다. 메셀리는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다. 1주일 전 발목을 삐어서 방문했었는데 조금 과장된 아픔을 호소해서 파스를 뿌려주고 탄력붕대를 감아주며 말했다.

    

  “선생님 눈으로 보기에는 며칠 동안 다친 쪽 발목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 그러나 발목의 뼈나 인대는 들여 다 볼 수 없어서 많이 붓거나 불편하면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고 꼭 확인을 해봐야 한단다.”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메셀리는 한국말과 필리핀 말을 번갈아 통역하며 나의 설명을 어머니에게 전달하였다.


  이 똑똑한 학생은 한국어, 필리핀어, 영어 3개국 언어에 능통해서 해리포터 영어책을 줄줄 읽는다. ‘다문화 친구’라고 학급 학생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친구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귀띔을 익히 들었던 터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오늘도 나의 관심이 필요했던지 발목이 양호한 상태였지만 절뚝거리며 불편한 모양을 자꾸 표현한다. 나의 처방은 목발을 빌려주면서 따라온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메셀리 친구를 잘 부탁한다’라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교실로 이동하는 특권을 주었다.


  그 후로 병원에는 가지 않았지만, 붕대를 감은 채 목발을 하고 매일 보건실에 왔다. 그리고 1주일 만에 스스로 목발을 반납한 것이다. 관심을 받고 싶은 고민도 있었을 것이고, 친구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다문화 학생들이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통계도 전해진다.




  내가 근무하는 경기도 안산 지역에는 다문화 특구로 지정된 곳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은 고장이라 국경 없는 이국적인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작은 세상 안에 국제학교라 불릴 만큼 20여 개 나라의 다문화 학생이 다니는 학교가 몇 개 있다.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일본, 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골, 대만, 미국, 인도네시아, 콩고 등 국적도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닌다.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의 70% 정도의 다문화 학생과 30% 정도의 한국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세계 문화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중인데, 일부 한국 학생의 부모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가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전학을 가지 않고 꿋꿋하게 다니는 6학년 학생의 말을 기사로 접했다.


  “친구들이 좋아요.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즐겁고, 중학교 가면 각자 흩어져서 지금보다 다문화 친구들이 적어질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친구가 될 거예요.”

     

  이제 한국 사회는 단일 민족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 중에 다문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다문화 이웃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재들로 우리 안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육제도의 보완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세계화에 한발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는 일부터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다문화를 이해하는 부분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어른보다 훨씬 앞서간다고 생각된다.

    

  주변에 다문화 꽃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나눠주자. 우리 아이들도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되면 다문화 친구들이 된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 모두 이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담쟁이덩굴처럼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도록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일이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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