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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May 09. 2022

사랑스러운 땡감 나무 세 그루

사계절 생태체험의 현장에서

  운동장의 사계절이 회전문처럼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고 있는데 학생들은 어느새 훌쩍 성장해서 해마다 더 큰 세상 밖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때로는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오래된 학교 풍경 속에서 학생들에게 자연 관찰 생태체험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나는 겨우내 묵혀두었던 보건실 창가의 화분 분갈이를 해주며 양분의 흙을 듬뿍 퍼 담아 주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과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이 화단에 난 풀을 뽑아주고 봄꽃들을 찾아 생태 공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꽃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사진과 기록을 남기느라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들이 반짝였다. 학생들 덕분에 그 틈에 끼어 봄꽃 찾기 관찰활동에 나서니 누가 정확한 식물 이름을 많이 찾나 경쟁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오래 들여다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식물 한 포기마다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봄 까치(개불알풀), 비비추, 원추리, 냉이, 돌단풍, 제비꽃, 민들레, 작약, 산수유, 매화….


  학교의 사계절 중 봄 풍경이 으뜸이라 더욱 싱그러운 기운이 감돈다.

  봄꽃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아이들의 관찰 기록지에도 칭찬 도장이 하나씩 더해지며 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높아진다. 계절마다 마술을 부리는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며 여름꽃, 가을꽃을 기다리는 내 마음에도 눈 부신 햇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랗게 핀 키 작은 꽃들이 내 마음을 훔쳐내고 있다. '민들레와 씀바귀’ 보약 밥상을 차리는 약용식물이다.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꽃 모양이 너무 비슷한데 잎사귀가 다르다는 걸 식물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 씀바귀꽃 옆에 녹색으로 유혹하는 애플민트를 한 움큼 뜯어서 ‘모히토’ 칵테일이나 한잔 만들어 먹어볼까? 철쭉꽃은 졸업사진을 찍느라 자세를 취하는 학생들에게 머리 장식용으로 색색의 꽃잎들을 제공하고 있고,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벚꽃들과 여기저기서 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학생들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보건실 방문객 수가 증가해봄꽃들을 탓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층 보건실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여름 풍경은 또 어떠한가?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주변에 둘러선 짙푸른 나무들 속에서 파란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살찐 플라타너스의 넓은 나뭇잎은 한여름 내리쬐는 햇빛을 사이사이 막아내며 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생들의 땀방울을 식혀주는 용도로 쓰인다. 봄에 전기톱의 굉음을 내며 큰 가지만 남겨 두고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나무가 살아날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한여름 다시 무성하게 큰 나뭇잎으로 뒤덮어 제 역할을 다하고 또 겨울날 나뭇잎 치울 걱정을 하게 만든다.      

  앵두나무는 빨간 앵두를 어서 따가라고 손짓하는데, 학생들은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냥 따먹어도 된다고 말해도 다른 친구들을 위해 몇 개씩만 따서 맛을 본다. 하기야 달콤한 간식이 넘쳐나는데 호기심에 몇 개 맛을 보게 되면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뒤뜰에 서 있는 키 큰 살구나무는 2층 교사 휴게실에서 정면으로 내다보인다.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가지를 휘어잡은 채 맛깔난 살구 따 먹기 체험을 여기가 아니면 어디 가서 해볼 것인가?

   



  학교 안 운동장과 화단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가을날에도 신기한 것들이 넘쳐나서 나도 모르게 동화 속으로 빠져든다.

  동물, 곤충, 새와 나무 등…. 학교 울타리 안 땡감 나무가 유난히 예뻐 보이는 이유는 뭘까? 운동장 트랙 주변 화단의 감나무를 쳐다보며 빨갛게 매달린 감이 과연 단감인가 땡감인가 확인하면서 살랑대는 가을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한 개 따서 먹어봐야 알지? 에구 퉤퉤, 땡감이네!”


  전날 점심시간에 교직원 대여섯 명이 모여 앉아 운동장의 감을 어떻게 처리할지 밥알이 튀어나오게 제각각 의견을 내었다. 떨어지기 전에 따서 곶감을 만들어야 하네 건조기에 넣어서 감말랭이를 만들어야 하네 누가 따야 하네…. 저마다 경험한 감나무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운동장이 개방되어 있어서 외부인이 따가기 전에 학생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로 의견이 모였다. 세 그루의 감 따기 체험은 특수학급 사랑반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어서어서 익어라. 땡감들이여! 그동안 우리는 눈으로 실컷 먹어야지.”


  오래전 감나무 사건이 떠오른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뒷산으로 언니랑 감을 따러 갔다. 손이 닿는 곳까지 팔을 뻗다가 욕심이 나서 감나무 가지에 올라갔다. 감나무에 매달려 출렁출렁 춤을 추듯 긴 장대를 휘두르며 신이 났다. 아래쪽에 언니가 있었는데 비키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긴 대나무 장대를 놓아버렸다.

  “퍽, 아야!” 두 갈래로 땋은 언니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목 주변이 빨갛게 물들었다. 너무 놀라 넓은 감잎으로 머리통을 누르며 함께 울면서 집으로 향했던 기억….  


  요즘 마트에 가면 잘 익은 홍시가 넘쳐나서 사람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감이 익기를 기다리며 장대 들고 감 따는 풍경이 사라진 지 오래라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시골에는 감 딸 사람이 없어서 나무에 매달린 채 까치밥 신세로 전락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면, 도심에 사는 나는 탐스러운 대봉감을 볼 때마다 달콤했던 홍시가 생각나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곤 한다. 예전에는 땡감을 소금물 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를 덮어 사나흘 놓아두면 어느새 떫은맛이 사라지고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학교 안에는 벚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철쭉나무, 플라타너스, 앵두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개복숭아 나무, 탱자나무, 느티나무 등 별별 나무들이 많지만 유독 눈길을 끄는 감나무만 보면 정겹다. 내가 시골스러운 촌티를 내는 걸까?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 울타리 안에 과실나무가 이렇게도 많았었나 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딘 나무들이 나를 추억의 시간여행으로 인도해주었다.


  이렇게 예쁜 꽃과 나무를 보려면 숨은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학생 한 그루 한 그루 심고 가꾸려면 그보다 더한 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작은 꽃과 나무에도 눈길을 나눠주고 위로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많이 되찾아 왔으면 좋겠다.  또한 보건실을 찾는 시들시들한 학생 꽃송이들도 꽃과 나무처럼 활짝 핀 웃음꽃을 기대해 본다.    

 

  소리 없는 것들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바람과 햇살과 나무들이….”

      

https://m.blog.naver.com/69snowman/222141912656?view=img_5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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