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과 '초등학교' 단어가 생소함을 잊어가고 익숙해진 지 오래되었지만 나의 '국민학교' 시절의 '소풍' 전날 밤이 생각난다. 밤새 잠을 설치며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교회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내일 비가 안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빌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창문이 환해질 무렵 부스스 눈을 비비다가 벌떡 일어났다.
“치 이익. 치 이익….”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풍날인데 하나님은 대체 뭘 하시는 거야? 내 기도도 안 들어주고.”
방문을 팡 차며 밖을 내다보니 창문 아래서 고등어 굽는 소리가 치 이익…. 치 이익….
“아휴, 다행이네. 하나님 죄송해요. 오해해서.”
"하나님 비 오면 알죠?"
하마터면 하늘에 대고 주먹질을 할 뻔했다.
엄마 옆에서 김밥 끄트머리를 날름 집어 먹으며 빠뜨릴 수 없는 사이다병을 소풍 가방에 넣어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어쩌다 한번 가는 소풍날 아침의 풍경화가 눈에 선하다. 어린 맘을 설레게 하던 소풍날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만끽하는 기쁨을 나만 느낀 건 아닐 것이다.
“울 엄마는 맨날 옛날이야기만 한다”라고 퉁사리를 주던 우리 아이들이 언제부터인가 ‘검정 고무신’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서 함께 맞장구를 쳐주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 아득하기만 하고 다시 오기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겠지!
울 아이들 현장학습 날이면 엄마표 김밥을 만들고 넉넉하게 한 개 더 들려 보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준비 못 한 친구가 있을까 울 엄마 김밥이 제일 맛있다며 김밥집 차리면 떼돈 벌겠다고 엄지 척 부추기는 아들 때문이다. 그날은 하루 세끼 김밥 파티를 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무 때나 김밥집에 들러 먹을 수 있는 탓에 예전 김밥 맛이 안 나는 것 같다. 이런 즐거운 날에도 아이들 김밥을 싸면서 담임교사에게는 음료수 한 병 보낼 수 없는 요즘 시대의 부모들마음에도 추억이 함께하기를 기대해 본다.
오래전 근무하던 학교에서의 일이다. 홀로 딸아이를 키우던 학생 아버지께서 현장학습 날이라고 김밥집에 들러서 딸아이 도시락을 채워 보내셨다. 담임 선생님 도시락이라고 함께 사서 보내셨던 검정 비닐 속 하얀 일회용 포장에 담긴 김밥 도시락! 그 학급에 오직 그분만이 보내주신 김밥! 어떤 마음으로 김밥을 보내주셨을까 감히 짐작하면서 여러 명이 감동의 김밥을 나누어 먹었던 일이 잠시 머릿속에 스쳐 간다.
요즘 학생들은 현장학습 가는 날 어떤 기분이 느껴질까 궁금하다.
수시 때때로 자가용을 타고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도 자주 하는 시대에 살면서 어떤 추억을 떠올릴까?요즘 학생들도 교실 공부 대신 현장 체험 공부가 훨씬 재미있으리라 여기며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설렘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이 챙겨주지 못해 현장학습 가는 날 기분이 불편한 학생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일이다.예전에 초등학교4학년 아들이 책가방을 메고 전학을 간 날이 하필이면 현장학습을 가는 날이어서 운동장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가까운 곳으로 걸어서 이동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친구들과 금방 어깨동무하고 운동장을 나서는 아들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부산한 가을 아침 운동장 풍경을 뒤로한 채 보건실에 들어왔더니, 사서 선생님이 뒤따라 들어오며 손을 내민다. 아들내미 현장 체험학습 보냈다며 싸 온 김밥을 한입 가득 오물거리며 따뜻한 커피 두 잔 앞에 두고 뱃살과의 전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입맛이 없네' 하며 점만 찍기로 다짐했는데 그게 될. 랑. 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