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관계인 가족에게서 더 나아가 새로운 친구들 세상으로 두 번째 관계를 시작하는 일!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새싹이 뚫고 올라와 예정된 시간대로 꽃을 만들어 내는 기적과 같은 세상 경험처럼 흥미진진한 일이다.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 보다 매운 겨울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녁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권 나현 시인의 <<봄 바람난 년들>> 중에서.
시인은 언어의 마법사다. 바라보는 관점이 특별나고 은유적 표현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똑같은 꽃을 보고 느끼는 절제된 감정을 폭발시킨 결과물로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게 만든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째 힘든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 마음에도 이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봄꽃을 보면서 친구 얼굴을 떠올렸다. 특별한 봄날 반드시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친구야! 보고 싶다.’
입속에서 흥얼흥얼 생동하는 봄봄봄 타령! 봄바람 타고 어디만큼 도착했는지 친구 관계의 계절을 맞이하러 ‘우리도 싸게 나가보더라고.'
등굣길 다정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문득 학창 시절 친구들 생각이 났다. 세상을 다 가져갈 듯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에 무슨 근심 걱정이 있으랴!
‘이제 너희들도 친구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되어있단다. 부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길….’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어림잡아 20년은 친구 관계를 맺고 넓은 친구의 바다를 항해한다. 시냇물 같던 유치원생이 초등생 강물이 되고 중고등생 바다를 이루는 친구들 홍수 속에서 살아왔다.
친구 관계를 사계절에 비유해본다.
유년기 초등생 때 처음 만나는 친구들은 봄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싹을 틔우고 여리디 여린 봄꽃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를 처음 만나는 신세계를 맞이하는 것이다.
중학생 때는 조금 더 푸릇푸릇 성장하는 개구쟁이 여름 친구들이다.
고등학생 때는 머리가 무거워져 생각을 수확하는 사춘기 계절 같은 가을 친구들이다.
대학을 거쳐 사회로 나아갈 때 만난 친구는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 경쟁하며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거나 은퇴기를 맞이하여 비축된 자산으로 따뜻한 겨울잠에 들어가는 겨울 친구들이라 해야 할까.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의 친구를 만나고 있을까?'
그 많고 많았던 친구 중에 곁에 남아있는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고, 다시 옛날 봄 친구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친구가 너무 많아서 정리하고 싶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기억하기 싫은 친구, 내 곁을 떠나간 친구, 은둔형 외톨이처럼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나를 보호하게 만든 극지방 빙하 같은 친구…. 친구 관계의 단절감을 느끼고 외로움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어떤 친구가 가장 보고 싶은지, 현재의 친구 관계는 언제까지 유지하고 싶은지 스스로 해답을 구해보자.
봄, 여름, 가을 인생의 황금기에 만난 학창 시절의 꽃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창 시절 추억 속에는 우정이 녹아있어서 학교를 빼놓고 친구 관계를 설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친구 꽃이 활짝 피었을까? 본격적인 삶의 일터에서 만난 겨울꽃들이라고 피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겨울에도 온실에서 열심히 흘린 땀방울로 아름다운 겨울꽃도 피워낼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봄 여름 가을꽃들을 당해 낼 재주는 없으리라. 봄 여름 가을 친구들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함께 달렸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제일 보고 싶은 친구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어떤 친구를 찾아드려야 할까요?
친구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도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가 대신 당신을 떠올리고 있을 거예요.
보고 싶은 친구에게 바로 연락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학창 시절 친구는 계산이 필요 없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친구를 통해 배웠고 인생 고민 상담소가 따로 없었으니 같은 또래이기에 성장통을 겪으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점점 머리통이 커지고 넓은 바다로 항해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세상은 더 넓어졌다. 어느새 친구 탐험은 끝이 나고 이제는 바다처럼 넓었던 세상이 옹달샘 수준으로 작아졌다. 작아진 옹달샘 친구 세상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필요한 샘물을 퍼마셔도 언제나 그만큼의 우정을 맛보게 해 준다.이제는 우정의 넓이보다 깊이로 가늠될 뿐이다.
해피트리의 나뭇가지가 똑똑 떨어져 나가면서 그 위로 새싹이 올라오는 나무의 성장통을 바라다본다.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가위로 시원스레 이발하듯 가지치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누렇게 변해가는 가지를 꺾으려 하니 아직 더 매달려 있고 싶은가 보다. 저절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좀 더 기다려줘야지. 원두커피 찌꺼기를 화분 거름으로 섞어주며 어서 윤기 나는 잎사귀를 보여달라고 채근하고 있다. 한 나무처럼 늘 붙어있고 싶었는데 어느새 떨어져 나간 가지들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성장통을 겪으며 뿌리를 내리고 있을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미 굳건해진 뿌리들로 가지들을 밀어 올리며 비축한 양분들을 내어주고 있을 나이다. 스스로 성장하여 떨어져 나간 친구들은 제 역할을 다하며 잘살고 있으리라.
그런데 내 마음속 서운함 때문에 억지로 가지치기당한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가 가지치기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 혹시 그 친구들도 나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만나기만 하면 끊어진 친구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깨복쟁이 친구, 유머 있는 친구, 서로 다투던 친구,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를 만나고 싶어 진다. 고단했을 친구도 생각난다. 엄마를 일찍 잃고 가장이 되어 어린 동생들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웃들이 보내준 쌀을 보고 철없이 기뻐했다던 뒤늦은 친구의 고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