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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May 30. 2022

친구야  밥 묵었나?

불량식품을 아시나요?

  사람들은 왜 또다시 포켓몬 빵에 빠져드는 걸까? 옛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가 보다.

 

  어버이날에 아들이 사다 준 ‘쫀디기’ 과자를 남편과 즐겁게 나눠 먹고 있는 내가 참 웃기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맛보던 불량식품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불량식품’이라고 모두 나쁜 음식은 아니다. 어릴 적 먹었던 간식들을 친근감 있게 표현한 단어임을 밝혀둔다.)

     

  오늘 급식 메뉴를 보니 잔칫상이 따로 없고 내 생일상보다 맛나고 푸짐하다.

  5월 가정의 달이라고 메뉴가 날마다 ‘엄지 척!’ 우리 학교 영양교사도 최고!

  배고픈 시절 반찬 한두 개 싸 온 도시락에 비교할 수도 없다.     

 ‘*금일 식단 및 배식량 : 현미 통밀 밥, 감자옹심이 국, 양배추쌈/과일 쌈장, 열무김치,

모듬 캠핑 구이(삼겹살, 후랑크소시지 1조각, 야채), 키위 요구르트(1개)

  *금일 식재료 원산지(친환경 식재료) :감자, 당근, 마늘, 배, 사과, 양배추, 양파, 대파, 실파, 돼지고기, 애호박’


  점심시간에 실컷 먹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다가, 배가 아프다고 보건실로 몰려오는 학생들이 넘쳐나겠구먼!”


  지금 아이들보다 바깥 활동량이 많았던 어린 시절 배고팠던 기억으로 그 시대의 간식거리들이 눈앞에서 쫙 지나가며 생각만으로도 입맛이 당긴다. 점심을 거르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기에 간식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하지만, ‘불량식품’이라 여겨지던 먹거리들이 포만감과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학교급식으로 풍성해진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는 요즘 학생들에게 노란 ‘양은 도시락’ 이야기는 생소할지 모른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눠 먹었던 도시락 속에 묻어둔 추억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도 손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학창 시절 식문화를 추억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부모 세대를 이해하기는 더더욱 어렵더라도 그런 힘든 시대를 겪고 현재의 자식 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세대 간의 대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리라.



    

  학교급식과 학교 빵

  요즘 학교급식 메뉴를 보면 짜장면, 아이스크림, 피자, 우동, 김밥, 떡볶이, 과일, 떡,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고 넘쳐나는 음식들로 뱃속은 하루도 편히 쉴 날이 드물다.

  어릴 적 국민학교 입학식 날, 옥수숫 가루로 만든 ‘학교 빵’을 입학 선물로 나눠주었다. 그 후로도 5원, 10원, 15원 해마다 오르는 학교 빵을 신청해서 배급받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6학년 어느 날 신문 기사로 도배되었던 ‘학교 식중독 사건’이 터져서 학교급식 메뉴가 ‘옥수수빵’에서 ‘흰 우유’로 바뀌었다. 물론 도시락을 싸 와야 해서 학교급식이라고 하기보다는 점심 외에 따로 먹는 간식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지만, 점심 도시락도 싸 오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학교 빵이나 우유를 신청해서 먹는 일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우유는 못 먹어도 빈 우유 팩으로 만든 딱지로 딱지치기 왕이 되는 친구 또한 우상이었다. 두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자루에 가득 담긴 딱지를 어디다 쓰려고 기를 쓰고 따 모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운동선수와 라면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분위기 아래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 대항 체육대회에 나갈 운동선수를 뽑았다. 육상선수, 축구선수, 핸드볼 선수 등 운동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선발되어 수업이 끝나면 자발적으로 오후에 시합 연습에 참여하였다. 운동선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운동부 선수들은 오후에 간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여자 핸드볼 선수에 선발되었다. 간식은 귀한 ‘라면’이었는데 끓인 라면이 아니고 오독오독 씹어먹는 생라면 그대로다. 과자처럼 맛난 라면을 친구들과 매일 먹는 재미도 괜찮았다. 물론 핸드볼 연습도 열심히 한 덕분에 팔 힘이 강해져서 고등학교 체력장 시험을 볼 때 던지기 종목은 만점을 받았었다. 라면 덕분에 체력이 좋아졌다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즐겁게 먹은 간식이 필요한 칼로리를 보충해 주었을 것이다.     

  

  소풍날 만난 사이다와 독 사탕

  소풍날 빠지면 안 되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는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했던가? 어려서 삶은 달걀을 먹고 체해 식구들을 놀라게 했던 일로 소풍날엔 엄마가 삶은 달걀을 절대로 싸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삶은 달걀을 못 먹었을까? 친구하고 나눠 먹으면 되는데 엄마가 뭘 모르셨다. 요즘처럼 캔에 든 사이다도 아니고 초록색 큰 병에 담긴 사이다는 병뚜껑을 따면 탄산가스가 다 새어 나가 맛이 없어졌어도 사이다 한 병이면 대만족이었다. 소풍 길 내내 김 빠진 사이다병을 들고 다니며 배가 불룩해지도록 마셨고, 희고 단단한 독 사탕 혹은 눈깔사탕 몇 개만 덤으로 있어도 종일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지푸라기 달걀 꾸러미와 달걀 프라이

  점심때마다 교실 밖으로 나가던 친구가 있었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했던 친구를 위한답시고 학급 회의를 열어 모금하기로 했다. 모금한 성금을 가지고 시골 친구 집을 방문했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밭일하다 급히 들어오셔서 모금액은 사양하신 채 도리어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달걀 꾸러미를 주셔서 귀한 선물을 안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양계장 집 친구는 도시락 반찬으로 늘 달걀 프라이를 싸 왔다. 하얀 밥 위에 달걀 프라이가 두세 장 올려진 걸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도 양계장 집 딸이었으면 하고 소원할 때도 있었다. 친구들 반찬은 김치, 콩, 멸치가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김칫국물이 쏟아져 책에 빨간 얼룩을 남긴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달걀보다 콩과 멸치, 감자와 고구마가 더 비싼 고급 음식 재료인데, 그 시절 콩과 멸치 덕분에 큰 키는 아니더라도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다.      

  

  시원한 냉차와 아이스케키

  시골 운동회의 인기 간식은 단연 시원한 ‘냉차와 아이스케키’라고 말할 수 있다. 식용색소와 주황색 오렌지주스 가루를 넣어 만든 냉차와 얼린 것이 전부인데 운동회 날에는 반드시 사 먹어야 할 1순위 먹거리였다. 가게에서 파는 20원짜리 팥이 들어간 하드 종류는 고무주머니에 얼음을 넣고 냉기를 유지하는 기다란 아이스 통에 담겨있었고 녹기 전에 얼른 먹어야 했다. 친구들에게 약을 올리며 아이스케키를 아껴먹느라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날은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돌아다니는 장사꾼도 달리기 경주에서 꼴찌로 통과한 학생도 모두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아이스 통이 이제는 냉동고로 발전되어 사시사철 고급 아이스크림이 넘쳐나니 세월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

      

  개구리 뒷다리 튀김과 메뚜기 튀김

  ‘개구리 튀김’이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수도 있지만 고기 대용 단백질 보충 음식으로 ‘메뚜기 튀김’과 함께 예전에는 많이들 먹었다. 또한 남학생들에게는 개구리 잡기가 용돈 벌이의 수단인 동시에 놀이문화였다. 개구리를 잡아다 주면 10원 20원씩 용돈을 주던 어른들이 있어서 방과 후 학교 뒤 논둑길에는 개구리를 잡느라 지게막대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남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개구리 대신 참새를 잡는다고 소쿠리에 막대기를 받쳐둔 기억이 있는데 나에게 잡힐 참새는 없었다. 간혹 남학생들은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 친구도 있었다.


  300원 하던 칼국수와 군고구마

  시간이 흘러 도시로 유학 간 여고 시절 학교 앞 칼국수 집이 생각난다. 300원이면 커다란 그릇에 칼국수가 넘쳐났고, 혈기 왕성한 신체 나이라 하굣길에 삼삼오오 늘 칼국수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어쩔 수 없었다. 졸업 후 30년이 훌쩍 흘러 그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 찾아간 칼국수 가게는 예전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린 전주 한옥마을 도심 속에 자리한 모교는 외관이 조금 달라져 보였지만 반가운 마음에 울컥함이 올라왔다. 학교 옆 '전동성당'과 '경기전'의 모습도 새로 치장을 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세월 따라 내 모습이 변한 것처럼 원래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한국적인 색채보다는 이국적인 주변 거리 풍경에 취해서 잠시 벤치에 앉아 옛날로 돌아가 보았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오가는 길에 즐겨 사 먹었던 군고구마도 생각난다. 전동성당의 빨간 벽돌담 아래 자리를 잡았던 군고구마 장사 아저씨는 지금 살아계실까? 고구마를 사야 할 차례가 된 친구들의 무시무시한 농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어젯밤 군고구마 장사가 얼어 죽어서 오늘은 고구마가 없을걸?”

  “네 차례만 되면 아마 한여름에도 사람이 얼어 죽을 수 있을 거야.

  나는 당장 굶어 죽기 싫은데…. 하하하.”      

  

  복고풍 간식과 혼분식 도시락

  외식문화가 없던 시절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던 복고풍의 간식 종류들이 많았다. 딱딱한 고구마 과자와 소라 모양 과자, 눈깔사탕, 소보로 곰보빵과 찐빵, 만두, 호떡, 특별한 날 먹었던 짜장면, 옛날 통닭 등….

  혼분식을 장려하던 국민학교 시절 수요일이면 담임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를 하셨다. 어쩌다 쌀밥을 싸 오는 날은 잽싸게 친구 보리밥을 한 숟가락 떠서 내 도시락 위에 쫙 펴 발랐다. 쌀을 축내던 쥐 잡기 운동 때문에 쥐꼬리 수집 숙제를 해야 한다며, 쥐가 안 잡히는 날은 쥐꼬리 대신 그 귀한 ‘오징어 다리’를 문질러 눈속임을 했다던 담임선생님의 재미나고 난 말씀에도 맛난 쌀밥은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기생충 검사가 남긴 후유증.

  내가 첫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도 대변(기생충) 검사를 했다.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는데 어느 순간 개인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대변 검사가 폐지되었고 기생충박멸협회도 사라졌다. 대변 검사를 하는 날은 그야말로 학교에 똥 냄새가 진동하는 날이었다. 대변 봉투에 막대기로 콩알만큼 똥을 찍어 밀봉해서 가져와야 하는데 밀봉을 제대로 안 하고 들고 오는 학생, 비닐봉지 밖으로 밀려 나올 만큼 똥을 넣어오는 학생, 똥이 안 나온다고 개똥을 넣거나 울면서 학교에 지각하는 학생 등 봄철마다 난리를 겪었다. 대변 봉투를 수집하는 이틀 정도는 학급마다 똥 냄새를 피할 길이 없었고 전교생의 대변 봉투를 모아서 여러 겹의 비닐봉지로 밀봉 후 1차 수집장소인 교육청으로 보내야 하는 일도 고역이었다. 자가용이 귀했던 시절이라 시골 학교 주무관이 버스를 타고 대변 봉투를 들고 출장 가는 날은 뒤통수가 따갑도록 눈총을 받는 날이었다.


  내 어릴 적 대변 검사 때마다 보여준 기생충 슬라이드 필름에 놀랐던 경험이 있었고, 검사 결과에 따라 기생충이 확인된 학생들은 회충약을 먹은 후에도 배출된 기생충 숫자를 학교에 통보해야 했으니 끔찍한 일이 다시없었다. 아마도 불량식품을 먹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탓에 기생충으로 배가 아픈 친구들이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요즘 구충제는 좋아져서 기생충을 녹여버리기 때문에 배출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자연 채식을 선호하는 영향에 따라 봄가을 식구들의 구충제 복용도 가끔은 챙길 필요가 있다.     

  

  양호실과 보건실

  그 시절 배가 아파도 ‘양호실’ 시골 학교에는 없었고 나도 도시의 고등학교에 가서야 양호실을 만날 수 있었다. 아파야만 선생님 허락을 받고 양호실을 갈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양호실이 궁금해서 배가 아프다고 거짓 핑계를 대고 1시간을 누워있었다.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다던 ‘양호실’ 호칭이 사라지고 지금은 거의 모든 학교에 새로운 명칭의 ‘보건실’이 존재한다. 시대의 다양한 요구와 건강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현대식으로 설치한 ‘보건실’이 많아졌다. 또한 변화된 역할에 맞게 빠르게 대응하는 ‘보건교사’가 교실과 보건실을 오가며 보건수업과 보건 서비스를 위하여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풀빵 구리 쥐들처럼 들락날락하는 학생들과 매일 지지고 볶기를 반복하는 친근한 ‘보건 선생님’이 가까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면 좋겠다.

              

  먹는 음식과 배출하는 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건강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위대한 진실을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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