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쓰장 Jun 06. 2022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교무부장 교사가 자전거 배우기에 도전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자전거는 어려서 배워야 하는데 어른이 아직 자전거를 못 타는 걸 보니 시골 출신이 아닌가 보다’라며 응원을 보냈다.

     

  나도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큰 자전거를 배우느라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며 따라오는 친구에게 절대 손을 놓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며 앞만 보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던 일, 몰래 손을 놓고 따라오며 아직 붙잡고 있다고 거짓말로 안심시키던 친구, 몇 번 넘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비가 오는 젖은 땅에 안 넘어지려고 나도 모르게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었다. 자전거를 배웠던 사람들의 비슷한 경험담일 것이다. 주변에 자전거도로가 있어도 위험한 교통상황이 많아서 요즘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일은 힘들어 보인다.

      

  혼자와 함께!” 요즘 학생들과 옛날 학생들의 놀이문화를 살펴본다. 

  현대식 오락 놀이는 대부분 ‘학생 혼자서 하는 것’과 ‘컴퓨터 책상’ 앞에서 하는 좁은 게임 장소로 한정해 볼 수 있겠다. 옛날 놀이문화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과 ‘운동장이나 놀이터' 같은 넓은 물리적 공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현대의 컴퓨터 책상 앞에서 하는 가상세계 속 놀이가 운동장보다 훨씬 넓은 장소일 수도 있다. 방과 후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원으로 향하기도 하고, 친구가 굳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되면 혼자 휴대전화 게임에 몰두할 수도 있다. 심하면 게임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옛날 놀이는 대부분 함께 놀아야 하고 더구나 컴퓨터가 없어서 중독상태에 이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징어 게임' 영화 속의 옛날식 놀이문화 열풍으로 현대의 아이들도 혼자에서 함께하는 놀이로 관심이 옮겨지는 현상은 바람직해 보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숨바꼭질, 딱지치기, 달고나 뽑기, 윷놀이, 줄다리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투호, 고무줄, 비석 치기, 자치기, 고누, 땅따먹기, 뽑기 판, 말뚝박기, 줄다리기, 오징어, 쥐불놀이 등 옛날 놀이의 공통점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라는 것이다.

     

 고무줄놀이!  '무찌르자 오랑캐.'

  70~80년대 사회 분위기는 반공을 강조하던 시대였다, 여학생들이 흔히 하는 고무줄놀이를 하면서도 ‘무찌르자 오랑캐’로 시작하는 동요에 맞춰 신나게 뛰었다. 지금의 인기 아이돌 군무처럼 노래 박자와 리듬을 타며 검정 고무줄만 몇 개 있으면 어디서든 놀이 무대가 펼쳐졌다. 무릎 높이에서 허리, 가슴, 머리 높이까지 고무줄을 올리며 다리를 쫙쫙 뻗어 고무줄을 넘는 재미와 신체 활동으로 운동이 따로 필요 없었고 비만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여학생들 고무줄놀이 옆에서는 호시탐탐 고무줄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남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점이 보인다 싶으면 잽싸게 달려와 문방용 칼로 고무줄을 잘라가곤 했다. 그 고무줄로 새총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지 고무줄놀이 훼방을 놓는 재미를 노렸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일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단체로 쌈박질에 나서면 늘 앞에 서서 째려보는 사람이 나였다. 내가 중간 정도 키였는데도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남학생을 혼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내 손에 쌍코피를 터트려주는 남학생이 몇 있기도 했는데 지금도 깨복쟁이 친구들을 만나면 나에게 맞은 기억만 난다고 놀리곤 한다. 내가 여학생이라 봐준 것이지 내 손에 잡힐 남학생이 어디 있었겠는가? 참 순진하고 착한 친구들이었다.

  “미안하다 친구들아! 그렇다고 지금 맞아 줄 수도 없고.

     

  추억 속 학교 운동회와 동네잔치.

  어릴 적 운동회 날은 기마전, 차전놀이, 곤봉체조, 매스게임 등을 선보이느라 한 달 전부터 연습했다. 연습할 때는 힘들었어도 막상 운동회날에는 틀리지 않으려고 긴장하면서 박수를 받을 때면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요즘의 운동회는 이런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그야말로 하루를 신나게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들로 구성한다. 또한 가족이 참석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도록 하고 단체급식을 하기도 한다.     

  몇 해 전 학교 운동회 때 청백 계주를 하는데 1학년 남학생은 달려오는 주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바통을 받아서 주행하는 반대 방향으로 다가 역전을 당해서 웃음바다가 된 일이 있었다. 3학년 여학생은 벗겨진 운동화 때문에 되돌아가 신발을 신느라 결국 달리기 우승을 놓쳤고, 친구들이 화풀이하는 바람에 속상한 나머지 다음날 결석하는 일도 있었다. 추억의 학부모 달리기 시간이면 몸보다 마음이 앞서는 통에 넘어져 다치는 학부모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구경 나온 학부모가 자녀를 응원하다 흥분하여 쓰러져 119를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깨어나서 참 다행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 운동회는 학부모나 학생들 모두를 설레게 한다. 동네 사람들의 잔칫날이었고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함께하는 축제장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마을 대청소!

  매달 1일과 15일이면 새벽 6시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 마을 대청소를 했다. 읍내에 있는 관공서와 기관 단체의 직원, 학생, 교사, 주민 등이 '새벽종이 울렸네' 노래 사이렌 길거리 방송에 맞추어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동네를 행진하며 쓰레기를 치웠다. 어린 나이에도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마을 청소에 참여하기 위해 전 날밤 챙겨둔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그 새벽 운동장에서 담임선생님께 봉사활동 칭찬을 듣기 위한 친구들과의 경쟁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청소 놀이 숙제였다고 변명해도 좋으리라.

    

  오래전 교실 풍경!  

  놀이와 혼돈되는 노동 놀이 흔적이라 해도  재미있는 추억이 쌓여 있었다. 50명 넘게 앉아 공부했던 학급 교실, 기다란 책상에 두 명씩 앉아서 책상 가운데 금을 그어놓고 넘어오는 물건들은 무조건 내 것! 또르르 굴러오는 지우개 따먹기 놀이에 안성맞춤이다.

  농촌지역이라 농번기가 되면 모내기를 돕느라고 결석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못줄을 잡거나 젖먹이 동생을 업고 다니느라 농번기에는 아이들 손이라도 빌릴 정도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셈이다. 어떤 날은 동네에 초상이 나서 꽃상여 앞에서 만장 깃발을 들고 가느라 일부러 결석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 대가로 용돈을 받아 만화영화 주인공이 그려진 탐나는 새 자석 필통을 사서 다음 날 등교하곤 했다.


  (*만장 : 고인에 대하여 슬퍼하며 지은 글이나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으로, 상여 행렬 앞쪽에 위치한다.)

     

  그 외에도 학교와 관련된 추억 놀이가 끝없이 샘솟는다. 학교 옆 개울가에서 점심시간 물놀이를 하다가 5교시 수업을 땡땡이치던 날 담임선생님께 혼난 일, 생명 존중을 실천한다고 참새의 무덤을 만들어 주던 일, 현충사로 수학여행 가서 어떤 귀신놀이를 할까 잠 못 이룬 밤, 교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코스모스와 채송화 화단 길을 가꾸던 일, 겨울이면 솔방울 땔감을 모으던 일, 여름 방학 숙제로 퇴비를 만드느라 낫을 들고 풀을 베거나, 편지 봉투 한가득 잔디 씨를 채우기 위해 손톱 사이 풀 물이 들도록 깨알 같은 잔디 씨를 훑던 일…. 한국 잔디의 품질이 좋은 탓에 그 시절 잔디 씨는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이라고 했었다. 잔디 씨를 모으는 일을 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방학 숙제를 하려고 친구들과 어울려 대자연 놀이터인 들판을 싸돌아다니는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다.


  입학식과 빛나는 졸업식

  입학식 날에는 가슴에 이름표와 손수건을 달고 운동장에 서 있는 어린 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입학생에게 왜 손수건을 달아줬을까? 콧물을 줄줄 흘리던 아이들이 참 많았다. 몇 킬로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읍내 학교까지 언니 오빠들의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느라 힘들 법도 한데 체력만큼은 대단하다. 그 체력이 지금의 국력을 만든 것은 아닐까?

  빛나는 졸업장을 받는 졸업식장 눈물바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분명 옛날 세대이리라. 지금이야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시대이니 상급학교 진학이 당연한 것처럼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옛날에는 국민학교 졸업이 마지막 학력이고 중학교 진학이 어려운 친구들도 있었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매달 수업료를 내야 했고, 교과서 뒷면에 수업료를 낼 때마다 도장이 한 개씩 찍혔다. 몇 달째 도장을 못 받는 친구들은 아침마다 등교하는 일이 얼마나 싫었을까? 그렇게 힘들게 다닌 학교라서 개근상은 영광이었고 빛나는 졸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졸업식 노래가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울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아 안녕!'


  “왕눈이 영준, 춤쟁이 영주, 덜렁이 희순, 양계장 집 은선, 아이스케키 집 래규, 경일, 선자, 영심, 미란, 은주, 해성, 경원, 정훈, 양금, 인숙, 상기, 오규, 춘민, 민자, 경임, 현미, 명금, 현철, 열호, 군철, 철교, 옥희, 미애, 진희, 태석, 병구, 문종, 희경, 봉희, 영란, 종섭, 소미, 경숙, 정희, 홍석, 용안, 형, 혜경, 행숙, 미순, 용상, 지원….”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친구들의 이름이다.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먼저 간 친구들도 있고…. 내 마음속에 담겨있는 깨복쟁이 친구들 이름을 그냥 한 명 한 명 불러보싶었다.

      

  옛날 풍경 속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추억에 빠져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 같다. 친구들과 좋은 추억도 가족과의 추억처럼 과거를 바탕으로 성장하며 미래로 향한다.

  요즘 학생들은 지금의 학교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원만한 친구 관계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예전 시대와는 분명 다른 관심과 흥미, 놀이문화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가기를 바란다.


           


이전 02화 친구야 밥 묵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