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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Jul 25. 2022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특별한 선물

당신의 이웃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는 단골로 이용하는 미용실, 빵집, 마트, 과일가게 등 친근한 동네 이웃들이 살고 있다. 갑자기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을 둘 가까운 이웃이 있다면 세상살이가 조금은 여유롭고 미소 짓는 일을 자주 경험하지 않겠는가? 조금만 옆으로 눈을 돌려보자. 특별한 이웃 친구들이 반겨줄 것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살게 되면서 앞집과 마주하면서도 서먹서먹하고, 층간 소음으로 얼굴을 붉히며 관리소에 전화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심지어 불편한 이웃 때문에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이사할 때마다 서로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자’라는 생각만 가져도 모두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될 텐데 요즘 세상에 바랄 걸 바라야지 그 또한 어려운 일이다.

    

  2020년 5월, '가정의 달.’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조용한 일상을 보내는 분위기였다.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과 자식들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의 스피커폰 기능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 뉴스를 탄다. 집단 감염의 위험 때문에 면회도 제한하는 상황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한 만남의 시간을 허락하고 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볼을 비비며 등을 쓸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며 손가락 하트라도 유리창 너머로 보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지켜보는 내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특별한 기념일이라도 있어 바쁜 일상에서 가족에게 소홀해진 핑계를 만회할 수 있게 되는가 보다. 안타까운 화면을 접하며 나도 다음날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뵈러 갈 생각에 들뜬 저녁 시간을 보냈다.


 ‘어버이날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 1층 어린이집 - '

    

  퇴근길에 현관 문고리에 걸린 투명 비닐봉지 속 작은 사각 플라스틱 통이 눈에 들어왔다. 메모지에는 탐스러운 장미 꽃다발 그림과 색종이 카네이션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견과류가 많이 섞인 쫄깃한 약밥이 입맛을 자극해서 외투를 벗자마자 한 숟가락 가득 오물오물, 훌륭한 저녁 식사였다. 내가 사는 같은 동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특별한 날의 선물이었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늘 아이를 맡기러 오는 방문객으로 붐빈다.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어린이집에 보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머지않은 미래에 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손주를 미리 보고 있는 듯했다. 어린이 집하고 접해있는 1층 화단에서는 예쁜 화분을 만날 수 있다. 요새는 화단에 아이들의 얼굴 사진이 꽂힌 팻말과 함께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철쭉과 라일락, 앵두나무 아래로 둥글게 무리 지어 놓인 화분들 속에서 활짝 핀 얼굴들이 빠끔히 내다본다. 돌고래 모양의 돌멩이와 제주도 모양을 한 돌멩이가 화단의 꽃들과 어우러져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렇게 지나다니면서도 당장 내 아이를 맡기지 않은 탓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먹는 것에 약한 것이 사람 마음인지 특별한 간식으로 인해 미소가 번진다. 텔레비전 광고처럼 “친구랑 나눠 먹어!”라며 내미는 손길 같았다. 아이들은 먹을거리가 가진 것 전부인데 전부를 나누어 주는 순수한 마음에 어른인 나는 뭘 나눠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뜻하지 않은 작은 관심이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여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관심을 보여주면 좋을까? 노란 메모지에 감사의 뜻을 적어서 1층 어린이집 현관문에 붙였다. 밤늦도록 불을 밝힌 이웃들이 많은 걸 보니 내일 아침 어린이집 현관문에는 아마도 알록달록 메모지가 가득할 것 같은 기대감이 올라왔다.     

    

  특별한 선물에 감사하다고, 행복한 어린이집 이웃으로 함께해서 너무 좋다고.’




  엊그제 휴일에는 따뜻한 봄기운이 좋아서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는데 갑자기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위층에서 앞 베란다 벽을 타고 아래층 우리 집 베란다 창문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순식간에 바닥이 물로 흥건하게 젖었다. 위층 베란다에 놓인 화분들이 많아서 호스로 창 쪽을 향해 물을 한꺼번에 주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몇 차례 이런 일이 있어서 창문을 열어놓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도 방심하고 있었나 보다.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올해는 몇 번을 더 참다가 올라가서 말을 해야 할까 망설여졌다. 위층 러닝머신에서 뛰는 소리가 가끔 들려도 지구력이 약한 지 오래 뛰지 않기에 그냥 참고 넘어갔는데 이번 일은 물걸레질을 하고 나니 괜히 심술이 났다.

     

  작년에 뒤 베란다 세탁실 천정에 물이 새어 윗집에서 공사를 해주는 바람에 받아둔 연락처가 생각나서 전화 문자메시지로 정중하게 주의를 부탁드렸더니 답신이 왔다. '앞으로 주의하겠다, 미안하다고….’ 문자메시지 몇 글자에 또 마음이 금세 풀린다. 보내지 말 걸 그랬나 하고 미안해져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다시 답신을 보냈다.


  아래층에는 고등학생 누나와 중학생인 남동생 남매가 산다. 방학 때면 부모가 일터에 나가고 남매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낮에 다투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오누이가 어쩌다 티격태격하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 괴성을 지르며 날카롭게 싸우는 소리가 참기 힘들 정도다. 우리 집 남매가 다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고 비교가 안 될뿐더러, 심지어 밤 12시 넘는 시간에도 밤잠을 깨울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딸아이가 고3을 보내며 호소력 있는 메모도 붙여보고 경비실에 연락도 해보고 급기야 내가 두어 번 내려가 타일러도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아래층 남매 어머니가 딸아이의 메모를 읽었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그 뒤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냥 그러려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나 했는데 두 해가 바뀌어도 여전하고 목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커졌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면서 운동을 한답시고 방바닥에 허리를 쿵쿵 내리쳤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 올라오겠다고 잔소리를 했더니 내 집에서 운동도 못 하게 한다며 투덜거린다. 내 잔소리가 과한 탓에 버럭 기분이 상한 건 알겠지만 나도 위층에서 그렇게 쿵쿵거리면 싫다고 결국 말다툼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이웃을 잘못 만난 건 아닐까? 우리 집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이웃일까?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피해를 크게 받은 것처럼 느껴지고 남에게는 피해를 덜 주는 것처럼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뜻을 새겨볼 일이다. 소통이 많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이웃사촌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어색한 시간을 날려 보내고 같은 공동주택에서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지금 이웃들은 당신이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내 이웃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이 내게 준 특별한 깨달음의 선물이다.

  어버이날에 만난 어린이가 이 순간 모범적인 순백의 어버이 같고 스승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다섯 살 꼬마 스승님을 곧 만날 것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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