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직장은 3월과 9월 교원 인사이동으로 환영회와 송별회를 한다. 정년퇴직과 명예퇴직, 정기 인사이동 등 만남과 헤어짐이 매년 반복된다. 한 학교에 2년에서 5년을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긴다. 매년 새로운 구성원을 만나게 되고 또 떠나보내게 된다.
코로나 위기 속에 학교 내의 집합 자체가 불가능한 시기도 있었지만, 코로나 이전 특별한 정년 퇴임식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보통의 퇴임식은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의 친목회가 주가 되어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학교를 옮기는 사람들의 송별회를 겸하여 조촐하게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내가 참석한 정년 퇴임식은 지인의 36년간 교직 생활을 마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자리였다. 일생을 교직에 헌신한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들과 딸이 학교 밖에서 특별히 마련한 식사자리로 그동안 곁에서 힘이 되어준 어머니의 지인들을 초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가족, 직장 동료, 모임 팀별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함께 지내왔던 시간을 추억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며 축하해주었다. 아들딸의 사랑스러운 축하 편지 낭독에 이어 지인들의 축복 속에 마지막 해를 함께 근무한 직원들과의 석별의 정을 새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눈가에 촉촉해진 이슬과 함박웃음이 교대로 이어졌다.
정년퇴직을 맞이한 10년 연상의 인생 선배님이자 30년의 세월 동안 내 손을 잡아준 분이었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솔대(소나무와 대나무)의 푸른 기상을 학교명으로 가진 곳에 같은 날 발령받아 오면서 처음 만났다. 스물셋에 푸른 청춘의 꿈을 키우며 초임 시골 학교를 거쳐 도회지에서의 객지 생활이 두려웠던 나에게 언니 같은 따뜻함으로 품어주셨다. 여러 해 동료로 이어져 온 인연으로 딸아이의 태명 ‘곱단이’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주신 분!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곱단이 ‘이모들’과의 끈끈한 인연은 오래도록 계속 이어질 것이다.
‘30년의 세월 동안 따뜻하게 곁을 내어주었던 친구들과 더 뜨거운 마음으로 또 다른 서른 해를 건강하게 함께해 나가시길 소망해본다.’
직장 동료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떠올려 본다.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한 공간에서 머물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퇴직 동료에게 사람들은 어떤 찬사를 보내고 있을까? 때론 경쟁 관계에 있기도 하고 조직문화에 마음 상하기도 하고 협력하여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을 것이다. 인생의 친구를 만나기도 했을 것이고 어쩌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서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영향으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퇴직 동료를 떠나보내는지, 나는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
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 한길만 바라보고 달려왔다고 직장에 뼈를 묻었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시대에 2~3년 단위로 경력을 쌓아 이직하는 사회현상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대단한 일이다. 애정 어린 헌신이 녹아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기에 박수받고 떠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주변에 힘들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 학교 사회에서도 명퇴 바람이 불고 정년까지 이어가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사회까지 연관된 인간관계 속에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펼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해가 거듭될수록 피부로 느낀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직장이라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다. 평생직장이라 여기며 젊음과 땀으로 이룩해낸 성과를 뒤로하고 퇴장하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직장인들에게도 제2의 인생이 펼쳐지기를 기원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름다운 마무리 자리에서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지 않도록 날마다 헤어질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리라. 어떤 연습이 필요한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일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연습이었다면 지금 당장 헤어져도 당당하고 두렵지 않을 것이다."
직장생활의 마무리와 더불어 모임 뒤의 해체와 헤어짐도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만남은 언제인가 끝이 있기 마련이고 유지 상황에 따라 분명 마무리가 필요하리라. 더 큰 자유를 원하는 친구가 있으면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모임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퇴직 후 전원생활로 돌아간 친구도,
왕성한 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친구도,
현직에서 마무리를 준비하는 친구도,
같은 하늘 아래서 영영 이별을 맞이한 친구도,
자유의지로 떠나기를 원하는 친구도 있을 수 있다.
30년을 함께한 나의 모임도 중간 마무리와 휴식이 필요했다. 혼자만의 사색이 필요한 친구에게 자유로운 마음으로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떠나가도록 애정 어린 박수로 보내 드렸다. 서로 구속하는 마음이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때때로 만남과 헤어짐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연습이 필요하다.
헤어짐이 두려워서 사람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게 하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나에게도 이런 헤어짐이 머지않아 다가올 텐데 진정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마지막에 정말 의미 있는 청춘을 보냈노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