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

로드리게스-라 쿰파르시타, 피아졸라- 사계

by 피아니스트조현영



뮤즈> 오늘은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이라는 제목으로 남미의 음악 두 곡 듣겠습니다.


디오니소스>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 나이가 들수록 뭔가에 끌리는 시간들이 점차 줄어들어서 아쉽던 참인데, 잘됐네요. 어떤 곡인가요?

뮤즈> 첫 곡은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곡 로드리게스의 ‘라 쿰파르시타’입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탱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음악을 먼저 들어보죠.


로드리게스-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연주: 반도네온 오케스트라 탱고 드 티피카

https://youtu.be/40SWD7NSjAI



디오니소스> 이 곡이었군요. 제목은 몰랐지만 음악은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곡인지 설명 부탁드릴게요.

뮤즈> 제목은 ‘라 쿰파르시타’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가장행렬’입니다. 가장행렬이란 특별한 날 또는 축일에 사람들이 여러 모습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바꾸어 꾸미고 벌이는 행렬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으면 더 용감해지고 자유로워지잖아요. 마음껏 자신이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디오니소스> 제목만큼 음악도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작곡가가 로드리게스라고 하셨죠? 처음 듣는 작곡가인데,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뮤즈> 아주 유명한 작곡가는 아니고요, 우루과이의 일반 학생이었습니다. 탱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탄생한 탱고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런데 워낙 아르헨티나 탱고의 위력이 대단했고, 반면에 몬테비데오의 탱고는 소멸돼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디오니소스> 그래도 일반인들은 탱고 하면 이 음악이 떠오릅니다.

뮤즈> 네. 맞아요. 지금은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 작품을 제외하고는 탱고를 잘 모르는데요, 1917년에 이 곡이 작곡되었을 때는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원래 이 곡은 몬테비데오에서 열릴 작은 행사에 연주될 음악으로 작곡됐었는데, 곡이 너무 좋다 보니 행사 주관자가 원곡을 탱고곡으로 만들고 가사도 붙여서 원작가인 로드리게스의 동의 없이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이후에 한 노래에 두 가지의 가사가 붙여서 불렸고, 두 사람 사이에 법적 분쟁까지 벌어지면서 큰 싸움으로 변하게 되죠. 아무튼 곡의 역사는 차치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탱고 하면 이 곡을 말합니다.


디오니소스> 탱고는 쿠바의 아바네라가 아르헨티나에 유입되면서 탱고라는 장르로 정착됐다고 하셨죠?

뮤즈> 네, 우리는 탱고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땅고’라고 발음합니다. 19세기에 유럽의 댄스가 이민자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댄스가 혼합되고, 쿠바의 아바네라가 됩니다. 거기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강한 리듬까지 혼합되고, 그것이 또 아르헨티나로 유입되면서 복합 댄스인 ‘땅고’가 탄생하죠.


디오니소스> 탱고는 부둣가에서 남자들끼리 서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췄던 춤이라고 하셨죠?

뮤즈>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췄던 춤이죠. 어쩌면 그래서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남자가 남자랑 춤을 춘다는 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안 어울리잖아요.


디오니소스> 강렬한 끌림! 예술가들은 어떨 때 이런 느낌을 느끼나요?

뮤즈> 음... 아무래도 전 음악가이고 연주자이니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서 이런 감정을 가장 진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두 번째 들을 음악이 바로 그런 음악입니다.


디오니소스> 두 번째 음악도 탱고인가요?

뮤즈> 탱고 풍의 음악이죠. 밀고 당기면서 끈적끈적하기도 했다가, 섬광처럼 강렬하기도 했다가 하는 음악입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작곡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에서 ‘겨울’이에요.


디오니소스> 비발디의 사계처럼 사계절을 노래한 곡인가요?

뮤즈> 피아졸라의 사계의 원제목은 '네 계절의 포르테냐'로 포르테냐는 아르헨티나의 민속음악을 뜻합니다. 비발디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사계절을 염두하고 모음곡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기에 작곡된 독자적인 작품들이에요.


처음 1965년 'Verno Porteno(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름)'을 작곡하고 난 후 'Otono Porteno(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을'을, 그리고 '겨울', '봄'의 순서로 1970년까지 각기 따로 작곡됐고 마지막에 이 곡을 모아 자신이 이끄는 5중주단이 연주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4계절(Cuatro Estaciones)'이란 이름이 붙여졌어요.


클래식에서 ‘사계’를 주제로 작곡한 사람들이 여럿 있죠. 비발디뿐만 아니라 하이든, 차이코프스키, 지금 들을 피아졸라가 있어요. 아르헨티나도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긴 합니다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우리나라랑 계절이 좀 다릅니다. 지금 우리는 겨울인데, 아르헨티나는 여름입니다. 정반대죠. 오늘 들을 곡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이니까 한국의 여름에 들어야 하는데, 뭔가 강렬하게 끌려서 들어 보기로 합니다.


디오니소스> 너무 신비로워요. 같은 시간 같은 지구에서 살면서 누구는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누구는 여름옷을 입고 얼음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데 연주자 입장에서 이 음악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강렬하게 끌리셨는지 궁금해요.

뮤즈> 어떤 부분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워요. 그냥 처음 듣는 순간 강렬하게 끌렸어요. 전체적인 분위기가 머리 끝에서부터 손끝까지 격정적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표현할 말을 못 찾겠더라고요.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죠. 사전에서 찾아보면 뛰어난 예술작품(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등)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곤란, 현기증, 위경련, 전신마비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랍니다. 저는 위경련이나 전신마비까진 아니었지만 숨 막힐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눈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귀로 들리는 소리에도 이런 반응은 가능해요. 모든 악기들이 숨죽이고 있다가 첫 음부터 함께 시작하는데, 아주 천천히 음들이 진행하다가 점차적으로 격해져요. 음악으로 들을 뿐인데 장면이 그려졌어요. 격하게 사랑하지만 이성의 힘으로 객관적 거리를 두고 있던 두 남녀가 서로를 응시하며 망설이다가 하나가 되고, 그랬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 이럴 때는 정말 제가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말로는 표현이 힘드네요.


디오니소스> 직접 연주하신 적도 있나요?

뮤즈> 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무대에서 자주 연주했어요. 피아노 트리오 버전으로 연주하는데, 매번 무대에서 내려오면 너무 집중한 탓인지 땀을 엄청나게 흘려요. 그런데 연주자 입장에선 너무 감성에 젖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 곡이 격정적이고 감성적일수록 최대한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디오니소스> 이럴 때는 저도 스스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뭐든 직접 하는 사람과 간접으로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솔직히는 무대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어떤 건 지 완벽하게는 이해가 되질 않아요.

뮤즈> 당연하죠. 저도 다른 분야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공감하진 못하거든요. 이런 느낌을 피아졸라 연주의 대가인 바이얼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말로 대신해 볼게요.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연주해왔다. 마르첼로, 비발디부터 슈니트케, 존 아담스, 루이지 노노 등 최근 작에 이르기까지. 그런 내가 피아졸라에 음악에 푹 빠져 버렸다. 그의 음악은 내게 모든 일상적인 것들과 모든 절망을 잊게 해준다. 아스토르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로 하여금 일방적인 강의 같은 음악이 아니라, 청중에게 진정으로 말을 거는 현대음악의 한 단면을 탐구하게 해 주었다.” – 기돈 크레머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계 중 ‘겨울’

연주: 노르웨이 트롤하임 솔리스트

Invierno porteno, Astor Piazzolla,

https://youtu.be/b-q4FLTCz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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