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지만 앉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집기도 하니 점점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과학적이고 경이로운 일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져 흔하게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 아이의 변화는 날마다 기적이고 신비였다. 일기장을 들춰보면 황금똥 쌌다고 파티하고, 배 밀고 이만큼 움직였다고 기뻐하고,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렀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록이 무수하다.
6개월이 지나면서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아이와 집안에만 있는 게 답답했던 나는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다. 그 시기의 문화센터 강좌 등록은 전공학과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다. 한 반에 정원은 몇 명인지, 나의 일정과 맞는 시간에 원하는 강의가 있는지, 그 강의에 대한 엄마들의 반응은 어떤 지를 계속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검색한다. 강의 설명만 읽어서는 모두 좋은 수업이지만 다 들을 수도 없고,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도 모르고 하니 덜컥 신청하지 못한다. 이 시기의 엄마들이야말로 내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물론 그 수업 덕택에 바람 쐬고 수다를 떨 수 있는 합법적인 시간을 갖고 싶은 것도 한몫한다. 여하튼 모두들 육아 박사다. 특히 둘째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겐 알 수 없는 묘한 포스가 느껴진다. 이건 결코 엄마의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나처럼 또래 엄마들보다 나이가 있는 엄마는 둘째 엄마 앞에선 더 집중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경험이 최고의 지식이니! 절대 이론과 실제는 동일하지 않더라.
여러 관문을 거쳐 결정한 과목은 트렌디한 통합형 음악수업이었다. 교육이 '백년대계'라지만 실제로 현장에서의 교육은 상당히 트렌드를 탄다. 난 음악교육 공부를 했고 실제로 전공생들을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이고 나름 육아에 관한 지식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6개월 아이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엄마가 음악 선생님인데 직접 가르치는 경우는 반반이다. 그래서 좋은 경우가 있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요즘은 다양한 교구와 교재들이 많아서 오히려 선별하기가 어렵다. 내가 공부했던 독일의 음악교육은 한 교육 시스템을 오래 지속하는 경향이라 우리나라에서 접목하기가 녹록지 않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배웠던 바이엘도 독일 교육자의 이름이다. (사실 이 사람의 이름은 Beyer ‘바이어’로 읽어야 맞지만,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면서 발음이 ‘바이엘’로 굳혀졌다. 이 바이어는 1803년부터 1863년까지 살았던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교육가인데, 피아노의 기본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이 교재를 많이 사용한다.)
문화센터의 수업은 음악수업이라고는 하지만 악기를 직접 다룬다기보다는 흐르는 음악에 아이가 어떤 반응을 하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 연령에 악기 자체를 가르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손가락으로 치발기나 잡는 수준인 것을, 소근육이 발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대체적으로 이런 수업들은 흥이 많고 밝은 표정의 선생님들이 진행하신다. 엄마와 교감도 잘하시고 수업과 관계해 이런저런 육아에 관한 정보들을 알려주면서 진행을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가게 된다. 대학에서만 강의를 했던 나는 그 선생님들에게서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하는 기술을 배운다.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배운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라서 거울 보면서 표정 연습을 무지 했다. 나도 실제로 밝은 표정의 교수님들한테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어색하지만 노력했다.
누구든 밝은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싶은 건 매 한 가지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은가!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악은 대부분 짧고 밝으면서 가사가 있는 동요였다. 그 노래를 듣고 따라 하면서 율동을 하고, 엄마가 아이에게 표현하는 수업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오감발달 수업이다. 들으니 청각이요, 보고 하니 시각이요, 따라 하니 촉각이다. 6개월이 지난 아이들은 저마다의 감각으로 음악을 듣고 느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이의 반응을 보면 엄마가 보인다는 것이다. 전부 그렇다고 확언하긴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엄마가 노래에 하는 반응이 아이와 유사했다. 내가 들어서 슬프면 아이도 우는 표정이나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내가 듣고 신난다거나 크게 웃는다거나 눈이 동그래지면서 행동이 커지면 아이도 더 관심 있게 들었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 맞다.
개인적으로 문화센터는 아이를 위한 다기보단 엄마를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그 수업을 듣고 마음에 들고 선생님이 좋으면 공부 내용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계속 듣는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아이에게 훨씬 잘한다. 반대로 아무리 교육 내용이 알차고 좋아도 엄마 마음에 닿질 않고 선생님의 기운이 밝지 못하면 더 이상 그 수업을 신청하지 않는다. 문화센터 수업을 다니면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어울리는 모습도 엄마들이 어울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사교성이 있으면 아이들도 옆의 아이와 장난치고 노는 것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성향도 아닌데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다 보면 이게 또 스트레스라 센터에 가는 것이 불편해진다.
아이들에게 오감을 느끼게 하고, 감각을 키우려면 엄마의 안테나가 모든 면에 세워져 있어야 한다. 엄마도 못하는 일을 선생님이 대신할 수 없다. 엄마가 동요를 자주 듣고 같이 부르고, 신나서 동작을 크게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따라 한다. 엄마가 편안하면 아이도 당연히 편안하다. 문화센터에 드나들면서 내가 느낀 최대의 교훈은 첫째 나 스스로가 밝고 명랑한 사람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자. 둘째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니 아이가 잘 크길 원한다면 나 스스로도 잘 커나가자. 셋째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어릴 때부터 잘 관찰해서 좋은 안내자가 되자. 넷째 배움이 시작되는 순간 엄마들은 욕심이 생긴다. 누가 더 빨리, 많이 반응을 하는지를 살필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바로 나의 아이가 어떤 반응을 하고 변화되어가는지를 사랑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내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