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Oct 17. 2023

커피 한 잔 마시기 어려운 날

저에게 커피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일을 관두면 하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햇살 따뜻한 날 간단히 어반스케치 재료를 챙겨요. 캠핑 의자도 챙기고요. 연기 피워줄 커피도 한 잔 보온컵에 사들고 출발할 거예요. 집 앞 네거리에 있는 더벤티. 2,700원짜리 라테냐 3,500원짜리 캐러멜 마키아토냐를 놓고 고민할 거예요. 백수니까요. 당장 몇 백원도 그냥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결국은 싼 걸로 골라야죠. 주문을 넣자마자 후회를 할 겁니다. 보나 마나.


백수라 움츠러든 마음에 소심해져도 있고 가벼운 사람 되기 싫은 마음까지 끼얹어서 "잠시만요"를 외치지도 못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냥 약간 기분이 상해버립니다. 기분 낸다고 산 커피에 돈 생각 소심한 내 성격 탓까지 마음에 걸려버려서요. 다음에는 몇 백 원에 "이것도 좋겠다"는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도 합니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드네"로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래놓고 다음에도 가격을 먼저 보겠지만요.


이 정도면 커피가 중요해서 나온 거지 그림은 핑계 같습니다만.


겨우 커피 한 잔 정도 매일 여유롭게 마실 돈 있다 호기롭게 무릎을 세우며 일어서다 한 달 7만 원 돈인데. 그거면 적금하나 들겠다 계산합니다. 뭐가 중요한 건지 혹은 뭐가 우선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 마음은 무엇인지도 모르게 현실만 챙깁니다.



아마 그런 마음도 있었나 봐요.


일전에 어반스케치 회원 중에 여행을 갔다 온 언니가 커피를 양손 무겁게 사 오신 적이 있어요. 공짜가 너무 반가워서 좋다고 다 같이 즐겁게 마셨어요. 그랬는데 한 잔이 남는 거예요. 그림 마치고 슈퍼 일하러 가야 하니 언니가 갖고 가라고 챙겨주데요. 공짜가 두 번이나. 세상 행복했어요.


짐이 많아 커피 캐리어에 담긴 채로 들고 갔어요. 손잡이가 있으니까요. 룰루 랄라 신가게 걷는데 갑자기 종이가 뚝 찢어진 거예요. 흔들리는 차에서 커피 파도도 견뎌냈지만 이미 불어있던 캐리어다 보니 흐물흐물 했던 거죠. 기분 좋게 들고 가다 커피를 길바닥에 무료 제공을 하고 만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돈 몇 푼 한다고 공짜에 행복해서는 아이처럼 룰루 랄라 신나게 걷더니. 기껏 커피 한잔 쏟았다고, 집문서가 세탁기에 지점토가 된 것도 아닌데 눈물이라뇨.


내 마음이 이렇게 작았던가? 나는 왜 고작 커피 한잔에 눈물이 날까 생각을 해 보았어요.


울고 싶은데 빰 맞은 기분?


 제가 좀 힘들었던 거죠. 능력도 안 되는 계산 한다고 슈퍼에 나가는 게. 사람 만나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그 원인을 제공한 일 때문에 항상 양가적 감정이 있었던 거예요. 층간 소음 지옥이 사라진다면 존재 의미가 없는 슈퍼. 그곳을 다니는 게 항상 행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어요.  오늘도 층간 소음으로부터 도망간다는 마음 가짐이랄까요. 그러니 마냥 '일은 일이지'는 아닌. 정신과 치료대신 선택한 결과다. 정신과 치료가 점점 즐거워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니듯 슈퍼일도 층간 소음을 점점 없애주는 약은 아니었으니까요.


언니가 건넨 커피는 그냥 공짜가 아니었어요. 같은 취미만 공유하는 게 아닌 서로를 이해해 주고 다독여 주던 친구 같은 존재에게 건네는 온기였던 거예요. 아이스커피지만요.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시작한 일, 가끔 지쳐 보이기도 했고 이제부터 수고할 생각에 챙겨준 커피.


누가 알아봐 준다는, 내 아픔을 다독임 받는다는 기분으로 커피를 약처럼 받았나 봐요. 그걸 쏟자마자 눈물이 쏟아진 거고요. 약이 사라졌으니 갑자기 막막하기까지. 슈퍼 바로 앞에 '메가 커피'가 있음에도 처방 없이 약은 살 수 없었어요. 다독임 받는다는 누군가의 처방으로 건네진 커피요.


백수 2일 차.


집을 나갔더랬습니다. 하지만 처방 없이 커피를 마실수는 없었어요. 예. 맞아요. 커피는 얻어먹어야 한다는 걸 이렇게 길게 쓴 겁니다. 오늘 첫째 돌 때부터 알고 지낸 언니를 불러내어 커피 수혈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림도 그려졌습니다. 백수가 되면 하고 싶던 <커피와 그림>을요.


소원을 이룬 하루이니 오늘 잘 산 것 같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까요? 내일이 수요일입니다. 어반스케치 하는 날이죠. 또 언니에게 커피 꼭 사달라고 떼를 써볼까요? 이렇게 제 마음은 치료가 되고 지인들은 떠나가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영원한 공짜는 없다는 걸 배우는 하루가 될지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읽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