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가에 삽니다. 30평대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지요. 외벌이이지만 생활비가 부족한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일상탈출 정도의 목적으로 맞벌이 일을 한 적은 있습니다. 집은 우리 소유입니다. 위장 전입하듯 은행 소유 집에 이름만 올려놓은 것도 아니지요. 서울 사는 큰 오빠네처럼 대기업 억대연봉자이면서 마이너스 대출 없이는 살기 힘든 부류도 아닙니다. 그런 통장은 어떻게 만드는 지도 모릅니다. 돈이 부족해서 부모님이든 친구든 제3세계 자금계에 대출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카드사에 물건 값을 후불하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후불로 갚은 적도 당연히 없지요. 부럽지요? 이런 삶.
오늘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제 까다로운 사귐 조건에 합격을 하였으니 3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거지요. 재력, 미모, 인성입니다. 미모는 그녀들의 남편이 증인이 되어주니 언급치 않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또 제 기준입니다만 인성은 제가 15년 가까이 알고 지내고 있으니 말하나 마나이겠고요. 마지막 재력 부분은.. 거기에 대해서는 몇 말씀드릴 게 있네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부자이다 보니 어울리는 사람들도 수준에 맞는 사람들만 만나고 있었습니다. 한 집은 저희 집보다 비싸고 역시 대출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고요. 심심했는지 언젠가부터 건물주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이 두 채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세도 나오지요. 저보다 나이는 제법 어리지만 재산으로 보면 언니입니다.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요. 이 동생도 띄엄띄엄 보탬이 되길 바라며 일도 합니다. 집에 있으면 우울증도 걸릴 것 같고 자아실현도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굶어 죽을까 절박함에 하는 일은 아닐 겁니다. 힘들다는 앓는 소리만 뺀다면 일을 하는 것은 찬성입니다. 남편의 불만 덩어리 동산도 1대 있습니다.
한 집도 저희 집보다 비싼 집에서 살고요. 당연히 넘의 돈 빌리지 않은 상태의 자가입니다. 집에 동산만 5대입니다. 동산으로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천만 원대의 금을 월 단위로 벌 것입니다. 부동산도 2 채인데 뭐 모르죠. 더 있다는 소문은 있어서요. 궁금하지 않아 묻지 않았습니다. 234원 더하기 4461원도 금방 계산되지 않는 제가 굳이 넘의 재산 계산을 해서 뭐 하게요. 기억도 안 할 텐데요 뭐. 이 언니는 일은 사양입니다. 남 밑에서 구박 들으며 온갖 핍박받는 '을'질 생활 힘들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힘들게 일하는 걸 존중하고 내조를 열심히 하지요. 그 부분에서는 누가 봐도 불만조차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나머지 한 집은 전세를 삽니다. 비교해서 가난하냐. 4집 중에서 가장 크고 비싸고 으리으리하다고 할 만한 신축 아파트 거주잡니다. 그러니 전세이지만 어느 자가보다도 훨씬 비쌉니다. 그 집에 돈이 부족해서 전세를 사는 건 아닐 겁니다. 진주에 투자가치가 별로 없다는 판단으로 결정한 거니까요. 대신 '부산'에도 부동산이 있고 '상가'를 보러 다닌다느니 하며 투자처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의사입니다.
우리 네 집 중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밀착 관리하며 혜안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 돌보기에 바빠 본인의 충분한 능력조차 묵혀두며 올인 중입니다. 언니를 보면 제가 한없이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는 자각이 듭니다. 전교 1등 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언니네. 그럼에도 제 능력은 벗어났기에 크게 부럽지는 않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첫 째 아이들이 다 친구라 시험 끝나고 다시 뭉친것이지요. 알고 보니 의사 샘네는 올해도 영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여행예정이더군요. 작년에 너무 좋았던 아이들이 또 가지며 졸랐답니다. 무척 좋은 시간을 보냈다니 궁금해지더군요. 다음에 자세히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어디서 어떤 것들을 보았기에, 무엇을 경험하였기에, 사람들은 어땠기에 그렇게 좋았는지를요.
그 얘기를 듣던 나머지 자가 두 집이 얘기를 합니다.
"저 댁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아무 걱정이 없지! 그러니까 언니가 갈수록 젊어지지"
"좋겠다 아무 걱정도 없이 해외여행 쉽게 갈 수 있고.."
"돈 걱정도 없고. 애들도 공부 잘하고. 시부모님이 안 계시니 시댁과 부딪힐 일도 없을 테고. 정말 부럽다"
"고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을 삶 부럽다"
"..."
지인들은 언니를, 언니네를 부러워하고 있었어요. 영국에 가면 얼마나 드느냐 묻데요. '13일 정도 가는데 1300만 원 정도 든다' 얘기를 해 주더군요. 제가 '우리 슈퍼'에 다녔다면 1년 연봉과 같은 돈이었어요. '나도 계속 다녔다면 여행 갈 수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남편이 벌어주는 돈 이외는 살림에 필요한 돈이 아니니 여윳돈이라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아까 동생이 물었습니다.
"언니는 아저씨한테 돈 얼마 받아?" "300만 원?"
"응"
"좀 올려달라고 해!"
"돈은 사장이 올려주는 거지 남편이 어떻게 올려주냐? 그러고 나는 만족한다."
"물가도 오르고 아저씨 쓰는 거에서 좀 줄여가지고 올려줄 수도 있잖아"
"난 불만 없는데?"
동생이 700 받냐고 물었으면 그렇다고 했을 테고 200 받냐고 물었어도 그렇다고 했겠지만 나머지 대답들도 아까와 다름없었을 겁니다. 200을 받아도 불만은 없을 테고 700을 받아도 날아갈 것 같진 않을 것 같거든요.
결혼 후 살림을 합치며 남편이 곗돈이니 용돈, 보험금이니 하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는데 통장이랑 다 줄 테니 알아서 하겠느냐 고정비를 제외한 돈을 넣는 게 좋겠느냐 물었어요. 맞벌이하면서 임신한 몸으로 신경 쓰기도 싫고 계산도 안 되는데 최소한으로, 최대한 신경 쓰지 않을 방법으로 타협했지요. 어차피 나갈 돈이니 빼고 나머지를 달라고요. 그 이후로도 저는 남편의 월급을 모릅니다. 며칠 전 남편이 생각보다 많이 쓴다는 걸 알게 된 후로 화는 좀 났고 분하기도 했는데 뭐 지난 일 열받아 뭐 하겠습니까. 계산 안 하게 해 준 고마움만큼 썼다 생각하려고요. 제가 모았다면 통장에 돈 좀 찰랑 거렸겠지만 저는 제 남편이 쪼잔하게 살게 하기 싫었으니, 초심 변함도 없습니다. 제가 쓰레기봉투에나 사치하며 사는데 남편까지 종량제 봉투 사는데 사치나 하며 산다면 저는 진정 힘들 것도 같습니다. 제가 "이 봉투도 사고 싶고 저 봉투도 필요한데" 할 때 "그러면 둘 다 사라~"해주는 그 마음이 진정으로 좋으니까요. 지금의 행복함에 행복하니까요.
한 달에 2000만 원(모릅니다. 그저 혼자 찝~! 하며 적은 금액입니다) 버는 의사 집 그리고 300만 원 버는 우리 집. 나머지 두 집도 넣어 줄까요? 1200만 원 버는 집과 700만 원 버는 집.
저는 사치를 하며 살고 남편이 주는 월급에 불만도 없지만 가끔 눈을 돌리면 의아하긴 합니다. 얼마 전(6년)에 새 차를 샀다고 하던 남편 친구는 또 새 차를 샀답니다. 작년에는 동남아를 갔으니 올해는 태평양은 넘어가야지 하며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이지만는 않았고요.
누구는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모아서 가려고 하면 못 간다. 일단 긁고 할부로 갚으면 된다" 며 여행도 동산 구입도 쉽게 생각했습니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요. 저도 그런 생각 안 한건 아니에요. 벌이는 크게 다르지 않는데 편하게 쓰는 사람들 찬찬히 살펴보면 친정이든 시댁이든 구멍 난 것처럼 돈이 드는 집이 아닌 경우가 많더라고요. 오히려 결혼해서 분가까지 한 자식임에도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하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그럴 때 부럽다는 생각 든 적 있습니다. 맨바닥에서 집 한 채 사고 차 한 대 물려받아서 몰고 있는 제가 가여워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저는 달동네 출신입니다. 가난이, 없이 산다는 것을 겪으며 산 경험치가 높습니다. 국민학교때 친구는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바나나를 먹었지만 저는 상해서 팔리지 않는 복숭아를 맛있게 먹으며 살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 구멍가게에서 돈 없어 눈으로만 장난감을 희롱하던 많던 아이들, 굶어 죽었다는 사람과 어제까지 얘기하던 저는 압니다. 비교할수록 삶은 나이 지지 않고 비참 해진다는 걸요. 제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기에도 삶은 길지 않을거에요.
그럼에도 무의식은 분노하고 불만이 가득하고 불공평함에 잠을 자지 못할 만큼 괴로울까요? 찬찬히 쳐다봅니다. 제 마음을요. 미안함은 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알뜰하게 살았다면, 종량제에 사치 안하고 살았다면 통장에 얼마라도 더 들어있을텐데..하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처음 지인들의 대화를 듣고 저는 잠시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과연 저들이 저런 말 할 자격이 있나? 먹고 사는데 어려움은 커녕 충분한 돈이 있음에도 그저 알뜰해서 안 쓰고 살면서 돈 쓰는 사람을 부러워하다니. 또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럴 수 있지. 원래 멀리 있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이 나보다 조금 더 가진것처럼 보이면 훨씬 불행해진다고 하니. 저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서 같이 밥 먹고 어울리는 옆 집 사람이 나보다 가진 것이 많다는걸 보게 된 현실에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 거다. 아프리카에 사는 데지레 모부투씨가 금광을 발견한 것보다 아는 언니가 못 보던 금반지 낀 것에 더 불행해질수 있고 비교된 박탈감을 받을 수 있다고요.
우리 삶에 절대 행복 같은 건 없는 걸까요? 언제까지나 상대적 박탈감 상대평가 같은 행복 지수에 흔들려야할까요?
그저 저는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웃으면 좋겠습니다. 가진것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라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토요일이 그런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