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닿을까 놀랄 정도로요. 제목에 끌려 잡은 책이 수필이든 에세이든 산문으로 볼만한 것이면 서둘러 달아났습니다. 조미료를 친 것이 아니라요. 사실입니다. 못 볼 걸 본 듯 달아나 좋아하는 구역으로. 언제나 흥미를 돋게 하고 즉각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설책이 쌓인 곳으로 갔지요. 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도 싫어했습니다. 함의가 많아 생각하기 싫어하는 제 취향에 반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맞아요. 특별한 오락거리 없는 제게 책은 그저 놀잇감이었습니다. 시간 때우는 용도로써의 소설 읽기. 게으름을 독서라는 말로 적당히 미화시키지만 텔레비전 오락 프로를 보는 정도 이상의 복잡함은 이해도 못했습니다. 재미만 구하였습니다. 돈 들거나 몸을 움직여야 하는 취미 대신 누워서도 즐거움을 취하는 도구로요.
자극적인 내용도 반전 매력도 스릴도 느낄 수 없는 에세이는 제 심심한 인생 같았어요. 별 볼일 없고 매일이 비슷하기만 한 그렇고 그런 일상이요. 그런 곳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도 행복도 건지는 게 인생일 텐데 재미있자고 읽는 책에서까지 그러긴 싫었고요.
그러니 모르는 곳. 외국인도 만나게 되고 살인 현장에도 가 볼 수 있는 영화 같은 소설로, 책을 덮고 났을 때 아쉽거나 섭섭한 기분을 잊어먹을 만큼 중독적인 소설을 찾았습니다. 폴 오스터, 더글라스 케네디, 에단 호크(예, 작가님들이 생각하시는 그분 맞습니다. 아시겠지만 소설 정말 잘 씁니다. 집에 2권이 있습니다.) 아멜리 노통브, 요시다 슈이치니 하는 재미도 있으면서 무언가 이질적인 문화도 구경하는 재미, 신비로운 곳으로의 여행 같은 소설 읽기가 좋았습니다. 지적인 작가들이 유식을 흘리듯 쓰는 문체도 멋지고 그러면서 자극적인 맛도 잃지 않는 흥미 유발 세련된 글에서 특별한 걸 찾았나 봅니다. 제가 갖지 않은 많은 것이요. 이국적임, 유식함, 특별한 경험, 스토리요.
저는 편견과 편협한 시선을 가진, 당장 보이는 것 그거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칼국수가 좋으면 물려서 꼴도 보기 싫을 때까지 그것만 먹습니다. 최소 5년은 다시 못 먹을 만큼요. 식당도 가던 곳만 갑니다. 자리도 꼭 그 자리만 앉습니다. 새로운 음식 새로운 식당 새로운 자리가 두렵습니다. 놀라운 상황이, 변화가 싫습니다. 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둘째가 엄마를 놀라게 해 준다고 깜짝 튀어나오면 진심 욕이 나옵니다. 놀라는 게 너무 싫습니다.
그러니 소설이 좋았겠지요. 변화도 싫고 새로움이 무서운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 실상과 다르게 그곳에 대한 동경 같은 의미요. 가질 수 없기에 원하게 되는 마음으로요. 현실에서는 사양하지만요.
그런 제가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 공익 근무하던 청년의 요리하는 근무를 봅니다. 어느 작가의 당근 거래를 40개의 꼭지로 풀어낸 글도 읽고요. 결혼하지 않겠다던 딸이 결혼을 결정하자 자식에게 줄 말을 글로 쓴 글도, 자신이 사용한 물건에서 시작한 일상 속 의미 찾기에 대한 글도,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작업에 대한 소회를 쓴 글도,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알기 위해 매일 본인을 리뷰하는 글을 쓴 책도, 책을 쓰기 위해 작업실을 전전한 이야기도, 너무도 다른 친구사이 한 지붕 두 여자의 동고동락에 대한 이야기도.. 읽게 되네요. 브런치 훌륭한 작가님들의 글도 물론입니다. 예상 가능하게도 또 소설은 딱 끊었습니다. 손이 가질 않습니다.
원인이야 있지만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읽게 되었듯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일기부터 썼습니다. 하루를 읊고 반성도 하고 좋았던 일 슬펐던 일 속상했던 일도 적습니다. 그러다 또 슬그머니 그만도 두었습니다. 매일이 제 일상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다 보니 똑같은 하루를 더 사는 것처럼 곤욕스러웠으니까요. 지루한 일상을 글로 또 들여다보는 게 의미 없게 느껴졌습니다. 쓰는 저도 읽는 저도 지겨웠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는데 과거를 한 번 더 산다는 건 끔찍한 거더군요. 거기서 깨달을 점을 뽑는다는 건 좀 가혹해 보였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러기 위해 일상을 본다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매일이 괴롭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줍니다. 오히려 고맙기까지 합니다. 큰 변화죠. 나에게도 일상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자라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에는 타인의 일상도 나의 일상도 벗어나고 싶은 의미의 것이었다면 이젠 궁금합니다. 반복되는 하루지만 그 속에서 사소한 즐거움도 행복도 보물찾기 할 때처럼 한번 더 보게 됩니다. 심각한 척 인상이나 쓰던 제가 유심히 보고, 그것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롭게 보입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말이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처럼요.
들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일상에 의미를 찾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에게 이 시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여러분께 도요. 감사합니다.
p.s
(한 가지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구독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소화할 능력이 없어 구독을 더 늘릴 수 없는 점요. 배울 점도 많고 감동적인 글을 쓰시는 분들임에도. 저는 음식도 글도 소화를 잘 못 시키나 봅니다. 챙겨 다 읽지 못하는데 구독도 못하겠습니다. 융통성도 없나 봅니다. 그럼에도 배가 약간이라도 비었다 싶으면 나름대로 꼭 찾아뵈어 읽고 먹으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