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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04. 2024

당신을 덮습니다

햇빛 냄새가 코를 간질입니다

뽀송뽀송 바스락바스락

40수 선염 면으로 된 좋아하는 민트색. 차렵이불에서 깨끗한 먼지냄새가 난다. 건조기에서 꺼내 베란다에 넌다.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며 자리를 잡은 빨래가 햇빛을 받아 색이 3도는 밝게 변한 것 같다. 몬드리안의 작품이 우리 집 베란다에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널려있다. 햇빛이 만들어 낸 이불 위 채도와 명도가 다른 직선들.


소소바람에 까슬까슬 익어가던 옥상 위 그것을 잊지 못해 아직도 이불을 반나절은 널어놓는다. 처음부터 햇빛에 널어 말린 듯 바삭한 빨래가 밤의 피곤을 덮어주는 상상이 되어 미소가 지어진다. 역시 난 밤이 좋다. 이불이 좋다. 이불을 덮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누가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하얗고 보송한 이불을 달라고 해야지. 주신 당신 생각으로 눈을 감는 나를 상상해야지. 나는 당신과 하루를 마감한다는 말을 해주어야지. 당신을 떠올리며 눈을 뜬다는 말도 잊지 않으리라. 내게 체온을 나누어주는 당신이 주신 선물로 나의 밤은 따스했다고 기억하고 싶다. 같이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닮아가듯 우리의 체온이 가까워지고 우리의 체취가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고. 그리하여 우리의 시간이 익어가듯 이불도 낡아간다고. 우리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처럼 이불도 같은 시간 속에 있었다고. 언제고 함께이진 않겠지만 우리가 함께였던 시간은 언제나 의미 있었음을 세겨놓아야지. 당신이 곁에 없는 시간도 당신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해야만 하리라. 소중한 사람께 받은 소중한 그것으로 내 하루가 시간이 공간이 더욱 소중해졌다고. 다 당신 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저 갖고 싶은 게 생겼어요.

뭐...?

이불 사 주실래요?

그건 생활비에서 쓰세요.

예?

갖고 싶은 거 말하라고 했지 생필품을 말한 게 아니

(다급히) 아니, 여보 그냥 사 주면 안 돼요?

이불이니 세제를 왜 사달라고 하냐! 생활비로 사. 다이아반지가 갖고 싶다든지 디올 백이 갖고 싶다든지 해야지..

아니 그런 건 필요 없고 이불.

안돼


'아, 역시 이 남자 너무 이성적이다. 용돈을 빼내어 생필품을 사게 하고 생활비를 아끼려 한 얄팍한 나의 수는 통하지 않는 이 남자는, 이성좌 역시 내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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