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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14. 2024

봄이라니요

온봄달 열나흘 낫날

(너튜브 '독거노총각' 버전으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


갇힌 몸이 되어 글을 쓴다. 이곳 생활은 규칙적이다.



아침 7시에 기상. 이곳저곳에 산적한 일들은 날 부르고, 입과 손과 발은 각각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아이들이 늦게 꺼내놓은 물병을 빠르게 씻고 일어나라 고함을 지르며 밥을 차린다. 브런치라도 먹으러 오는지 우아하게 걸어온 아이가 앉으면 머리를 묶는다. 기증하려 기르는 중인 아이의 머리를 빗기는 일은 참, 일이다. 두피마저 약해 몇 번은 혼나야 끝나는 작업이다. 정해진 일들을 하고 나면 내 차례. 나의 식사는? 없다. 가족들이 집을 나간다. 8시경 갑자기 할 일이 없다. 이정현의 '와'를 보는 듯 격렬하게 추던 홍보 풍선이 영업 마감 시간이라 전기를 뺀 것만 같다. 폭삭 가라앉는다. 다시 바닥과 수평을 맞춘다.


정오인 12시에 다시 일어나면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밥을 먹고 싶다면 먹고 책을 읽고 싶다면 읽는다. 자유 시간에 할 일을 미리 생각해 보기도 했다. 책 9권 읽기. 그림 한 장 완성하기 외에도 자동차 정기 점검. 첫째 전화기 하러 가기. 리포트 작성을 위한 도서관 자료 조사 등등이다.

하지만 갇힌 몸. 나가기 쉽지 않다. 몰래 빠져나가볼까? 생각을 해 본다. 그러려면 일단 좀 사람다운 몰골이어야한다. 길거리에 늑대인간이 나타났다는 신고는 사절이다. 관심은 받고싶지만 신고는 싫다.(어제부터 자꾸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체'다) 사나운 눈빛이나 무서운 고함도 사양이다. 게다가 휘발성 기름이 드는 일. 변하는 건 없을지라도 다음 달부터 남편이 백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차비를 쓰는 일마저 움츠러들게 한다.

출출하니 만두를 먹는다. 나도 갇힌 지 오래되었지만, 매일 같은 만두는 아니다. 오늘은 감자만두다. 만두피가 쫄깃해서 큰아이가 좋아한다. 물론 나도 같다. 늙은 소년(올드보이)에서 최 모 씨는 감금되었던 동안 육체를 가꾸어 인간병기가 되던데 나는 무엇이 되었나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아줌마다. 대한민국에서 무엇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전천후 최첨단 인간 병기. 아줌마가 되었다. 그런데 여간해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내 새끼. 아, 그렇다. 아이만이 나의 전투 능력을 올릴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본다.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전투력 상실. 다시 누울까.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바로 실행이다.

하루가 너무 어제 같아서 괴롭다. 이렇게 살다가 내일이 되면 89살 할머니가 되어있고 아이들은 손자를 데려올지 모르겠다. 뺨을 세게 때린다. 정신 차려!. 생각만 한다. 뺨때리면 아프다.


아! 갇혔지만 가둔 사람은 나다. 내일은 진짜 좀 나가보자. 봄이 왔다 말이다.


(웃자고 쓰는 '올드 휴먼'의 집 나가기 프로젝트. 내일은 성공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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