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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17. 2024

온봄달 열이레 한밝날

3월 17일 일요일

몸이 아프다.


지병을 앓고 있다.


라는 말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장난부터 시작하는 '내 맘대로' 내 글이니까. 그런데 장난도 정도가 있고 해도 되는 말이 있고 없는 게 있는데 이 말은 후자다. 장난으로 쓸 문장은 아니다. 나는 지병이 없다. 정신적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조금의 구멍이 있는 정신 건강자이자 육체적으로 저질 체력이라 우울증이 심할 때가 아니라도 10시간은 자야 하는 -육체의 완성 시기- 아기와 같은 체급이지만 의학적으로 병도 없다. 엄살이 심해서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기운이 없지만 누가 봐도 멀쩡한 성인 여성이다.


하얗고 쫀득한 죽을 만들고 있다. '아프긴 아픈 모양이군. 아니라면서 많이 다친 상황이고 너무 힘들다면서 별거 아닌 상황이길 반복하는 '양치기'형 인간이라도 죽까지 끓인다면 아픈 게 맞는 거지.' 해주고 싶으시겠지만... '양치기'형 인간에게 또 속은 것(입니다). 비실비실거리며 150년 살게 될(어른들 말) 나와 달리 누가 봐도 건강하게 백 살만 살 것 같은 남편이 평소의 상태가 아니라서다. 죽을 해 달라기도 하고 우울증 마누라 닮아가느라고 가끔 아플 때의 내 얼굴(?) 같아지니 말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죽을 나 없는 새 첫째가 혼자 퍼먹더니 너무 맛있었다며 또 해 달라니 아침부터 제조 중이었던 것일 뿐. 갓 한 맛있는 밥을 두 주걱 펄펄 끓고 있는 물에 넣어 감자 으깨기로 밥알을 반 정도 으깨주면 7분 만에 정말 맛있는 딱 맞는 경도의 죽이 된다. 반찬 만드는 것보다 쉬운 데다 원하는 걸 원할 때 해주는 좋은 엄마가 될 기회도 되니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감탄 나오는 맛있는 죽도 7분이면 완성이라니 나 아주 가끔 참 뭐든 놀랠 만큼 영리하게 잘한다. 이런 일이 많지 않아 자랑이 '일상'일 수가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지만 말이다.


그래, 나는 자랑을 좋아한다. 그런데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자랑할 만한 내세울만한 우쭐할만한 잘 난 것이 없다. 아니다. 진짜 없다. (잠깐 머릿속을 도둑놈 집 안 어질듯이 샅샅이 뒤졌지만, 나온 것이 없다) 그림도 그린다고는 하는데 사실 내가 보면 이게 참 허접하고 같잖아서 돈만 많았다면 그려놓은 종이를 다 찢어 버리고 물감을 벽에 던지며 '이 따위 다 집어취워!'라고 고함을 지르며 러시아에 기차 타려고 비행기 탔을 테다. 글을 잘 썼다면 브런치에 매일 글 쓰며 실력아 늘어라 늘어라 기도도 하지 않을 테고 책만 내면 인기를 끌 테니 글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그거 순전히 재능으로 하는 거거든요. 애쓰지 마세요." 하며 볼펜으로 만든 화살 맞을 소리를 해 놓고 또 코타키나발루로 가는 비행기를 탈 텐데...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저 같은 인성 모나리자(완성형인 거예요 미완인 거예요?)에게 재능을 안 주셔서요. 제가 잘 났다 설치는 꼴 저도 보기 싫거든요. 어휴 상상할 뻔.


그래 진작에 알고는 있었다. 글도 우리 동네 민서 엄마보다 잘 쓰고 그림도 우리 동네 하윤이 엄마보다 잘 그린다는 거. 거짓말이 아니라 오늘 만나자는 문자도 -말이라면 몰라도 글이라면 기겁 하며 문자 포비아 내균자 아니랄까 봐-글자라고 두렵다 보니 칠 줄을 몰라 친구를 못 만나는 민서엄마. 그림대회 가서 딸 그림에 입을 대고 싶은데 붓 잡을 줄도 모르니 '잔소리 진주 명인'이면서도 잔소리를 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하윤이 엄마보다만 나은 그런 그림과 글이라는 걸 하는 나. 그래서 뻐길 수도 남의 것을 하찮게 평할 수도 없다는걸. 그런 거야 평하지 않으면 되는데 문제는 내가 그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저 사람 잘 그렸네 못 그렸네 하지 않는 것은 생각의 스위치를 끄면 된다. 하지만, 눈 앞의 그림에 단점을 보완해야 할 사람도 지금 완성이라 보고 붓을 놓아야 하는지 반은 더 칠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마저 내 일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주제가 뭘까? 하며 읽을 필요도 없이 술술 읽히면 읽고 눈이 안 들어가는 글이면 '예 수고하세요.' 하고 나오면 되는 남의 글이 아니라 내 글이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떠드는 글의 첫 독자가 되어 읽어야 하는데 그럴 때는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고 여긴 어딘가 싶고 그런 거니까. 내 첫 글의 실험 대상자가 나니까. 멀쩡한 글을 쓰지 않을 거면 집어치워하며 비행기 끊으러 갈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2주간 우울증이 심해 글을 거의 쓰지 않았더니 글쓰기에 덧없음을 느꼈달까? 뭐 설 지나면 며칠 글을 안 써 못 쓰겠다고 하고 겨우 1박 놀러 갔다 와놓고는 노느라 바빠 글을 안 썼더니 글 흐름이 막혀 글맥이 끊어졌다 당당하게 말하니까. 잘 쓰지도 못해 한 칸 한 칸 성실로 열심히 쓰지도 않을 거면, 이런 변명거리나 찾을 거면 진작에 네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네가 즐거는 거 같아 말리지는 않았는데 이젠 진짜 집어치우라며 한 소리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거다. 맞다. 나도 글테기 한 번 겪어 보고 싶다는 노래를 불러본 적도 있는데 약간 그 비슷 유사 품목 같다.


그런데 내 글이 글테기 비슷 유사품이 된 것에는 치료제가 있다. 쉬면 된다? 책 많이 읽고 여행 다녀오면 글이 다시 쓰여 있을 것이다? 뭐 틀린 말이 아니기도 틀린 말이기도 하다. 실은 글 쓰는 것에 두려움 더하기 노재미를 얻은 것에는 새롭지 않은 이유가 있다. 취기를 빌려 써 볼까 밤의 기운에 업혀 글을 써 볼지 편법을 고민한  것은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건 바로 당신. 작가님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글을 쓰지도 않고 거의 잠만 자면서도 백화점 화장실에 두고 온 금반지 생각이 난 것처럼 갑자기 눈이 떠질 때면 하던 행동이 있다. 그래도 찾아주시는, 구독해 주시는 작가님들 글도 읽고 소통하려고 여행을 다녔더니 하찮은 나의 존재를 내가 또 봐 버렸다. 지난번에도 구독을 누르려고 작가님들 글 읽다 멘붕이 왔는데 그건 쓰레기 관심작가를 늘려보려다 멘붕 왔어요 (brunch.co.kr) 글을 쓰며 잘 넘긴 적이 있는데. 구독을 누르고 작가님들의 색과 내공이 있는 글을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체기가 몰려 온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참 하찮은 글을 쓰는 나의 존재에 눈물이 날 만큼 측은한 마음이. 이런 내가 글을 올리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하는 소모적인 감정들이 우울 더하기 '다 집어춰' 증세로 나타났다. 글 쓴 지가 언제고 글 올린 게 몇 갠데 또 이런 소리.. 하시겠지만 브런치를 작년 8월 말부터 했는 데다가 글도 거의 매일이다시피 썼더라도, 자기반성의 시간이 많지도 자아비판 할 물리적 공간이 많지도 않았다. (이것조차 자연스러운 '브런치에 글쓰는 자' 되는 과정이겠지요?)


그렇다고 이렇게 끝없는 이야기를 끝없이 떠들 수는 없다. 주제를 밝히고 도움을 구해보자. 그렇다. 이 글은 이런 연유로 쓰였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허접한 글이다. 그럼에도 매일 쓴다. 왜냐하면 즐거우니까. 스트레스도 풀어주고 친구가 없어 아무도 안 들어주는 내 얘기를 일단 해 놓고 도망도 칠 수 있게 해 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일기처럼 쓰려면 일기장 사서 쓰면 된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하듯이 예쁘게 일꾸하면 된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듣는 사람이 계셨으면 하는 하나의 목적. 친구가 되어주십사 읍소하는 마음일 뿐. 그러니 이렇게 빙빙 돌아 하고 싶은 얘기를 수건돌리기처럼 마지막에 살포시 놓아두는 것이지요.(뒤 조심!)


자꾸 당신의 글을 읽다 보니 제 부족한 부분만 보여서요. 글을 계속 써야 하나…. 싶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님들 글도 읽으러 안 올 거거든요. 그러니까 울면서 겨자 드실 건가…. 해서 여쭈어봅니다…. 이건 협박이오. 강제이긴 합니다만. 제가 절박하니까요. 도와주시겠냐 여쭙는 거라는 거…. 에요. 이 글은 구애의 글이오 글린이 응원을 바라는 글이라는 뻔뻔한 말씀입니다. 얼굴모르니 이러지 아는 분들이면 어쩔. 그러니까 출간 작가님도 구독자 엄총 많으신 분들도 글을 엄총 잘 쓰시면서 타인의 시선 신경도 안쓰고 구독 좋아요 신경도 안 쓰고 쓰시는 글 '성인'분들과 본인만의 색으로 글을 쓰시는 개성 있는 작가님. 매일 쓰면서 이렇게 매일 쓰는 거 좋다며 같이 글 세상으로 가자, 안내하시는 작가님들. 이제 글 시작했는데 부끄럽다면서 할 말 다하시는, 처음이라면서 글도 잘 쓰시는 작가님들 모두 모두 좋은 곳으로 같이 가자는 의미로 '좋아요' 눌러주실 거죠? 이런 부족한 글이라도 귀엽게 봐주시고 읽으러 와 주시고 좋아해 주지 않으시더라도 '좋아요'는 눌러주실 건가요?


호웃~ 숙제 다 했다. 이제 이 글은 할 일 다 했다. 오우예~ 응원해 주시면 다시 '알쓸신잡'- 알뜰히 쓸레기 같은 글을 신박한 척 써대는- 인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글은 우울증상 졸업논문으로써 저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어린양과 과격한 말투와 흔들리는 눈빛 응석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이들 고모댁. 딸기 농장의 냉동고가 고장나서 아이스크림이 비닐모양으로 성형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 내용물은 변함없이 맛있었습니다. '제 외모가 변해도 저의 마음은 변함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실상은 반대입니다. 제 외모가 그대로 늑대인간 같더라도 저의 내면은 변한것같습니다…. 만 곧 발랄 아줌마로 돌아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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