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사봉면은 저도 알거든요. 근데, 관내 신청자 우선이라서요. 대기자로 이름 올려드릴게요. 자리가 나면 들으실 수 있고 신청자가 많으면 환불해 드릴거에요.
예.
안녕히 계세요.
진땀이 삐질삐질 난다. 뒤통수가 간질거려 목을 어색하게 세우고는 쭈뼛쭈뼛 건물을 벗어난다. 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느라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여자 세 명이 한꺼번에 통과한 문을 급하게 닫는다.
"아휴. 진땀 나. 아니 무슨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어리바리하니 뭔 수업 하나 끊는데 벌벌 떨고 야단이고."
"사람이 어리숙 모자라니 나쁜 짓도 못하겠다. 착하게 살아야겠어."
주민센터 현관을 벗어나며 방언이라도 터졌는지 불만을 쏟아낸다. 상황 종료를 실감한 듯 주차된 차에 오르자마자 참았던 한숨까지 내쉰다.
"어휴~!"
"까르르르 깔깔 와그르르 깔깔"
"근데 사복이야 사북이야!?"
"문자로 보내온 건 경남 진주시 사복면 진마대로 7747(칠칠맞칠)이거든.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니까. 진짜 봐봐!"
"어 맞네. 근데 암만해도 뭔가 좀 이상한데..."
"(지도를 조회하며)사북도 없고 사복도 없는데? 사봉은 있고."
"그럼 지가 사는 주소 불러주면서 직원이 사봉입니까? 확인차 묻는 데 아닌데요, 사북인데요. 옆에서는 사복인데요. 하고 있었단 말이가. 아휴 한심 곱빼기다. 진짜"
"그건 그렇고 사봉인가 그건 어디 있는 거야?"
"그 왜 있잖아. 진주수목원 가는 길에 자동차 전용도로처럼 생긴 길 있는 동네"
"아.."
"10분 전에 적어놓고 나는 왜 생년월일 적은 건 기억도 안 나냐? 순 엉터리로 적었다아이가. 못 살겠다."
"바보랑 멍청이 둘이서 도대체 뭐 하냐. 멀쩡하게(선수끼리 그렇다 칩시다) 생겨서는 왜 이렇게 모자란지 이게 이게 보통 일은 아니다."
"근데 아까 들어보니 등록된 거도 아닌 거제?"
"관내 사는 게 아니라서 대기하라잖아."
"그러면 자리가 나야지 되는거지?"
"그래 그 쑈를 했는데 등록도 성공 못했고 돈은 안 넣어도 되는데 입금부터 했고 등에는 식은땀만 줄줄 나고 있다."
"까르르 깔깔"
2/4학기 주민자치센터 평생교육 신청 기간이다. 다른 서울 나라니 전라 지역 나라도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은 분기를 나눠 그 동네 주민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짜에 가까운 수업을 해 준다. 요가니, 태극권이니 캘리 같은 취미를 말이다. 내가 사는 면사무소에서 듣던 캘리 수업(반은 빠진)도 마침 끝나가니 이번에는 다른 수업도 듣고 싶던 차였다. 진주에 아는 사람이 모두(3명) 사는 충무공동을 지나다 플래카드에서 본 <어반스케치> 수업. 앗 정말? 선생님께 직접 미술 수업을 들을 기회라고? 그것도 진주에서 유명한 노주현 화가님께 한 달 15,000원을 주고? 오우 예! 이런 기회라면 우울증이고 잠이고 다 버리고 달려가야지. 하며 집을 나온 참이었다.
혹시나 도착 전 확인해 본 인원은 25명 마감에 23명. 가는 몇 분 동안 마감일까 불안하여 서둘렀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바로 넣으라는 돈을 이체했다. 얼마나 다행이야. 대기자도 아니고 어제부터 접수인데 하루나 지나서 갔는데도 순위권. 등록 성공이라니. 같이 움직인 충무공동 지인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차를 몬다. 룰루랄라 곧 만개할 벚꽃 고개를 넘다 갑자기 삔 꽂는 부위가 찌릿하다. '어? 어반스케치 동생도 진짜 듣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밖이라서 못 온다던데. 혼자 너무 즐거웠는데. 내일까지 자리가 없으면 어쩌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안절부절 엉덩이가 탄다. '근데 잠깐만! 아까 등록할 때 보니까 본인만 접수된다고 붙여놨으면서 신분증 확인도 안 하던데. 그렇다면 금방 내려준 지인을 어반 동생으로 둔갑시켜 대리 신청을 한다면?' 아이큐가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다급하다. 집에 들어간 지인을 나오라 말하며 작전을 세운다. 인적 사항을 완벽히 적어놓고 지인을 본인인 척 둔갑시키자. 신분증을 갑자기 내어놓으라고 한다면 집에 있다고 뻔뻔하게 둘러대야지. 돈은 어반 동생에게 이체해 놓고 캡쳐 화면을 보내라고 한다면? 완벽한 작전이야! 출발!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렇게 완벽한 계획이었던 그것이 현실 속에서는 맞는 구멍이 하나도 없었던 거다. 신청서에는 아까는 (안 보여서)없었던 생년월일을 써내라지, 사봉면 사람은 바로 신청도 안 된다 하지. 어설픈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리 넣은 돈은 왜 넣었냐고 타박 감이지. 주소는 사봉인데 사북이니 사복이니 흰소리를 해댔지. 이러다 들켜서 대리 신청 불법자로 시외 추방되는 건 아닌지 식은땀 샤워를 하게 된 거다.
오늘의 교훈. 도둑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나쁜짓도 가끔 하고 살자. 그럼에도 하나 다행인 건 다음에는 뻔뻔하게 대리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 뛰는 가슴은 도둑질이 나쁜 거라서 그런 걸까? 스릴에 즐거웠기에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