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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19. 2024

다음에는 잘할 거예요

나쁜 짓 말이에요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동시에)사복면이요. 사북면이요.

사봉이요?

(동시에)사북면요. 사복면이요.

예. 사봉면은 저도 알거든요. 근데, 관내 신청자 우선이라서요. 대기자로 이름 올려드릴게요. 자리가 나면 들으실 수 있고 신청자가 많으면 환불해 드릴거에요.

예.

안녕히 계세요.



진땀이 삐질삐질 난다. 뒤통수가 간질거려 목을 어색하게 세우고는 쭈뼛쭈뼛 건물을 벗어난다. 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느라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여자 세 명이 한꺼번에 통과한 문을 급하게 닫는다.


"아휴. 진땀 나. 아니 무슨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어리바리하니 뭔 수업 하나 끊는데 벌벌 떨고 야단이고."

"사람이 어리숙 모자라니 나쁜 짓도 못하겠다. 착하게 살아야겠어."

주민센터 현관을 벗어나며 방언이라도 터졌는지 불만을 쏟아낸다. 상황 종료를 실감한 듯 주차된 차에 오르자마자 참았던 한숨까지 내쉰다.

"어휴~!"

"까르르르 깔깔 와그르르 깔깔"

"근데 사복이야 사북이야!?"

"문자로 보내온 건 경남 진주시 사복면 진마대로 7747(칠칠맞칠)이거든.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니까. 진짜 봐봐!"

"어 맞네. 근데 암만해도 뭔가 좀 이상한데..."

"(지도를 조회하며)사북도 없고 사복도 없는데? 사봉은 있고."

"그럼 지가 사는 주소 불러주면서 직원이 사봉입니까? 확인차 묻는 데 아닌데요, 사북인데요. 옆에서는 사복인데요. 하고 있었단 말이가. 아휴 한심 곱빼기다. 진짜"

"그건 그렇고 사봉인가 그건 어디 있는 거야?"

"그 왜 있잖아. 진주수목원 가는 길에 자동차 전용도로처럼 생긴 길 있는 동네"

"아.."

"10분 전에 적어놓고 나는 왜 생년월일 적은 건 기억도 안 나냐? 순 엉터리로 적었다아이가. 못 살겠다."

"바보랑 멍청이 둘이서 도대체 뭐 하냐. 멀쩡하게(선수끼리 그렇다 칩시다) 생겨서는 왜 이렇게 모자란지 이게 이게 보통 일은 아니다."

"근데 아까 들어보니 등록된 거도 아닌 거제?"

"관내 사는 게 아니라서 대기하라잖아."

"그러면 자리가 나야지 되는거지?"

"그래 그 쑈를 했는데 등록도 성공 못했고 돈은 안 넣어도 되는데 입금부터 했고 등에는 식은땀만 줄줄 나고 있다."

"까르르 깔깔"


2/4학기 주민자치센터 평생교육 신청 기간이다. 다른 서울 나라니 전라 지역 나라도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은 분기를 나눠 그 동네 주민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짜에 가까운 수업을 해 준다. 요가니, 태극권이니 캘리 같은 취미를 말이다. 내가 사는 면사무소에서 듣던 캘리 수업(반은 빠진)도 마침 끝나가니 이번에는 다른 수업도 듣고 싶던 차였다. 진주에 아는 사람이 모두(3명) 사는 충무공동을 지나다 플래카드에서 본 <어반스케치> 수업. 앗 정말? 선생님께 직접 미술 수업을 들을 기회라고? 그것도 진주에서 유명한 노주현 화가님께 한 달 15,000원을 주고? 오우 예! 이런 기회라면 우울증이고 잠이고 다 버리고 달려가야지. 하며 집을 나온 참이었다.


혹시나 도착 전 확인해 본 인원은 25명 마감에 23명. 가는 몇 분 동안 마감일까 불안하여 서둘렀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바로 넣으라는 돈을 이체했다. 얼마나 다행이야. 대기자도 아니고 어제부터 접수인데 하루나 지나서 갔는데도 순위권. 등록 성공이라니. 같이 움직인 충무공동 지인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차를 몬다. 룰루랄라 곧 만개할 벚꽃 고개를 넘다 갑자기 삔 꽂는 부위가 찌릿하다. '어? 어반스케치 동생도 진짜 듣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밖이라서 못 온다던데. 혼자 너무 즐거웠는데. 내일까지 자리가 없으면 어쩌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안절부절 엉덩이가 탄다. '근데 잠깐만! 아까 등록할 때 보니까 본인만 접수된다고 붙여놨으면서 신분증 확인도 안 하던데. 그렇다면 금방 내려준 지인을 어반 동생으로 둔갑시켜 대리 신청을 한다면?' 아이큐가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다급하다. 집에 들어간 지인을 나오라 말하며 작전을 세운다. 인적 사항을 완벽히 적어놓고 지인을 본인인 척 둔갑시키자. 신분증을 갑자기 내어놓으라고 한다면 집에 있다고 뻔뻔하게 둘러대야지. 돈은 어반 동생에게 이체해 놓고 캡쳐 화면을 보내라고 한다면? 완벽한 작전이야! 출발!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렇게 완벽한 계획이었던 그것이 현실 속에서는 맞는 구멍이 하나도 없었던 거다. 신청서에는 아까는 (안 보여서)없었생년월일을 내라지, 사봉면 사람은 바로 신청도 된다 하지. 어설픈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리 넣은 돈은 넣었냐고 타박 감이지. 주소는 사봉인데 사북이니 사복이니 흰소리를 해댔지. 이러다 들켜서 대리 신청 불법자로 시외 추방되는 건 아닌지 식은땀 샤워를 하게 거다.


오늘의 교훈. 도둑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나쁜짓도 가끔 하고 살자. 그럼에도 하나 다행인 건 다음에는 뻔뻔하게 대리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 뛰는 가슴은 도둑질이 나쁜 거라서 그런 걸까? 스릴에 즐거웠기에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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