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재택 백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Apr 09. 2024

백수 가족 일기 3

그나저나 꽃가루는 언제 잠잠해져요?

무지개달 여드레 한날(04월08일 월요일)


커피를 한잔했다.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파우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보다 싸다, 2L가. 맛은 있었지만, 커피 당분간 안 먹기로 했는데 남편과 한잔씩 붓다 보니 또 먹고 말았다. 학교 과제 2개를 끝내서 커피 안 먹어도 되는데 말이다. 쩝. (베트남전을 그린 전쟁 소설 '전쟁의 슬픔'을 읽었는데 나쁜 꿈을 꿀만큼 슬퍼지는 소설이었다)


새로 시작한 미술 수업을 갔다. 선생님을 자꾸 귀찮게 해야 실력이 는다는 동아리 언니 말이 생각났다. 미리 그려간 그림을 보여드렸다. 지적이 많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전공했어요?"

"아니요"

"그림이 수준급인데?" '선생님 영업 수준급이시네!'


갑자기 칭찬을 들으니 좀 당황스럽긴 하다. 갑자기 붓을 들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앞서 그림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기고 더 잘 보이고 싶어 긴장되면서도 칭찬에 기분은 좋다.

"수제자로 들이고 싶네. 욕심나네!" '여자 유혹하는 재주가 남다르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혹하게 되네.' 선생님 말씀의 주제는 화실 교습받아라였으니 돈 드는 일은 안될 것 같다.ㅎ  여하튼 이러니 유명한가 보다. 하나라도 익히고 뺏어봐야겠다. 지각하지 말고 빼먹지도 말고 열심히 다녀봐야겠다 다짐을 해본다. 선생님이 칭찬을 해서인지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러다 내가 참고해서 그리는 책에 모두 관심을 보인다. 시작이 막막했는데 좋은 방법이라며 엄지 척을 준다. 나는야 장비욕심녀. 그림보다 종이 사는 재미, 붓사는 재미, 책 모으는 재미로 취미를 하니 이럴 땐 어깨도 으쓱하게 된다. 다들 같은 책을 사겠노라 사진을 찍어간다. 누군 좋겠다. 책이 잘 팔려서.. 작가님 나랑 친구 해야겠다. 내가 팔아준 책만 열 권이 넘으니까 말이다. 헤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그림, 시간 뺏는덴 선수다. 완성도 못 했는데 마칠 시간이다.


혼자라면 둘째 샴푸도 사고 내가 쓸 샤프도 사게 롯데마트라도 갔겠지만 나만 기다리는 배다른 자손... 남편이 마누라 기다린다고 밥도 먹고 있어 땡순이처럼 집으로 갔다. 어제 산 재료로 비빔밥을 주었다. 대충 먹고 점심도 덕분에 챙겨 먹게 되었다. 삼식이를 데리고 얼마나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되면서도 덕분에 나도 챙겨 먹고 같이 운동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남해로 귀향살이를 떠날 생각이다. 남편은 귀향만은 반대하지만, 나는 백화점도 하나 없는 도시,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 한적하고 사람 없는 그런 곳으로... 애들은 학교를, 학원을 어떻게? 남편은 어디 가서 돈을 벌고? 하는 생각 전혀 없이 없는, 혼자 생각이다. 지금도 소도시 면(面)에 살면서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러다 캐나다나 호주 100Km 근방 인가 하나 없는 동네로 가겠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돈 벌 생각도 걱정도 없는 백수 3일째다.


(사진은 진주성 내 논개 바위로 가는 계단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트는 가끔 가요(백수 일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