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재택 백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Apr 09. 2024

백수 가족 일기 4

님아 그런 말은 하지 마오

우거지 갈비탕 줘!

없는데? 미역국 있다.

해장국 필요해... 라면 먹을래?

응. 그래~


어제 어디 가서 밥 얻어먹고 오랬더니 술을 얻어먹고 왔다. 해장이 필요하단다. 늙었네. 술 먹은 다음 날 카레 해주는 마누라랑 살았는데 이젠 해장국을 다 찾는다.



샤워하는 동안 남편이 브런치를 한다. 짬뽕라면이다.

머리를 자르고 나니 씻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샤워 시간의 반을 차지하던 샴푸 시간 헹구는 시간이 짧아지니 물 절약보단 그냥 팔이 덜 아파 좋다. 가볍게 머리를 털고 물기를 닦는다. 중간 세기로 머리를 말린다. 물만 안 떨어지게 말리면 되겠다. 몇 분 만에 드라이기를 끈다. 식탁에 가 보니 통통한 면발이 붉은색을 띠고 후끈한 탕 속에 누워있다. 달걀까지 풀었네. 오랜만이다. 짠맛을 중화시켜 주는 달걀이 지우개 가루처럼 아니 잘 저어져있어 국물 한 숟갈 후루룩하고 싶은 자태다. 숟가락에 면을 올려 "허읍". 탄수화물 과식녀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아 입가심으로 하나만 먹는다. 밥도 말지 않는다. 아침부터 소식해서 그런가? 아니구나. 한 끼 얻어먹었을 뿐인데 속이 편하고 야단이다. 샤워하고 개운하게 나왔는데 불 앞에 안 있어도 되니 요것 참 깨 맛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고 남편은 회사를 안 갔다. 지난달 근무한 마지막 월급이 나오는 달이라 위기감은 없다. 겨우 한 끼지만 남편이 브런치도 차려주니 꽤 편하다. 돈 없어서 쑥이나 캐러 다니고 산 두릅이나 훔치러 다니기 전까진 꽤 괜찮을 것도 같다.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면 귀향살이 준비나 하면 될 거다.


하나 남은 방통대 과제를 해야 한다. 소파에 누워 책을 집어 든다. 공부하려면 책상에 가 앉아야지, 왜 눕는지는 모르겠다. 이를 닦고 나오는 남편이 보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건조기에 구겨진 채 불쌍하게 쳐다보는 옷가지들이 생각난다. 심심할 남편을 시켜 집으로 복귀시킨다. (본인 옷이다) 밥도 먹었고 살림도 반은 했고 공부한답시고 책은 잡았지만, 소파에 누워 눈이 반은 감기고 보니 그저 여기가 무릉도원 같다. 아침에 학교 가기 싫다고 윗집 아이가 발을 구르고 천둥도 쳐댔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없다. 모르겠고 한숨 자자. 자고로 밥 먹고 바로 자야 소 되는 거지. 소가 되어야 행복한 거고. 인간이랍시고 똑똑한 척 해대지만,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안…. 그냥 자야겠다.

잠깐 졸긴 했나 보다. 남편이 영화 보러 가잔다. 아까는 안 간다더니 집에 있는 걸 싫어하는 남편이라 좀이 쑤시나 보다.


그래, 근데 나는 영화 안 볼 거다. 우린 백수니까 나는 안 보고 찻집에서 공부나 하고 있을게.

빨리 일하러 가야겠다. 백수 타령 또 한다.

안돼! 가지 마~ 나 백수 일기 연재 중이란 말이야. 60 꼭지는 써야 볼 게 나오지.


아무래도 상황 판단이 지나치게 안 되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싶다. 손가락 빨아야 할 날은 다가오는데 뭔가 불쌍하고 뭔가 절실하고 뭔가 참신한 글이라도 나오길 기대하는 나는....그냥 철없고 대책도 없다.

남편을 동반자가 아니라 어느 소설 속 주인공으로 생각하는가보다. 남 일처럼 말이다. 

그렇더라도 아직 건질만한 재미난 꼭지 하나 없는 상탠데 백수라는 소리는 조심해야지. 이러다 갑자기 회사 가겠다 하면 나는 백수의 추억을 써야 할 판이니까 말이다.


참 쓸모없고 지나치게 시끄러운 백수 4일차 일기 끝.


무지개달 아흐레 두날(04월09일 화요일)


<토박이말>


*사랑옵다*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정도로 귀엽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수 가족 일기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