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챙기는 가방이지만 오늘은 뭘 넣을까?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무겁게 재료를 싸 가놓고 결국 완성은 못 하는데도 짐 쌀 때는 매번 의욕 충만입니다. 그림에 참고할 책도 챙기고 (야외용)어반스케치 작은 고체 물감 대신 30색이나 들어있는 팔레트. 모터 단 듯한 손놀림으로 엄청나게 그릴'지'도 모르니 넉넉하게 넣은 열 장의 수채화지. 천연 붓, 인조 붓, 휴대용 물불, 구성 붓에 둥근 붓까지 들어있는 붓집도 챙기고. 빠진 게 있나 둘러보다 회원분들께 칭찬 폭탄도 듣고 피드백도 들을 일주일 동안 그린 그림에다가 동아리방을 제공해 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보니 빌린 책 열 권까지…. 두 손 두 어깨가 빠질 듯 무거워져야 준비 완료네요. 맥시멀리스트 아니랄까 봐 뭐라도 더 챙기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매일 '조금 더 일찍 나가서 아무도 없을 때 그림 좀 그려놔야지….' 하는 생각은 실현이 안됩니다. 애들 챙겨 보내놓고 국 먹는 남편을 위해 한 시간 푹 익힌 구수한 시래깃국까지 끓여 배부르게 먹으니 이미 시간은 그냥 딱 정각 도착 때입니다.
부릉부릉~. 출근을 한 참 지난 시간. 면에서 읍으로 들어가는 한적한 길이라 막힐 일도 없습니다. 두어 번 신호마다 잠깐씩 긴장을 풀다 보니 코앞까지 와 있어요. 일주일 전에도 왔으면서 오랜만인 척(인지에 장애가….) "윙? 생각보다 빨리 왔네" 하며 또 즐거워집니다.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인데 생각보다(?) 빨리 와져서 십분 남습니다. 초록 불로 바뀐 신호 앞, '유행 지난 사진 말고 오늘 찍은 따끈따끈 신상 사진으로 그림 그리고 싶다….'즉흥적인 기분이 떠오릅니다. 보통 때 같으면 생각만 하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결국 그냥 가던 길로 갔겠지만 요즘 제 욕망, 생각에 좀 예민해졌어요. 에잇 모르겠다. 사진 하나만 찍자.
'한 장만 찍고 가면 늦지도 않고 신상 작품 그릴 수도 있고 좋잖아?'
직진 대신 핸들을 꺾습니다. 큰길 벗어나 초등학교도 지나서 구석구석 기와집 초가집이 있을 동네로 숨어듭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데다 <30>을 지켜야 하는 어린이 보호구역. 그 덕에 핸들에 손만 올리고 천천히 길을 따름이다. 어? 왼쪽에 목표물 발견 발견. 다행히 바로 앞에 주차장이 보이네요. 또 좌회전, 마을 공용 주차장에 차를 데려다 놓습니다. 덥지만 잠시만 기다려…. 차를 다독여 놓고 전화기만 들고 내립니다. 지나오다 본 곳은 길가로 가면 되지만 이왕이면 구석구석 눈에 담으려, 운이 좋다면 사진기에도 남기려 돌아서 가 봅니다.
우와~ 서까래가 살아있는 집이 골목 끝에 담담하게 있었어요. 정말 행복합니다. 이 집만의 역사와 기록이 고스란히 차려진 한 상 오래된 집. 그럼에도 아직 살고 계시니 관리까지 깨끗하게 되어 있어요. 페인트칠도 마당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사람이 어제까지 살았어도 집과 호흡하는 존재가 사라진 집은 급격하게 늙어버려요. 하루, 한 달이면 허리가 굽다 못해 접어진 것처럼 보이지요. 나무 머리도 덥수룩 수염까지 자라있곤 해요. 벽 옷은 빨래를 잊은 지 오래라 흙길을 닮은 색으로 변하곤 합니다. 일 년이 넘어가면 집이 자연 속에 묻혀 눈앞에 있어도 존재감이 들지 않곤 합니다.
초록 대문에 끌려 바라본 곳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전봇대 뒤 길 끄트리로 가면...
이 집은 생생해요. 아직 50년은 더 사실 것 같습니다. 집에 계신 어른분들요. (누가 사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소설 씁..) 신이나 사진을 마구마구 찍습니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끝 집이니 이 정도면 마당까지 들어온 거나 마찬가진데 무서운 소리로 짖는 주인 개도 없으니 말이에요. 감사한 마음으로 작품 감상하듯 각도를 달리해가며 담습니다. 아~ 마음 가득 충만감이 듭니다.
마음에 쏙 드는 끄트리(끝의 사투리) 골목집도 찍었으니 아까 점찍은 집 찾으러 갑니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겨우 한 골목 지나왔는데 들어가는 길이 조금 헷갈립니다. 동네가 환하고 스카이라인이 뚫려있어서 길을 잃었지만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아요. 더 신이 납니다. 겁 없이 처음 보는 골목으로 들어가 봐요. 긍정 기운이 올라와서인지 옳게 찾았네요. 어쩐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