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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un 12. 2024

오늘은 누구의 역사를 훔쳐볼까

이 집? 저 집?

어김없이, 수요일입니다. 그림을 그리러 가야 해요.



매번 챙기는 가방이지만 오늘은 뭘 넣을까?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무겁게 재료를 싸 가놓고 결국 완성은 못 하는데도 짐 쌀 때는 매번 의욕 충만입니다. 그림에 참고할 책도 챙기고 (야외용)어반스케치 작은 고체 물감 대신 30색이나 들어있는 팔레트. 모터 단 듯한 손놀림으로 엄청나게 그릴'지'도 모르니 넉넉하게 넣은 열 장의 수채화지. 천연 붓, 인조 붓, 휴대용 물불, 구성 붓에 둥근 붓까지 들어있는 붓집도 챙기고. 빠진 게 있나 둘러보다 회원분들께 칭찬 폭탄도 듣고 피드백도 들을 일주일 동안 그린 그림에다가 동아리방을 제공해 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보니 빌린 책 열 권까지…. 두 손 두 어깨가 빠질 듯 무거워져야 준비 완료네요. 맥시멀리스트 아니랄까 봐 뭐라도 더 챙기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매일 '조금 더 일찍 나가서 아무도 없을 때 그림 좀 그려놔야지….' 하는 생각은 실현이 안됩니다. 애들 챙겨 보내놓고 국 먹는 남편을 위해 한 시간 푹 익힌 구수한 시래깃국까지 끓여 배부르게 먹으니 이미 시간은 그냥 딱 정각 도착 때입니다.


부릉부릉~. 출근을 한 참 지난 시간. 면에서 읍으로 들어가는 한적한 길이라 막힐 일도 없습니다. 두어 번 신호마다 잠깐씩 긴장을 풀다 보니 코앞까지 와 있어요. 일주일 전에도 왔으면서 오랜만인 척(인지에 장애가….) "윙? 생각보다 빨리 왔네" 하며 또 즐거워집니다.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인데 생각보다(?) 빨리 와져서 십분 남습니다. 초록 불로 바뀐 신호 앞, '유행 지난 사진 말고 오늘 찍은 따끈따끈 신상 사진으로 그림 그리고 싶다….'즉흥적인 기분이 떠오릅니다. 보통 때 같으면 생각만 하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결국 그냥 가던 길로 갔겠지만 요즘 제 욕망, 생각에 좀 예민해졌어요. 에잇 모르겠다. 사진 하나만 찍자.


'한 장만 찍고 가면 늦지도 않고 신상 작품 그릴 수도 있고 좋잖아?'


직진 대신 핸들을 꺾습니다. 큰길 벗어나 초등학교도 지나서 구석구석 기와집 초가집이 있을 동네로 숨어듭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데다 <30>을 지켜야 하는 어린이 보호구역. 그 덕에 핸들에 손만 올리고 천천히 길을 따름이다. 어? 왼쪽에 목표물 발견 발견. 다행히 바로 앞에 주차장이 보이네요. 또 좌회전, 마을 공용 주차장에 차를 데려다 놓습니다. 덥지만 잠시만 기다려…. 차를 다독여 놓고 전화기만 들고 내립니다. 지나오다 본 곳은 길가로 가면 되지만 이왕이면 구석구석 눈에 담으려, 운이 좋다면 사진기에도 남기려 돌아서 가 봅니다.


우와~ 서까래가 살아있는 집이 골목 끝에 담담하게 있었어요. 정말 행복합니다. 이 집만의 역사와 기록이 고스란히 차려진 한 상 오래된 집. 그럼에도 아직 살고 계시니 관리까지 깨끗하게 되어 있어요. 페인트칠도 마당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사람이 어제까지 살았어도 집과 호흡하는 존재가 사라진 집은 급격하게 늙어버려요. 하루, 한 달이면 허리가 굽다 못해 접어진 것처럼 보이지요. 나무 머리도 덥수룩 수염까지 자라있곤 해요. 벽 옷은 빨래를 잊은 지 오래라 흙길을 닮은 색으로 변하곤 합니다. 일 년이 넘어가면 집이 자연 속에 묻혀 눈앞에 있어도 존재감이 들지 않곤 합니다.

초록 대문에 끌려 바라본 곳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전봇대 뒤 길 끄트리로 가면...

이 집은 생생해요. 아직 50년은 더 사실 것 같습니다. 집에 계신 어른분들요. (누가 사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소설 씁..) 신이나 사진을 마구마구 찍습니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끝 집이니 이 정도면 마당까지 들어온 거나 마찬가진데 무서운 소리로 짖는 주인 개도 없으니 말이에요. 감사한 마음으로 작품 감상하듯 각도를 달리해가며 담습니다. 아~ 마음 가득 충만감이 듭니다.


마음에 쏙 드는 끄트리(끝의 사투리) 골목집도 찍었으니 아까 점찍은 집 찾으러 갑니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겨우 한 골목 지나왔는데 들어가는 길이 조금 헷갈립니다. 동네가 환하고 스카이라인이 뚫려있어서 길을 잃었지만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아요. 더 신이 납니다. 겁 없이 처음 보는 골목으로 들어가 봐요. 긍정 기운이 올라와서인지 옳게 찾았네요. 어쩐 일~

 야! 방앗간? 와…. 이런 가정집에서 방아를 찧었구나.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 방앗간의 역사도 훔쳐봅니다.

큰길 지나다 본 집 찾으러 누비누비고~ 파란 대문 파란 하늘 이쁘다 이뻐.
왼쪽으로 갈까요 오른쪽으로 갈까요~~~ 아니면 돌아서 나갈까요~~
오! 찾았다. 화려한 색이 아직 남아있는 제법 커다란 집
방앗간! 어쩐지 크더라 집이. 대문도 크고. 나름 으리등등 잘나갔던 곳.
구석 구석 빛이 내리니 음영이 주는 것만으로 색이 가득해졌습니다.

동네가 구석구석 이쁘고 조용하고 편안해서-개가 짖는 집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개 무서워요-씩씩하게 걸을 수 있으니, 더위도 모르겠고 시간도 잊게 됩니다. 아차! 그림! 아이고 시간이…. 서둘러 도서관 3층 동아리방으로 달려갑니다.


그림 후 점심 먹으러 가서 그림친구가 "언니! 좋아하는 낡은 집 있네요~~"하길래 달려가서 찍었습니다. 근데 이건 낡은게 아니라 무너지...


폐가.. 너무 늙어서 폐가 좋아하지만 냄새까지 났습니다.....힝..

오늘도 그림을 핑계 삼아 좋아하는 골목길 여행. 20분 만에 하는 50년 역사 여행 흥미로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그림 그리러 진짜 도서관으로 출발!!!

오늘 그리다 만 그림 왠지 벌써 망필~~. 놀다보니 두시간 순사~~~악~~~ 결국 그림은 하나도 완성품이 없~~~랄랄~~라
이렇게 욕심껏 화분 풀어놓으니 또 이쁩니다.
시험기간에 펜화만 며칠..


시험기간이라 변명하면서.. 미완성
시험....ㅋㅋㅋㅋ
시험 끝난 날!!야우호~ 첫 색 넣은 그림. 이제부터 시작이야~~했는데 하루 한 장 이상 못 그렸네요. 막 백 장씩 그리고 싶었는데 말이죠...
누가 너무 갖고 싶어 하길래 한 장 더 그렸습니다. 오랜만에 큰 종이에 그렸네요.  
다잇쏘 가서 A3 액자 사서 넣어야겠습니다. 근데 내년에 그렸는데? 2025년? 오우 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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