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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Sep 29. 2023

자연의 신비

아토피가 알려준 새들의 울음소리는?

남해군. 바닷가와는 무관한 곳에 누워있다. 백색소음이라기엔 소프라노 독주가 너무 자주 들린다. 온갖 풀벌레가 밤을 잊은 지금 이곳은 자정이 었다.


오랜만에 슈퍼우먼으로 변신해 수십 가지 반찬, 차례음식을 동시다발적으로 찍어냈더니 방전이 금방 와버렸다. 속도는 탁월한데 의미가 없는 거다. 많이 한 만큼 딱 그만큼 지쳤으니까. 누가 보면 일을 엄청 수월하게 브런치 글도 써가며 사진까지 찍어가며 재미있게 한다고 하겠지만 그저 오해일 뿐인 거다.


저녁 먹은 상을 물리고 잠시 누워 판타지아행을 다녀와 못다 한 (명태) 전과 기름 튀는 한판을 해내고 나니 이젠 발바닥까지 힘들다 아우성이라 아쉽게도 결승전은 기권했다. (갈비찜은 내일까지 기다리세요!)

새우튀김과 명태전을 끝낸 후. 입맛도 없었지만 먹어보니 또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마당에 누운 처지가 되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내 할 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안중에 없다. 뜨거운 물로 샤워한 몸은 노곤해져 오고 풀벌레들의 (불협) 화음도 기쁨의 찬가 같다.


둘째는 아토피가 있다. 내 눈에 완벽한 아이에게 딱 하나의 시련이다. 집 안에서 자면 집 먼지 진드기 때문에 아토피가 한 여름 잡초처럼 올라온다. 약효를 믿기 힘든 물건을 팔려고 '이 피부가 이렇게 됩니다'하는 예시로 보여줄 만큼 끔찍한 광경이다.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집에서 쓰던 토퍼를 깔고 집에서 빨아 온 이불을 덮은 채 캠핑 중독자여서 그러는가 싶은 야외취침.


그런데, 며느리로 일거리를 찾아 승냥이처럼 어슬렁거려야 하는 시댁이 아니라 현관문만 나왔을 뿐인데. 드라마처럼 한 세트장이면서도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연기가 자연스럽듯 나도 그냥 여기가 글램핑장 같다. 일을 쌓아놓고 눕기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만한 시댁과 겨우 한 발 떨어졌는데도 이런 마음이 들다니.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라 해야 하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거리가 생기니 여유가 생긴다고 해야 하나?


어서 자고 아침에 가뿐히 일어나 차례도 지내고 친정으로 올 식구들 먹을 음식도 더 장만해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조금만 즐기고 싶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가을을 큰 숨으로 가슴에 담고 싶다.


내일 해도 뜨기 전 어스름이 낄 때 즈음이면..



온갖 새들 때문에 진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깜짝 놀라 깰 테니 말이다.

캠핑의 불편함을 혐오하는 족이라 야외취침 처음 해본 나는 진심 새들의 울음소리가 이토록 도떼기시장 상인의 고함소리 같을 줄 몰랐다.  자연을 오해한 나의 무지는 이럴 때 또 들통이 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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