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Sep 30. 2023

집이었던 곳으로 갑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과거】

벗어놓은 허물 같습니다. 찌꺼기는 버렸고 티끌은 걸러 새로운 포대에 담긴 새 술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도요. 살면서 (무척이나 멀리 있는) 등대 같다 생각한 부모님 댁에 와보니 도처에 제 과거가 박제되어 있습니다. 벽에 책꽂이에도 옷장에도요. 떠나고 싶었던 곳.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의 기억이 공기처럼 떠다닙니다.


어느 하나 되는 것 없던 어둡고 축축하던 시기도.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없어 눈을 치뜬 채 헤매다 코앞에 있던 돌부리에도 넘어지던 때도. 나라는 인간 아무것도 아니라는 쓰라린 자아성찰로 표정 없이 지내던 시절도 3D상영관처럼 한꺼번에 몸을 강타합니다.


그 기억의 옆면에는 사소한 성공도 나름의 안정도 부록처럼 따로 또 같이입니다.


한 걸음씩 오르고 열 걸음씩 절망할 때도 그래서 세상에 너무 혼자인 것만 같아 참 매섭던 삶이었어도 실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K2 북벽 극강의 난이도였으리라 충분히 예측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멈춘 곳에 와보니 제 마음도 잠시 과거로 흘러내습니다.

어릴적 살던 집에 비하면 대궐같은 지금의 친정.

이곳 친정에 아침부터 서둘러 도착했지요. 그리워서는 아닙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도 아닙니다. 과거를 만나러 가는 길, 단지 막히는 차 안 그 긴 시간이  육체의 뒤틀림을 저의 미래인 아이에게 적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입체 사진첩 같은 친정이 미래를 준비 중입니다.

과거의 시간이 닫히려 커다란 문이 우르릉 기지개를 켭니다.



미움도 사랑도 고마움도, 표현할 길 없는 온갖 마음도 굴뚝을 통과한 열기처럼 흩어져 사라지려 합니다.


영정사진을 찍으셨다는 아버지의 개구진얼굴이 해맑으셨습니다. 부담 주지 않으려 복지관에서 챙겨주는 대로 준비를 해 놓으셨답니다.


어머니의 말린 자두 같 꺼진 얼굴도 신장이 나빠 주름이 펴질 정도로 부으신 아버지의 얼굴도 미래의 어느 한순간 쓸모를 위해 붙잡아 놓으셨습니다. 


통통하던 엄마의 얼굴과 날씬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대신해 주듯 미래의 어느 한순간을 위해 과거의 어느 한순간이 대신하려 합니다.



수많은 순간을 꽁꽁 묶어놓으셨으면서도 제 일기를 다 잃어버린 것 같다며 미안해하시는 아버지. 감정의 배출구로써의 글자, 그것마저 아까워하십니다. 책이 몇 권일텐데 하시며 그저 속상해하셨습니다. 예, 저는 철부지 이기적인 자식입니다. 당신의 깊은 사랑도 눈치채지 못하는.


시간이 흘러내려 멈춰버리기 전에 움직이겠습니다. 시간 속에 갇히기 전에 한 번 더 함께하겠습니다. 지금 제 시간속에서요.


부모님 고맙습니다. 곁에 있을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의 신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