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을 해 보지만 찾지 못했다. 일전에 방송에서인지 책에선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같은 말을 듣고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우 내면의 의식이 그쪽으로 향해 있기에 해석의 필터를 통과하면 자신만의 언어로 인식하게 된다> 정도의 정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마저 필터 통과된 잘못된 정보인가??)
우리 집에는 두 종류의 인류가 산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게 자연스럽고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탁월해 그 사람의 말 너머의 부분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인간.
단독생활하는 고양이처럼 자신이 필요하면 상대방의 말도 들리고 아니면 '내가 오늘 입은 옷이 뭐였더라?' 하며 사람이 앞에서 말을 하는데도 혼자만의 세계로 아무 사전 예고도 없이 훅 들어가 버리는, 그래서 그 사람이 "들었어?" 물으면 "어? 옷이 어쨌다고?" 하며 엉뚱한 답을 내어놓길 좋아하는 동물류.
무척 쉽게 끄덕이시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가 나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야! 멍청한 대통령님아!" 아이코 이게 아니라 문제는 날 닮은 첫 째가 청출어람이라는데 있다. "쿼 바디스~신이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어쩌자고 가혹한 벌을 주시나이까. 대통령님 욕을 해서입니까?"
그런 포유류의 생명체가 수도 없이 많은 인간과 대면한다. 하루에 적어도 몇 십 명. 많으면 되게 많은 사람. 그러니 귀를 세우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잔뜩 장착하여 능력을 최대치로 올려 과장하듯 부풀려야 정상적인 말을 서로 나누고 조금 더 들어간 대화도 가능해진다.
정신을 편안하게 하면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
"적립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ㅇㅇㄱㄱ"
"예?"
"오ㅇㄱㄱ"
"..."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말씀 주시겠어요?
"오 일 구 구"
"감사합니다"
"흐휴"(한숨ㅡ진짜 한숨 쉬셨음)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데 숫자에 대한 기능이 없다 보니 숫자를 대화에 사용하면 문제가 더 커진다. 숫자가 안 들린다.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실까 한 마디 하자면 저 '9155 고객님'은 입을 떼지 않고 말을 하기에 그렇다. 그러하여 안 들린 건 정상 참작이 됨을 알린다. 지금 적립번호를 물으면서는 몸을 손님에게 더 바짝 붙여 귀를 열며 거북스럽게 군다. "싫어하지 마세요 손님. 제가 안 들려서요. 볼키스라도 하려는 듯 구는 걸 양해 바랍니다."
좋은 소식도 하나 드린다. '9155' 손님은 매일 오기 때문에 이젠 숫자를 외웠다. 그래서 버릇처럼 번호를 묻지. 내가 본인에게 관심 있어서 그런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냥 형식상 묻고 말도 하기 전에 숫자를 자판에 넣는다.
오늘 손님도 처음 보는 분이다. 제 아무리 작은 동네 슈퍼라도 매일 새로운 손님은 본다. 들어오며 묻는다.
"위생 천 있어요"
"위생용 천이요?" 기저귀를 만들때 필요한가? 나도 오랜만에 시장에 원단 보러가고싶네. 쩝
(손을 이렇게 눈높이로 올려, 붙인 손가락을 벌리며 늑골에서 마무리하는 네모를 만든다)
"이렇게 네모난 천요?"
"위생 천이요!"
"언니, 가게에 거즈 천 없죠?" 채소 언니에게 물어본다.
"허, 못 본거 같네" 언니도 나처럼 모른다.
"어, 저희 가게에 찜솥에 넣는 뻣뻣한 천은 있는데 그건 없을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뭘 먹었는지 체해가지고.."
"예.. 그러..? 체하셨다고요? 그러면 가스활명.. 어? 위생천이 소화제인가요?
"네."
"아하하하 여기 있어요. 저는 위생용 천 찾으시는 줄 알고요. 아 죄송해요. 그러고보니 위생천 본 것 같네요. 바로 옆에 있습니다. 여기로 와보세요"
"아, 여기 있네요. 체해서 이거 하나 먹어야겠어요. 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도 첫째가 "영어샘이 띠운이(둘째)귀엽데" 하길래 응 안그래도 어제 영어 결제한다고 뵀다 하니"응? 과외샘!"한다. 내 맘속에 생각하는 주제로 모든 대화를 가져오는것도 이쯤되면 재주다. 나는 재주가 참 가지가지다.
<진짜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 귀에 캤는데(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요. 마른 장작처럼 성마른 분이었으면 '퐈이어' 한 번 하고 나가셨을 겁니다.>
오늘도 식은땀 날 만한 상황에서도 착한 동네 사람들이 절 살리네요. 저의 웃음도 너그러이 넘겨주신 손님. 체하신 와중이라 저처럼 안 들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항상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