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수 없는 세 가지

당신에게 그 세 번째는?

by 노사임당

<우리 슈퍼>는 소도시 작은 읍에 있다. 읍의 크기로만 보자면 꽤 큰 편이다. 혁신도시로 일부를 내어주고도 아직 옆동네에 지지 않을 만큼. 뭐에서? 크기나 그러니까 뭐냐면, 모르겠고 아무거나에서 그냥 지지 않는다.



읍이 커봤자 작은 시골이라 슈퍼에 오시는 손님은 거의 단골 아니면 가끔 오시지만 안면 익은 분들이다.


오늘 키가 커다란 단골 남자분은 토마토, 사과, 배, 샤인머스켓을 사서 나가는 길에 슈퍼를 들어오는 아는 동네 형님을 만나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물었다.

"어, 형님. 뭐 사러 오십니꺼?"

"어, 너는 뭐 샀노?"

"아 마누라가 이것 좀 사 오라 해서예."

"어어 나는 찌개를 만들라고"

하면서도 몸은 이미 돌아선 그 길로 가고 있다. 나에게 단골인 손님들은 손님들끼리도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의 대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도둑 듣기> 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그런 동네 이웃 주민 같은 분들이 오는 가게라 대부분 손님이 소탈하고 착한 편이다. 말 한마디 걸어보면 금방 마음을 보여주고 웃음도 쉽게 피어나는 친근한 사람이 많은 동네. 그러니 계산 못하는 계산원이 그만두지 않고 꾸역꾸역 계산하러 오는지도 모른다.


막 여자 손님이 들어온다. 어깨까지 오는 파마머리를 오늘은 묶지 않고 풀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 되는 아이가 있는 여성. 50 대일 거다. 표정은 없다. 혹시나 갑자기 '화'라도 낼 사람일까 아직은 조심스럽다. 지난번 단골이라 생각한 손님이 갑자기 갑질 손님으로 변신을 하는 바람에 '눈물 바람' 한 기억이 있어 쉽게 '빗장 풀기 웃음'을 흘릴 수가 없다.


예의 그 아무것도 없는 표정의 얼굴로 물건을 내려놓는다. 초코우유, 새우젓, 땡초. 오늘의 메뉴는 특이하다. 이걸로 뭘 하지? 새우젓에 땡초를 찍어먹나? 매우면 초코우유 마시고?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서 조합이 엉뚱한 물건을 허다하게 사대는 나니 이상하게 보지는 않지만 궁금증을 자아낼만하긴 하다. 땡초와 새우젓이라..


"8,890원입니다"

"..."

대답도 없다. 말이 없으니 행동에 더 민감해진다. 그녀를 바라본다. 지갑을 꺼낸다. 빨갛고 기다린 지갑이다. 거기서 카드를 꺼낸다. 꺼내 주는 손에서 체크카드를 받다가 본다. 지갑 속에 사진이 있다.


카드를 긋고 영수증이 필요한지 물어본 후 다시 돌려준다. 카드를 받은 손이 다시 그 빨간 지갑으로 슬로비디오 형태로 되돌아간다. 지갑을 벌리자 아까 그 사진이 보인다. 아들인가? 가족사진인가 생각하며 무심히 보던 아까는 알지 못했다. '무심한 얼굴뒤에 가족애가 꽁꽁 숨겨져 있었구나' 생각할 뻔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 임영웅>

표정도 말도 숨기더니 그녀에게는 말 못 할 열정. 사랑을 표하는 단 하나의 공간. 팬심이 있었던 거다.(지갑이 장~~지갑인것도 사진이 커서 일지도 모르겠다.)


탈무드에서 나온 말 일거다. 세상에는 숨기지 못하는 게 세 가지라더라. (기침) 재채기, 가난, 그리고 사랑이라고. 누구에게도 애정을 표하지 않고 아끼고 아껴, 누구에게도 웃음을 흘리지 않고 소중히 남겨 퍼주는 단 하나의 목적지. 그 사랑의 도착지는 '그들의 영웅'이었다. 중년여성의 '영웅 사랑'은 작은 읍도 큰 대도시도 똑같구나. 아니 작은 읍이라 그녀의 사랑은 더 크게 느껴질지도. 그녀는 들켰다.


그렇게 꽁꽁 숨겨도 사랑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걸.


네이버 임영웅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