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문장은 왜 좋은가? 문장을 외과수술해보자
문장은 무조건 짧아야 한다.
앞 장에서 인수분해된 문장, 즉 최소화된 문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문장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문장이 연결되고 길어지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독자들은 긴 문장을 싫어한다. 이유는 긴 문장이 두뇌의 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두뇌는 한꺼번에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기 보다는 순서대로 저장하는데 익숙해있다. 한 번의 저장 이후 다음 데이터의 저장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바로 두뇌의 호흡이다.
“당신이 어제 내게 권해 주었던 그 책은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혹시라도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지적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긴 문장은 막상 눈으로 보아서는 잘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저장과 호흡이 이뤄진다면 의미가 잘 전달된다.
① 당신이 어제 내게 권해 주었던 그 책은, (저장 + 호흡)
②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겐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저장 + 호흡)
③ 혹시라도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지적 수준이 (저장 + 호흡)
④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섭니다. (저장 + 호흡)
그런데 자세히 보면, ①과 ③은 ‘책’과 ‘지적 수준’, 즉 주어가 중심이 되는 문장이고, ②와 ④는 ‘어려운’과 ‘높은’, 즉 주어를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다시 말해 긴 문장이라도 주-술-주-술 구조로 이뤄졌고, 또 두뇌 호흡을 유도하는 쉼표(,)가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이해가 쉬워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의 천자문인데 반복되는 주-술 구조 때문에 두뇌 저장과 호흡이 자연스럽고 리듬감[律]도 느껴질 것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거칠다.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별들은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문장이 반드시 주-술 구조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두뇌 호흡을 위해 의미의 덩어리를 쪼개야 한다. 예를 들면, 아래의 긴 문장은 너무 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졌기에 읽기가 어렵다.
스페인에서는 식민지에 파견할 유능한 관료들이 식민지 파견을 거부하거나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이들에게 반도인 즉 페닌술라르라는 칭호를 준 이후 식민지에서 왕 못지않은 절대 권력을 누리도록 허락하면서 누에바 에스파냐에는 라 카스타라고 부르는 일종의 카스트제도가 형성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멕시코의 역사’)
하지만, 의미의 덩어리를 쪼개어 아래와 같이 다시 써보았다.
①유능한 관료와 군인들의 식민지 파견거부 또는 폭동을 우려했던 스페인은 ②‘페닌술라르’(반도인)라는 칭호를 이들에게 주어 ③식민지에서의 절대 권력도 허용했고, ④이로 인해 누에바 에스파냐에는 ‘라 카스타’라는 계급제도가 형성되었다.
산만한 문장이나, 의미의 덩어리를 4개로 나누어 한 문장으로 연결하였다. 굳이 한 문장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아래와 같이 세 문장으로 쓰는 것이 훨씬 의미 전달이 쉽다.
스페인은 유능한 관료, 군인의 식민지 파견거부 및 폭동을 우려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페닌술라르’(반도인)라는 칭호를 주고 식민지에서의 절대 권력을 허용했다. 이로 인해 누에바 에스파냐에는 ‘라 카스타’라는 계급제도가 형성되었다.(3문장)
이번에는 인공지능에게 원문을 쉽게 풀어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이 세 개의 문장을 제시했다. 원문은 긴 한 문장이었지만, 인공지능 역시 원문을 2개 또는 3개의 짧은 문장으로 분해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1. 핵심 내용을 살린 부드러운 설명
"스페인 정부는 똑똑한 관료들이 멀리 떨어진 식민지로 가기 싫어하거나, 그곳의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본토 출신(페닌술라르)'이라는 특별한 명칭을 붙여주고 식민지에서 왕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식민지였던 누에바 에스파냐(멕시코 등)에는 '라 카스타'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가 생겨났습니다."(3문장)
2. 논리적 흐름을 강조한 설명 (인과관계 중심)
"스페인은 식민지 관리를 위해 유능한 인재들을 보내야 했지만, 그들의 거부나 반란이 두려웠습니다. 이를 달래기 위해 파견된 이들에게 절대적인 권위와 '페닌술라르'라는 높은 지위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특정 계층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식민지 사회는 인종과 출신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라 카스타'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3문장)
3. 아주 쉬운 요약 (한눈에 보기)
"스페인은 본토에서 온 관리들이 딴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식민지에서 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페닌술라르'라는 최상위 계급이 생겨났고, 이는 결국 '라 카스타'라는 거대한 신분제 사회를 만드는 뿌리가 되었습니다."(2문장)
의미의 덩어리를 나누어 끊어 읽는 대표적인 글이 연설문이다. 아래 연설문을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국과 중남미는
각자 여러 대내외적 도전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향해 전진하면서,
경제협력도 돈독히 발전시켜왔습니다.
특히 중남미는
한국 수출경제의 첫 시작점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첫 수입국은
바로 1976년 에콰도르였으며,
삼성전자 컬러 TV의 첫 수입국도
1977년 파나마였습니다.
한국이 자동차, IT 분야의 성장을 도모함에 있어
중남미 국가와 국민들의 신뢰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위 연설문은 국무총리의 2022년 10월 칠레 유엔 중남미경제위원회 연설문의 일부이다. 실제로 연설자는 의미의 덩어리가 한 줄 단위로 구분된 연설문의 인쇄본을 읽는다. 화자나 청자 모두 읽고 이해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쓴 글을 교정할 때, 직접 읽어 보는 것을 권한다. 의미의 덩어리가 명확하게 구분된다면 읽기도 편할 것이다. 이 경우 두뇌의 호흡이 아닌 실제 허파의 호흡도 부드럽게 이뤄질 것이다. 의미의 덩어리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는다. 소위 혀가 꼬인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좀 더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짧은 단어를 위주로 글을 쓰기를 권한다. 우리나라의 시조時調는 5 음절 이하의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는 대표적인 단음절 문학이다. 더구나 5 음절 이하의 단어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기에 리듬감과 극적인 느낌도 준다. 아래 왕방연의 시를 읽어 보자.
천만리 / 머나먼 길에
고운 님 / 여의옵고
내 마음 / 둘 곳 없어
냇가에 / 앉았으니
저 물도 / 내 안 같아서
울어 / 밤길 예놋다. (왕방연)
우리는 5 음절 이내의 단어에 익숙해져 있다. 6 글자가 넘어가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이 글에서도 필자는 가급적 5 글자 하의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시조를 들으면 이해가 잘 되고, 경쾌함도 느낀다. 우리 선조들의 언어 감각에 존경심이 절로 생겨난다.
이제 아래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 우리가 읽었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왜 어려웠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① 그 당시에도 1세기 뒤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사회적 위기를 설명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준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가 그 수도 파리에 투사들과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이끌린 사람들을 끌어들여, 이 도시가 지니는 보다 가벼운 종류의 매력에다가 하나의 심각한 매력을 추가했던 것이다.
② 그때도, 그리고 백년 뒤에도, 공산주의는 사회적 위기를 설명하고 해결을 약속했다. 호기심에 이끌린 이들과 투사들이 파리로 모였다. 가벼운 매력의 도시 파리는 이제 진지한 토론의 도시가 된다.
①은 전형적인 번역체 문장이다. 영어 원문에 충실하다보니 의미전달이 아쉽다. 과감한 의미 덩어리 조합과 시조의 음절 원칙에 따라 재구성한 것이 ② 문장이다. ②는 ①보다 정보가 부족하지만, 가독성은 매우 높다. 부족한 정보는 전후 문맥으로 보충될 수 있다.
한편 인공지능에게 부탁한 쉬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원문의 "그 당시에도 1세기 뒤와 마찬가지로" 의미가 누락된 것은 다소 아쉽다.
"그 당시 파리는 즐길 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회 위기의 해결책을 자처하는 공산주의가 등장하면서 열정적인 활동가들과 지식인들까지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파리는 '가벼운 즐거움'뿐만 아니라 '진지한 사상적 깊이'까지 갖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습을 자주 해 보도록 하자. 책이든 인터넷이든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길고 어려운 문장을 외과 수술하듯 바꿔보자. 스트레스도 풀리고 문장력도 향상될 것이다. 이 장에서도 연습문제와 필자의 답을 소개한다.
<연습문제>
다음 문장을 의미의 덩어리를 나누어 보다 간결한 문장으로 고쳐 보시오.
1. 물론 이 감정도 언젠가는 자신의 귀한 영혼을 그렇게밖에 지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의 귀한 영혼을 그렇게밖에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이 감정도 측은지심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2.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과 가장 고통스런 시간을 다 맛본 한 영혼이 내린 결론이란 바로 일상적인 삶의 소중함이었다.
(일상의 소중함, 이는 인생의 절정과 나락 모두를 경험한 어느 영혼의 결론이었다.)
3. 진정한 마음으로 평생 사랑하는 경우는 완두콩 깍지 속에 훌륭한 완두콩 두 알이 나란히 들어 있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하나의 깍지에 온전한 완두콩 둘이 나란히 있을 수 없듯, 진심으로 평생 사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4. 지금의 내 심정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의 어디쯤에 있는지를 묻는 것과도 같다.
(기나긴 고통의 끝은 어디인지. 지금 내 심정이다.)
5. 스마트팜은 흙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로 인해 벌레들이 알을 낳지 못한다는 장점이 있다.
(흙이 없으면 벌레가 알을 못 낳는다. 이게 스마트팜의 장점이다. )
6. 배를 단독으로 소유하기에는 여유가 없던 은퇴한 항해사 13명은 함께 돈을 모아 13명이 함께 타기에는 턱없이 작은 요트 한 척을 공동 구매하여 교대로 배를 타는 것으로 합의했다.
(전직 항해사 13명은 배를 살 여유가 없어서 공동으로 작은 요트를 사 교대로 타기로 했다.)
7. 광각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높은 곳에 있는 물체가 실제보다 더 작게 나와서 더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광각렌즈는 높은 곳을 실제보다 작게 묘사해서 더 큰 고도감을 준다.)
8.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폭언의 위험성을 말하면서 학부모들에게 자제할 것을 당부했던 선생님들마저도 사실은 자신의 가정에서는 한 인간일 수밖에 없기에 자녀들을 향한 폭언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교사는 폭언이 아동에게 가할 위험성과 자제 필요성을 학부모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에 자기 가정에서 그 유혹을 쉽게 느낀다.)
9. 새마을운동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와 같은 노래가사 때문에 농촌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건설사업 위주의 운동으로 보이기 쉬운데, 사실 새마을 운동의 핵심은 농가구마다 농사 말고도 양봉업과 같은 부업을 장려하여 농가소득을 올리는데 있었다.
(새마을운동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가사로 인해 농촌미화용 건설사업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핵심은 양봉과 같은 부업을 장려하여 소득을 증진하는데 있다.)
10. 상업주의에 충실한 작곡가는 대중들의 취향이 왜 시시각각 변하는지 고민하는 작곡가야말로 시대의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상업적 작곡가는 대중의 취향 변화 이유를 고민할수록 시류에 뒤쳐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