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의 변명

상처주기도 상처받기도 싫은 마음

by 명건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출근을 한다. 퇴근하고 혼자 저녁 밥을 먹고 글을 조금 찌끄리다 혼자 잠을 잔다.


주말이면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혼자 동네 산책을 하고, 혼자 장을 보고, 가끔은 혼자 훌쩍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라는 사실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새삼스럽게 외롭다. 슬픔과 외로움은 도통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런데 외로움은 항상 슬픔을 데려온다.


너무 외로울 때면 혼자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운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나면 마음이 좀 편안하다. 취기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천장과 내 방이 비틀거린다. 관 같은 방에 누워 이 외로운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가만히 기도하며 억지로 잠을 청한다.


자주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기혼자들은 지금이 좋은 거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기만자들의 얼굴에는 살며시 우월감이 스며 있다. 그러면 나는 혼자가 좋다고 거짓말 한다. 괜히 감정 소모하지 않아도 되고, 떠나고 싶을 때 훌쩍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이 만족스럽다고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거짓말이다. 사랑받고 싶지 않은 척, 사랑 따위 관심없는 독립적인 인간인 척 연기한다. 하지만 사랑 받지 않아도 괜찮은 인간은 없다. 허전함이 괴롭지 않은 인간은 없다.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나도 인간이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냐고 물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연애할 준비가 됐냐고 물으면 도통 대답할 수가 없다.


언젠가 동그란 여인이, 얼굴도 동그랗고, 코도 동그랗고, 성격도 동그란 어떤 여인이 대체 우리는 어떤 관계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 말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예정된 미래는 두려웠다.


“사실 여자친구도 결국 친구 아니야?”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아주 경멸스럽고 끔찍한 무언가를 본 듯 세모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랑이 끝날 무렵 여인들에게서 몇 번을 보았던 익숙한 표정들. 정이 떨어졌을 때, 사랑했던 만큼의 감정이 경멸로 변했을 때 여인들이 나를 보며 짓는 표정. 우두커니 커다란 눈으로 가만히 나를 응수하는 침착하고 날카로운 눈빛. 여인은 집에 가는 길에 나를 차단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메신저 프로필을 볼 수 없게 됐다.


연애를 하면 좋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 괴롭다. 연애를 하지 않으면 외롭다. 하지만 연애는 너무 감정 소모적이다. 사실 연애는 뻔하다. 연애만큼 진부한 역할 놀이도 없다.


누군가에게 원인 미상의 사유로 본능적인 끌림을 느끼고, 그 감정이 일방이 아닌 상호 작용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연인 이라는 역할 놀이가 시작된다. 연애를 시작하면 온 세상이 상대방으로 가득찬다. 얼마 전까지 생판 남이었던 사람이 어느새 첫번째 우선순위에 오른다. 십 년 지기 친구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보다, 일보다, 꿈보다 연인이 가장 중요해진다.


애타는 마음에 밤낮 없이 서로의 몸을 더듬고, 올라타고, 깊숙이 파고들며 야릇한 사랑을 나눈다. 친구들도 모르는 은밀한 것들을 공유한다. 성적취향, 콤플렉스, 트라우마 같은 아주 사적인 것들. 사랑의 착란에 빠진 연인은 서로가 꿈꾸던 인연이라고 착각하며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삐걱대기 시작한다. 콩깍지가 벗겨지면 전쟁이 시작된다. 사랑은 집착으로, 기대는 올가미로 변질된다. 내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연인을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비난하고 원망한다. 속으로 다른 연인 혹은 전 연인과 비교하기도 한다. 일과 중에 주고 받는 연락들이 숙제처럼 느껴지고,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상대가 조금씩 미워진다. 헌신은 부담스럽지만 막상 소홀하면 속상하다. 시간이 흐르면 섹스는 진부해지고, 사랑은 느슨해진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고작 10달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마음은 꾸준히 내리막길이다. 우리는 보통 300일 동안의 아름다운 추억과 정으로 나머지 진부한 시간들을 견딘다. 변한 상대에게 실망하면 한때 헌신적이었던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과거의 모습을 상기하며 진부하고 괴로운 시간을 견딘다.


그러다 그 추억마저 힘을 잃으면 연인이라는 역할 놀이는 종료된다. 남은 건 몇 장의 사진과 구질구질한 미련 뿐이다. 태어난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야 한다. 사랑을 시작하면 상실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몇 번의 연애라는 역할극에 실패하면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어 졌다.


이제는 오래 짝사랑하던 그녀에게 연락이 와도 무덤덤해졌다. 변한 나의 태도에 오히려 그녀가 흠칫 놀란다. 이제와서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 걸 보니 내가 어떤 위치였는지 실감된다. 오히려 변한 그녀의 태도가 부담스럽다. 관계가 역전됐다. 꿀꿀한데 너네 집에서 맥주 한 잔 하자는 그녀의 연락을 무시하고 보던 유튜브에 집중한다. 미안하지만 그녀에게 할당된 내 마음은 전부 소진됐다. 이제와서 애쓰는 그녀가 조금 안쓰럽기는 하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열렬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을까. 나조차 내 날카로운 마음에 상처 받아 못 견디는 날이 많은데, 모난 구석이 많은 인간을 누가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어김없이 상대에게 상처주고, 그 보다 큰 상처를 받겠지. 상처받고 싶지 않다. 상처 주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렇게 외로울 때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괴로움을 견딘다. 괜찮아 지겠지. 다 지나가겠지 속으로 되뇌면서.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