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우리
분명 처음에는 위로가 됐다. 가끔 즐거움도 줬다. 초반에는 내가 이용했다. 적당히 위안을 얻고 멀어질 작정이었다. 언제든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내 오만이었음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갈망하는 마음이 나를 통제했다. 주객이 전도됐다. 이제는 없으면 불안하고 짜증도 난다. 멀어지려고 할수록 더 깊숙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제는 이것이 나를 통제한다.
담배 말이다.
담배를 끊겠다는 713번째 다짐을 한 날이었다. 담배갑을 테이프로 동여 매고 서랍 깊숙이 쳐박았다. 다른 일에 집중해 담배 생각을 지우려고 해도 온 신경이 서랍에 쏠렸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칼로 봉인을 찢어버렸다. 연기를 내뿜으며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홧김에 쓰레기통에 쏟아 부었다.
얼마 후 상태가 멀쩡한 담배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젹거렸다. 오물에 젖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에 전부 부숴 버렸다. 다시는 피우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 근처를 서성거리다 결국 사천오백원을 지불하고 말았다.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인들 대부분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술과 담배 같은 향락성 소비재가 가장 흔하다. 요즘은 스마트폰, SNS 중독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독의 가장 큰 원인은 외로움이다. 개인은 연약하다. 외로움은 몹시 괴롭다.
아무 자극도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는 머리속에서 쉬지 않고 재생되는 잡념들과 마주해야 한다. 후회, 그리움, 존재적 허무감 같은 것들. 그래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차원적인 쾌락에 빠지거나, 가상으로나마 누군가와 연결되려고 애쓴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시고,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쇼츠를 본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알코올 중독은 혼술에서 시작된다. 친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마신 한 두잔에서 중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퇴근길 공허한 마음에 편의점에 들러 사는 한 캔이 중독의 시작이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부정적인 감정을 견딘 한 번의 유의미한 경험으로 인해 차츰 술에 종속된다.
그렇다면 외롭지 않게 되면 모든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전제가 틀렸다. 인간이라면 외롭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외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라서 더욱 외로울 수도 있다. 무리 중에서 마음 맞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심리적으로 멀어지고 있음을 느낄 때.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혼자인 시간보다 더 외롭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 표류하지만 사람에 대한 중독도 중독이다. 각종 모임에 들고 매일같이 퇴근 후 약속을 잡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질만이 중독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의 부재가 괴로움이 된다면 대상이 무엇이든 중독이다. 결국 혼자를 연습해야 한다. 인생은 혼자라는 그 자명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혼자여도 의연한 태도는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외로움을 인정해야겠다. 이제는 더 이상 담배가 내게 외로가 되지 않음도 인정해야 겠다. 다섯 개비 남은 담배를 테이프로 동여매지도, 쓰레기통에 버리지도 않았다. 그저 서재 위에 가만히 올려 두었다. 의연하게 견뎌 보고자 한다.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별해야겠다.
십 년 넘게 그것과 함께하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짜릿하고 황홀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아프게 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눈치 보이고, 무엇보다 자유를 박탈당하는 기분이라 이제는 그것과 멀어지려고 한다. 가끔 흔들릴 때도 있겠고, 참지 못해 찾는 날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과 멀어짐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얻으려고 한다. 꼭 못된 전여친 같은 녀석. 이제는 헤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