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친구'란 어떤 사람들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는가? 오늘 이 글은,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야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인연이라는 것을 믿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만날 사람은 만나고, 만나선 안 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만날 사람과, 만나선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학창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때에 따라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강제적으로 친분을 쌓아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가 쌓아온 인간관계가 아무런 예고 없이 맺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별 시답잖은 이유만으로도 이러한 맺고 끊음이 이루어질 때가 많이 있다. 이것은 상대와 쌓아온 친분의 시간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쉽게 하는 착각이 있다. 바로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서로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쏟는 시간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그것을 더 잘 알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함께 한 시간만큼 추억이 쌓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잘 알고 있다'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10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고 해보자. 그 친구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좋아하는 음식? 관심 있는 이성 스타일? 취미생활? 이런 정보들은 소개팅에서 반나절만 얘기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그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관계에서 '지인'과 '친구'를 구분지어서 생각하는 편인데, 내게 있어 '지인'들이란 앞서 말한 피상적인 정보들의 교류가 주로 이루어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속에 있는 깊은 얘기들을 나누기보다는, 일상적인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친구'는 좀 더 깊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깊은 관계'다. 나누는 대화의 주제들도, 거기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깊이도 지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 예민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거기서 오는 차이를 비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관계. 그것이 내겐 '친구'라는 존재다. 또한 내가 평소 귀찮아하는 것들도 친구를 위해서는 기꺼이 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으며 내가 느낀 건, 알고 지낸 시간으로 '지인'과 '친구'가 구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냈어도 여전히 '지인'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만난 지 몇일만에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된 사람들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 '도대체 나와 친구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뭘까?'라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에겐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알고 지낸 시간, 성별, 성향, 취미 등 그 어떤 것도 모두에게 겹치는 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과 만나 대화를 하면서 나와 그들 모두가 가진 공통점이 하나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인생에서 정말 힘든 시기를 겪었으며, 결국엔 스스로 잘 극복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살면서 힘든 순간이 있었냐"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시간을 결국 극복했냐"라고 물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인간은 평화로울 때가 아닌, 현재가 고통스럽고 힘들 때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면서 전과 다르게 '자아성찰'을 하고, 조금씩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정말로 힘든 시기를 보내본 사람들은, 누군가의 힘듦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힘듦을 타인에게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진짜 힘들면, 힘들다는 소리조차 할 힘이 없어진다. 그러면서 타인의 아픔 또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또 다른 힘든 시기가 와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게 된다. 이미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스스로 그것을 이겨낸 적도 있기에 그들은 자신이 이번에도 해낼 수 있다는 '근거에 기반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을 살며 정말 힘든 시기를 겪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자아성찰'과 '자기 객관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도 쓸데없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힘든 순간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힘들었던 경험이 없거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힘들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뱉는 말과 행동들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정말로 힘들었던 적은 있지만 여전히 그 시기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에겐 타인의 힘듦보다는 자신의 힘듦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지인'조차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 후 누군가와 멀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와 친해지면서 나는 비로소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결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친구'의 기준인 것이다. 분명한 건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기 시작하자, 삶이 점점 더 좋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었다. 매번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연스럽게 상대를 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사람마다 '친구'에 대한 정의는 다르다. 그러나 누구를 자주 만나고, 어떤 사람들을 곁에 두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때에 따라서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용기도 내야만 한다. 그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심지어 가족이 되었든 말이다. 물론 가까운 사람을 끊어내는 건 당장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의 일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껴본 사람은, 지금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건 그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건 오로지 당신이 선택한 것임을 명심하라. 이 글을 읽고 나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지금 나는 어떤 사람과 '친구'로 지내고 있는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