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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Sep 20. 2022

가을이 되었다는 건, 곧 겨울이라는 것


아직도 기억나는,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추억이 있다. 이브 저녁,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었다. 왠지 눈을 뜨면 선물을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꼭 감은 채로 자는 척을 하다 정말 다시 잠에 들었다. 시간이 지나 잠에서 깨어 머리맡을 살펴보니, 양말 옆에 커다란 종합과자 선물세트가 놓여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자주 잊어버리는 내가, 아직 그때 기억을 하는 걸 보면 '그때 받은 선물이 정말 마음에 들었었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때 추억 때문인진 몰라도, 나는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아마 태어난 날짜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우연의 일치인지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 또한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내게 '겨울이 왜 좋아'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눈이 오니까."라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 설레는 기분이 든다. 군대에서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는 작업을 할 때도 마냥 좋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겨울에도 눈을 거의 볼 수 없는 곳이라,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눈을 이렇게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러브레터'이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영화 속 주인공의 연기와 스토리도 좋아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이 되는 계절이 '겨울'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설산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내 침대 위엔 '러브레터'의 포스터가 걸려있고, 매 해 겨울이 되면 한 번은 꼭 다시 보는 영화이다.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뿐만이 아니다. 한겨울에 종종 아침에 일찍 눈을 떠지는 날, 창문을 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로 얼얼한 새벽 공기를 맡을 수 있다. 공기는 냄새가 없다고 하지만, 겨울 공기는 다른 계절의 공기와는 조금 다르다. 바깥의 풍경처럼 바싹 마른 듯 하지만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포근함이 배어 있다.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을 때 하얀 입김이 서서히 흩어지는 것도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한 겨울은 한 해의 끝을 함께 하는 계절이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1년 동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겨울이 시작되고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어쨌든 올해도 끝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마음으로 곧 다가올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이 되고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가 어떻게 1년을 보냈는지를 대략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우울해하며, 누군가는 시원섭섭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저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것 또한 겨울이 가진 매력적인 분위기이다.






한 해가 끝나기까지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미리 올해를 돌아보자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인생에서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독립을 하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매일 글을 쓰고, 유튜브 촬영을 하고,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 또 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9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군가 내게 최선을 다해 살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할 선택을 하진 않았다'라고 말이다. 조금 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적'도,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었지만 '해봤던 적도' 있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그 순간엔 걱정도 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축적된 경험과 지식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후회하지 않을 길로 스스로를 이끌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젠 예측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쩌면 예측하지 않는 게 더욱 편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상 여기저기를 비집고 들어오다 보니, 이제는 무언가를 예상하기보다는 '일이 터지면 적절하게 그것에 반응하는 태도'가 몸에 익숙해지고 있다.



'serendipity'. 이 말은 '뜻밖의 발견' 또는 '예상하지 못한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9개월 동안 내 삶엔 아주 다양한 'serendipity'가 존재했다. 예측 가능한 기쁨도 즐겁지만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하면서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한 여러 serendipity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생각지 못한 좋은 결과들도 얻게 되다 보니, 앞으로 남은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충분히 예상 가능한 기쁨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바로 '겨울'이라는 계절 말이다. 첫눈, 차가운 새벽 공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 등 이미 알고 있는 즐거움과 예상하지 못한 기쁨도 생길 그 계절이 얼른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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