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at Sep 21. 2022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의 하찮음


요즘 내가 하는 행동들을 되돌아보면, 마치 늦은 사춘기가 찾아온 듯하다. 과거엔 참고 넘겼을 말이나 행동들도 이젠 거침없이 맞받아치는 일이 잦아졌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왜 그렇게 되는데?"라거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고 질문을 던진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변화들이 나와 타인 모두에게 꽤 괜찮은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늘은 '자신이 믿고 있는 기준의 하찮음'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관계적인 부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라면, "어디까지 참고,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까"일 것이다.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와, 그 사람을 알게 된 계기, 대화를 하는 장소 등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게 된다. 평소 같았으면 화낼만한 일도 웃으며 넘어가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다.



요즘 들어 내가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 '기준'이란 것이 언뜻 보기엔 확고하고 탄탄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내가 겪은 경험과 많은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이 기준은 자신이 특정한 대상에 호감을 가지면 가질수록 겉모습을 바꾸는 특징이 있었다.



당신이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A라는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A를 포함한 여러 명과 대화를 하던 당신은, A가 "난 여자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 '사람들 많은 데서 저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가 뭐야? 별꼴이네' 이번엔 반대로 당신이 평소 좋게 생각하는 B라는 남자와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B가 "난 여자 좋아해"라고 말을 했다고 상상해보자. 이번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지' 아마 그 말에 대해 별생각 없이 넘어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흡연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연인으로 '흡연자'보다 '비흡연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심지어 '담배 피우는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사람들을 꽤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일부는 흡연자를 만나 사귀곤 했다. 담배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 강조했던 자신의 기준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나는 스스로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신념과 기준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특정한 부분에서 굉장히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소한 계기를 통해 그것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평소 무던해 보이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의외의 포인트에서 강한 기준을 갖고 있기도 했다.



과거의 나 또한 그랬다. 예전의 내가 갖고 있던 기준은 '넘어갈 수 있는 일은 넘어가자'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겐 '성격이 좋다', '배려심이 많다'와 같은 칭찬들을 많이 들고 살았다. 맞춰줄 수 있는 부분까지 타인에게 맞춰주는 편이었고, 조금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도 굳이 그것을 끄집어내지 않았다.



이런 성격의 장점이라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받을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했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참았는데도 자꾸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갔고 그런 사람들에게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는, 점점 관계를 끊는데 익숙해졌다.



관계를 끊었다는 사실에 후회해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해줄 수 있는 부분까지 해줬던 사람은 나였기에, 후회가 남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다만 아쉬웠던 점 몇 가지는 있다. '이왕 손절할 거라면 할 말 다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끊어낼 걸'이라는 것과, '속에 있는 얘기를 했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사람이 있진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요즘은 누구를 만나든 간에, 평소 내가 생각하는 바와 관심사 등에 대해 전보다 훨씬 솔직하게 말하며 살고 있다.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기준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감히 장담하는데, 평소 자신만의 기준이 많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다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들 중 대다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살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는데 그 많은 기준들을 모두 지키면서 살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이렇게 믿고 있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어' 요즘은 내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고 있다. "나는 절대 OOO게는 하지 않아" "나는 무조건 OOO게만 할 거야"라고 말하면 말할수록, 그것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때 남들에게 애써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하는 내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한다고 떠벌려놓고,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것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땐 내가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었고, 미리 잡힌 약속도 있다 보니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만약 당신이라면 이런 패턴이 자주 반복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겠는가?



말하지 않으면 변명할 필요도 없다. 변명하고 싶지 않다면 지킬 수 있는 것들만 말하면 된다. 지킬 수 있었던 것들도 때로는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굳이 여러 번 얘기하지 마라.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한 번 이상의 설명은, 타인이 들었을 땐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당신이 그토록 무언가를 좋아하고 원하고 간절했다면 시간이 부족할 리가 없다. 커피를 마셨는데도 여전히 졸린 상태에서 글을 쓰는 나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믿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다만 그 믿음이 평생 갈 거라는 믿음은 조금 내려놓는 것을 추천한다. 믿음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당신의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막지 않길 바란다.



<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이 되었다는 건, 곧 겨울이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