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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11. 2022

나만의 첫 공간, 그리고 10개월


처음. 무언가를 처음 접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기억으로 가공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새겨진다. 다음, 그다음이 전보다 점점 좋아지더라도 처음에 접했던 그 기억만큼 강렬하긴 힘들다. 첫사랑과 관련된 영화나 소설이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려보라. 그만큼 '처음'이란 건,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기 힘든 순간임을 의미한다. 오늘 글에선 "살면서 처음 생긴 나만의 공간에서 있었던 10개월"을 추억해보려 한다.






나는 살면서 늘 혼자만의 공간을 꿈꿔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서 누리는 자유로운 삶'을 바랐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몇 번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도, 어쩌면 주인공인 양치기 '산티아고'가 양치기의 삶에서 벗어나 이집트로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나 자신을 투영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유일한 차이라면 산티아고는 용기를 냈고,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무언가를 하기 전 망설이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야, 그거 해보면 별거 아냐. 용기를 내서 한 번 해봐!" 정작 본인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땐, 그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조언을 듣곤 한다. 내 생각에 용기란, '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쥐어짜낸다'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듯하다. 아무리 자신이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음에도, 마지막 '한 발짝'을 떼는 것은 매번 어려웠다. 내게 있어 그 '한 발짝'은 돈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나는 내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독립을 한다고 해도, 외로움 때문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혼자 살면 숨 쉬는 거 빼고는 다 돈이야, 돈." 내가 독립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이미 혼자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말이었다. 실제로 살아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혼자서 살아보니, 그의 말에도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숨만 쉬면서 보내기엔 하루가 아쉬운 사람도 있지만, 나는 숨만 쉬며 하루를 침대에서 보내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생각보다 돈이 나갈 일이 많이 없었다. 글을 쓰며 마시는 커피 한 잔, 자기 전 마시는 시원한 캔맥주. 만원으로도 '행복하다'라는 감정을 느끼기엔 차고 넘쳤다.






독립을 한 후부터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혼자 살기 시작한 후부터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했다. 주말 점심을 먹으려고 할 때도, 수많은 선택지가 뒤를 따랐다. 밥을 먹을지, 말 지. 배달을 시켜먹을지, 편의점에서 간단히 사서 먹을지. 메뉴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중 무엇을 먹을지. 전처럼 "그럴 수 있지"라고 상황을 유야무야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상황 판단력과 전보다 빠르게 선택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한 번은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변기 위쪽 타원형의 뚜껑을 열어보고 핸드폰으로 불빛을 비춰보니, 이상하게 생긴 줄이 끊어져 있었다. 검색을 통해 '필 밸브', '부구'라는 생소한 단어들을 알게 되었고, 레버를 내렸을 때 물이 내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한 가지 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문제 해결 능력과 새로운 경험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나서 무엇을 하든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행동할 수 있었다. 너무나 피곤할 땐 바로 씻지 않고 방바닥에 누워있기도 했다. 그러다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주말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봐도,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일을 미룬다고 해서 그것을 대신해주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설거지가 귀찮아서 하지 않더라도, 빨래하는 게 귀찮아서 빨래통에 입었던 옷들이 쌓여가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 그걸 해야만 하는 건 나였다. 미뤘을 때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웬만하면 집안일을 미루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올해 2월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에서 생활한지도 9개월쯤이 되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새로운 일을 배우며 전에 잘하지 못했던 능력을 키웠고, 미처 몰랐던 능력도 발견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난생처음 유튜브 촬영을 하러 서울까지 올라가기도, 여러 작가 제안을 받기도 했으며, 500명이 넘는 소중한 구독자 분들이 생겼다. 모임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올해로 치면 10개월, 독립을 한 후 9개월 동안 지난 30년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일들이 내 일상 곳곳에 벌어지고 있었다.



계약 기간 만료까지 3개월이 좀 더 남은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커피를 사러 가면서 미리 집주인 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년 1월 말 전까진 이사를 갈 계획이라고 말이다. 조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사용하는 동안 문제는 없었냐', '건물에 좀 더 넓은 방이 나오면 말해주겠다'라는 식으로 답이 왔다. 그렇게 문자 몇 번을 주고받은 뒤 대화를 마무리 짓고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올해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하다. 결코 평범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것, 그 마무리가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 말이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그랬듯, 나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한 머나먼 여정을 이제야 시작한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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