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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17. 2022

사랑, 그 '이상'과 '현실' 사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만나고 이별을 경험할수록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제는 편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고.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편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은 사랑에 대한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난 주말,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연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벽까지 대화를 나눴다. 어느 정도 비슷한 나이, 늦은 밤, 살짝 취한 상태. 남들 앞에서 쉬이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의 속 얘기를 살짝 끄집어내기에 적당한 분위기였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그중 가장 화두는 바로 '사랑'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기도 하며, 그러다 깊은 관계가 되기도 했다. 별 것 아닌 걸로 웃었지만, 그와 똑같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다, 또 다른 누군가를 떠나보낸 그 사람처럼 새롭게 만났다. 모두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냥 편한 연애.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서로가 있어서 행복한 그런 사랑 말이야." 당신은 어떤가. 말만 들어도 기분 좋고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우리들 대부분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모두가 원하는 이런 사랑을 실제로 했을 때, '정말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생각보다 그것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말이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원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한 가지 쉬운 예를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돈이 아주 많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돈이 많음으로써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부류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즐기는 것처럼, 돈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물욕이 많거나, 어렸을 때부터 돈을 꽤나 써본 사람들이 소비에 대한 만족감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많이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A와 B라는 두 사람이 똑같이 한 달에 1억이라는 돈을 벌고 소비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A는 '1억 도 부족해'라고 생각하지만 B는 한 달에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모두 먹어도 기껏해야 몇 백만 원 일 수도 있다. 즉, 막연하게 "돈이 많으면 행복하겠지"라고 우리 모두가 생각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한 돈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비단 돈만 그럴까.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똑같이 과거에 힘든 연애를 한 A와 B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둘은 전에 만났던 연인에게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결심했다(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대입해도 좋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시간이 흐르고 당신을 정말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겨도, 당신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는가? 아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외모가 당신의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고,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만약 빨리 결혼을 하고 싶다면, 당신의 기준에서 결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을 정말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당신에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지만 정말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당신도 모르게 매달리고 있진 않았는가.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랬었으니까. 정말 진심이 느껴질 정도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오히려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더욱 호감이 간 적도 꽤 있었다. 시답잖은 내 얘기에 경청해주고 해맑게 웃어주며 내게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보다, 다른 이성들에게 둘러싸인 누군가에게 더 애틋한 감정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만나 '어떤 사랑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라는 이상적인 답변을 말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랑은 분명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드물게 그런 사랑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상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라는 것이다. 함께 있기만 해도 행복하고, 바라만 봐도 좋은 그런 연애. 사랑을 막 시작했을 때는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잊어버리곤 한다. 상대를 위한 배려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관철하려 강하게 주장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웃어넘기던 과거와는 달리 "도대체 왜 그래?"라는 차가운 말을, 그보다 더 차가운 표정으로 내뱉기도 한다.



힘든 연애를 한 뒤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해도, 매번 비슷한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들에게 접근한 사람들 모두가 겉과 속이 달라서일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힘든 연애를 반복하는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어서이다.


 




꼭 남들 눈에 예쁘게 보일 사랑만을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남들에게 좋게 보일 사랑을 한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차라리 솔직하게 스스로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인정하는 게 더욱 마음 편할 것이다. "나는 잘생긴(예쁜) 사람이 좋아", "나는 돈 잘 버는 사람이 좋아", "나는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주는 사람이 좋아"라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행동할수록, 힘들어지는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나 또한 정말로 편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예전에 비해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만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어떤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생각해보았고, 예전과 달리 '만났을 때 편할 것 같은 사람'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엔 '남들에게 편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썼다면, 이제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어떤 사랑을 하기 이전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런 사람이야말로 어떠한 형태의 사랑을 하든 간에, 상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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