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강릉으로 가주세요

by Quat


어제 저녁,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았다. 2001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촌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든 수작이었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과정,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모습 등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것이 좋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상우(유지태)은수(이영애)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상우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성격으로 그려진다. 사랑에 빠지긴 어렵지만, 한 번 빠진 후부턴 은수에게 열과 성을 다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은수와 멀어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더 힘들어한다. 헤어진 후에도 계속 은수를 그리워하고, 그를 보기 위해 다시 찾아온 은수의 적극적인 모습에 닫힌 마음을 열기도 한다. 그러나 또다시 헤어짐을 통보받고 나선 순수함을 넘어 지질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만취한 상태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 재워달라고 하거나, 은수의 새 차에 동전으로 스크래치를 내는 등 말이다.



은수는 사랑에 대해 상우보다는 가볍게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먼저 다가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상우에게 자고 가지 않겠냐고 먼저 묻기도 하고, 그 유명한 '라면 먹고 갈래'를 시전 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만, 은수의 선은 딱 거기까지다. 지금보다 진지한 관계를 원하는 상우에게 은수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상우와 만나면서 다른 남자와 몰래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상우의 마음에 부담을 느낀 은수는 그를 멀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우를 찾고 또다시 이별을 통보한다.








영화 초반부에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과정을 보며 나 또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조금씩 엇나가는 걸 보며 상우에겐 답답함을, 은수에겐 분노를 느꼈다. 차 안에서 그녀에게 화를 내는 상우를 보며 '잘했다'라는 마음속 응원을 보내기도 했고, 은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는 상우를 보며 허탈한 감정도 들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에게 안겨 엉엉 우는 상우의 모습이 그렇게 짠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은수와 재회한 상우. 팔짱을 끼며 다시 그와 잘해보려는 은수를 보고도, 뒤돌아서서 걷는 상우가 대견하면서도 씁쓸하게 보였다.







은수와 관계가 틀어진 후부터 상우의 말과 행동에 '제발 그러지 말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영화 속 상우의 친구였다면, 직접 그런 말을 하진 못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상우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했을 때, 머리로는 아니란 걸 알면서도 행동은 다르게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상우를 보며 공감했고, 좀 더 냉정해지길 바랬다.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괴롭고 슬픈지 알고 있기 때문에.



상우가 괴로워하면 할수록, 은수에 대한 분노도 커져만 갔다.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도 늦은 시간까지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거나, 상우를 무시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한 번 이혼을 겪은 은수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다. 자신이 겪은 불행한 과거를 근거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지 않은가. 영화 후반부에 오랜만에 만난 상우에게, 은수가 웃으면서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불쾌했던 장면이었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몰입을 잘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 정도로 몰입하며 봤던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를 현실성 있게 잘 담아낸 영화였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할 땐 대부분 상우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한다는 건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잊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내 마음 한편에 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좋아할수록 그 공간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 사람과의 추억이 많아질수록 다른 것을 둘 공간은 부족해진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헤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작고 작아져서, 한 사람이 겨우 서 있을 정도로 공간은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간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를 들인다는 건 그런 의미다. 이러한 개념을 다룬 영화가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추억을 지울 순 있겠지만, 그 사람과 내가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를 지울 순 없으니까 말이다.








영화 제목처럼 봄날이 지나가고 있다. 영화가 끝난 새벽에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집 근처에 있던 커다란 벚꽃나무에 핀 벚꽃들이 어느샌가 떨어지고 없었다. 봄이라는 계절 중에서 벚꽃이 피었다가 진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약 1시간 50분 간의 러닝타임 중, 상우와 은수가 서로에게 반해 사귀고 사랑했던 시간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1년 중에서 봄, 그중에서도 아주 짧게 피고 지는 벚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헤어진 후 오랫동안 이별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별하고 아파한 뒤 다른 사람과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가진 모순인 동시에 위대함인 것이다. 현실에서의 봄은 지나가고 있지만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움직인 상우처럼,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빨리 나타났으면 하는 기대를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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