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놈. 박자를 지정해 주면 그에 맞춰 뚝딱거리며 정확한 타이밍을 알려 주는 소형 기계.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초등학교 음악실에서 메트로놈을 본 기억이 난다. 성인 남자 중 손이 크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사람의 중지 끝에서부터 손목까지의 길이보다 조금 더 컸었던 그것은, 음악실 구석진 곳에 있는 찬장 안 뽀얀 먼지와 함께 들어있었다.
메트로놈은 단순하다. 움직임이 단 두 가지뿐이다. 멈춰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좌우로 움직이거나. 은색 빛깔을 띤 기다란 막대기가 똑딱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걸 계속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균일한 속도로 왼쪽 어느 위치까지 내려간 막대기가 무언가에 튕겨지는 것처럼 다시 반대로 움직이더니, 이번에는 오른쪽 어느 위치까지 내려간다. 이것을 무한대로 반복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길어야 몇십 초 후, 우리는 이 단조로운 움직임에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움직임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중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정답과 오답.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흑과 백. 나의 생각과 내 생각과 다른 생각. 나는 그들을 일명 '메트로놈 인간'이라고 부른다.
메트르놈 인간들은 완벽을 추구한다. 틀에서 벗어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영어를 시작한다고 말하면 문법만 잘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조언한다. 의사소통은 기본이고 발음까지 완벽해야 한다. 설령 누군가가 그 모든 걸 해낸다고 해도, 그들은 빈틈을 찾아내는데 선수들이다. 그저 단 한 마디면 상대방이 완벽하다는 걸 부정할 수 있다. "미국식 영어는 잘하는구나. 그럼 영국식 영어도 할 수 있어?"
메트로놈 인간들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들은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운전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청소를 잘하는 사람 등 말이다. 이 글에서 모두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메트로놈 인간들은 존재한다. 메트로놈 인간은 매우 합리적으로 움직이며,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한다. 여기 한 회사 사무실에 새로 구입한 화분을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으려는 사람과, 그 사람을 본 메트로놈 인간이 있다.
"화분은 왜 그곳에 놓으세요?"
"왜 화분을 여기 놓냐고요? 지금까지 여기에 화분이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화분을 놓는 게 비효율적이라곤 생각 안 하세요?"
"예?"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 뒤) 화분이 거기 있으면 햇빛을 제대로 받질 못하잖아요. 게다가 거기에 화분이 있으면 물을 줬을 때 바닥에 흘러 너무 칠 수도 있고요."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전에 화분이 여기 있었을 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는걸요."
"물론 지금까진 그랬겠죠. 하지만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보장이 있다고 장담하세요?"
"그거야..."
"제가 집에서도 화분을 좀 키우고 있어서 아는데 거긴 정말 별로예요. 그러니 제 말 듣고 이쪽에 화분을 놓으세요. 전보다 훨씬 더 잘 자랄 거예요."
"음... 그렇게 자신 있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네... 아까 말씀드렸을 때 바로 옮기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오늘 제가 목 상태가 좀 안 좋은데 여러 번 같은 말을 하니까 힘이 드네요..."
"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하니까요..."
"뭐, 됐어요. 이미 다 끝난 일인데요. 그럼 전 갈게요."
"네, 네... 그럼 수고하세요."
메트로놈 인간은 뒤돌아 자신의 자리로 가면서 생각한다. '이 회사에선 내가 없으면 화분 하나도 제대로 놓을 줄 아는 사람이 없다니!'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말이다. 멀어져 가는 메트로놈 인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은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이다.
메트로놈 인간은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불안정한 것을 싫어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모든 것을 배척한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메트로놈 인간들만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아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메트로놈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같은 메트로놈 인간이기 때문이다. 메트로놈의 효율성은 자신의 기준에서 나온 효율성이다.
메트로놈 인간끼리 대화를 나누면 언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자세히 듣고 있으면, 두 사람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차피 같은 얘기인데 도대체 왜 싸우는 것이냐?"라고 말이다. 이건 메트로놈 인간에 대해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메트로놈 인간은 결과가 같다고 해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집안 청소를 할 때 집을 완벽하게 청소하려는 생각은 둘 다 같다. 하지만 그들은 청소를 하기 전에 다툰다. 무엇 때문에? 청소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순서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방에서부터 시작해 거실, 안방 청소가 맞다고 생각하는 메트로놈 인간이 있고, 반대로 안방부터 시작해 거실, 주방부터 청소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메트로놈 인간이 있다. 혹자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평생 그들은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그렇게 청소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트로놈 인간들은 자신과 같은 메트로놈 인간을 생각보다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非) 메트로놈 인간을 주변에 가까이 둔다. 비 메트로놈 인간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군말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여기에도 단점은 있다. 비 메트로놈 인간은 효율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을, 그들은 두 번이나 심지어는 세 번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허허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메트로놈 인간은 그들을 위해 매사에 모든 것들을 지시한다.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미리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두 번씩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때로는 자신의 말을 듣고 그들의 표정이 굳는 것을 볼 때도 있다. 메트로놈 인간은 그것까지 눈치채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벽하니까. 누군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는 건 당연히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다. 비 메트로놈 인간들을 위해서 말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점점 주변에 비 메트로놈 인간들이 보이질 않는다. 불편했겠지. 한편으론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말을 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런 감정들은 애써 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당장 눈앞에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오늘도 메트로놈 인간은 치열하게 하루를 완벽하게 살아야만 한다. 왜냐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만 하니까.
마지막 남은 비 메트로놈 인간도 곁을 떠났다. 어찌 보면 주변 모든 것이 완벽해졌다. 비록 내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무.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정립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이다. 전에는 내가 어떤 의견을 내면, 내 말을 들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진 못했지만, 가끔은 그들과 함께 웃었던 시간도 있었다. 완벽하게 효율적이진 않았지만 그 시간이 썩 나쁘진 않았었다. 아주 가끔 비 메트로놈 인간들이 내는 의견 중에선, 내가 낸 의견보다 더 괜찮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을 반영하기엔 너무 늦어서 못 들은 척한 적도 있었다. 아니, 사실은 나보다 더 효율적인 생각을 그들이 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의견을 냈다는 걸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와서 그런 사실을 떠올려봤자 늦었겠지만 말이다.
신기한 일이다. 어느 때보다 완벽한 순간이며,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도 전혀 기쁘지가 않다. 오히려 조금씩 어긋나던 일상이 때때로 그리워진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때가 생각난다. 비 메트로놈 인간들이 내 말을 듣고 고맙다고 말해주던 날, 나도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머리를 짜내던 순간들이. 순간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린다. 똑. 딱.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기 위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는 근원지가 어딘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화장실로, 베란다로, 다른 방도 가봤지만 여전히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또렷하게 귀에 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몸무게만큼 정확히 소파가 안으로 꺼졌다. 이것조차 짜증이 났다. 왜 모든 것들이 정확한 걸까. 지금 귀에 들리는 똑딱거리는 소리부터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반듯하게 각이 잡혀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내 몸에서 나는 소리였다. 완벽하게 고요한 주변 환경 덕분에 심장 박동조차도 일정하게 울리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숨을 참았다. 몇 초, 몇십 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났을 무렵부턴 다시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미친 듯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숨을 뱉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1초만 더. 한계까지 다다랐을 때 드디어 똑딱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그와 동시에 팽팽하게 부푼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오며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밤을 새웠다. 누군가 들었다면 숨을 왜 저렇게 쉬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불규칙적으로 호흡을 하면서.
똑똑.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세 번째가 돼서야 비 메트로놈 인간은 자신이 들은 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살짝 들어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 시간에 도대체 누가? 누군가 찾아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일단은 소리가 들렸으니 대충 옷을 입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메트로놈 인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비 메트로놈 인간을 보니, 메트로놈 인간은 갑자기 모든 용기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메트로놈 인간의 입술이 아주 힘겹게 떨어지며, 그와 같은 부류에 속한 인간이 살면서 한 번 하기에도 힘든 말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미안해."
"뭐...?"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왔어."
또다시 한참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메트로놈 인간은 이때 사람의 심장이 이렇게나 빨리 뛸 수 있다는 걸 난생처음으로 알았다. 그렇게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가 이번엔 비 메트로놈 인간이 천천히 입을 열고는, 그와 같은 부류에 속한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을 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리고 뒤이어 그 상황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말을 건넸다.
"들어와. 커피라도 한 잔 하게."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전개에, 메트로놈 인간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계단을 오르려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보는 메트로놈 인간의 실수를 보곤 비 메트로놈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가 이내 상대방의 표정을 보곤 황급히 입을 다물고는 말했다.
"미안해... 처음 보는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잘 익은 딸기도 이렇게 빨개질 수 없을 것 같은 붉은 얼굴을 한 채 메트로놈 인간도 애써 웃는 표정을 짓고는 양손을 앞으로 뻗은 뒤 부정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냐, 아냐!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
그의 말을 들은 비 메트로놈 인간은 흠칫 놀라더니 이윽고 미소를 띠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그러자 메트로놈 인간도 아까보단 붉은 기가 조금 가신 얼굴로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그 말을 끝으로 비 메트로놈 인간은 그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좀 더 열어주었고, 메트로놈 인간도 다시 중심을 잡은 뒤 집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조용히 문은 닫혔다.
메트로놈 인간과 비 메트로놈 인간은 어떻게 됐을까? 화해를 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화해를 했더라도 후에 또 다른 일로 완전히 갈라서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대로 평생 절친한 사이로 지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이야기 자체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바랬던 점이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세상엔 항상 완벽한 사람도, 항상 부족한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다. 메트로놈처럼 사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 이 세상엔 한쪽에 속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