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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Nov 13. 2022

당신의 곁에 누가 있든, 외로울 때는 있다


그런 말이 있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롭다면, 그건 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디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 아주 큰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아무리 부어도 독에 물을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진심을 담아 사랑해도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오늘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매일같이 사람을 만나고, 여러 취미생활을 즐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피곤한데도 그러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곤 한다. 피곤하면 혼자 좀 쉬면 되지 않냐는 물음에, 그들은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라거나 "그러면 외로워서"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곤 했다. 즉, 그들에게 있어 '혼자 있는 시간'이란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인 것이다.



사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매우 상이하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꽤나 즐기는 편이고, 오히려 그러한 시간이 줄어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말을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에게 하면, 그들은 나를 부러워하거나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로움을 아예 느끼지 않냐고 하면, 결코 그렇진 않다. 아주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하면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본,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앞서 말한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는 건, 혼자 있을 때 별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를 말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결코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오후 11시쯤인데,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해야 할 것들을 마무리 짓고 나면 대략 그 시간이 된다. 그때부터는 집을 조금 다르게 바꾸기 시작한다. 밝은 조명을 끄고 은은한 빛이 도는 무드등을 켠다. 노트북을 펼쳐 둔 채 유튜브로 가사가 없는 재즈풍의 연주 노래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생한 뒤,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노닥거리곤 한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침대 곁에 두고 눈을 감는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본 그들 대부분은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몸을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쓰는 편이었다. 그들의 '혼자 있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학원을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강습을 받는 등 어느 정도 사람들이 있는 환경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식이었다. 만약 혼자 있더라도 멍을 때리거나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들과 만나 대화를 할 때도 공통적으로 겹치는 모습들이 있었다. 바로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종 카페에서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말을 할 때는 괜찮다가도, 막상 내가 말을 하고 자신이 듣는 상황이 오면 좀 전과는 다른 행동들을 하곤 했다. 휴지를 만지작거리거나(잘게 찢기도 했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등 말이다. 나 또한 한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있다 보면 불편해서 잠깐 움직이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그렇게까지 시시각각 다른 행동들을 바꾸지는 않다 보니 그들의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조로 얘기하는 것, 타인의 감정에 굉장히 깊게 몰입한다는 것(누군가의 슬픈 얘기를 듣고 이입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잦거나)도 있었으며, 관계적인 면에서 자신이 우위에 서기 위해 신경 쓰는 등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들 또한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시실 '외로움을 잘 탄다'는 건 혼자 있을 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힘들 순 있겠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 연애를 할 때 하는 가장 큰 착각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지금보단 외롭지 않겠지"라는 것이다. 평생 살면서 자신조차 극복할 수 없었던 원초적인 부분을, 단지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을 받으면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 매우 큰 착각이다. 왜냐하면 외로움이라는 건 우리 삶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느낌이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든 없든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 닥치면 자연스레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혼자 있을 때도 외로웠는데, 지금 곁에 누가 있는데도 외롭네. 그렇다면 이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드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부터는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자신이 외롭지 않기 위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다. 상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어 하고, 자신이 상대를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 또한 자신을 신경 써주길 바란다. 그것이 상대를 힘들게 한다는 건 알면서도, 스스로가 외로움 때문에 점점 불안해지는 것이 두려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그렇게 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태에 빠지기 쉬워진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행동 때문에 점점 더 자신을 멀리하는 상대를 보며, "너도 전에 만났던 다른 사람들처럼 날 떠나가겠지"라며 상대에 대한 원망을 하고, '남자(여자)는 다 똑같다'는 둥 세상을 더욱 비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 알아둘 것은 단 하나다. 누구를 만나든 간에 지금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은 결코 그 사람으로 인해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외로움을 덜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적인 수단이라는 게 내 입장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보다 외로움을 덜 타는 사람이 되는 건 오로지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단지 곁에 누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외롭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자신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인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랑을 하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또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라고 감히 단언한다.



당신의 곁에 누가 있든, 외로울 때는 항상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주 넘어져서 다리에 상처가 잘 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 넘어져서 상처가 날 때마다,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치료를 해준다고 한들, 어차피 넘어지면 상처는 또 난다. 애초에 넘어지지 않도록 잘 걷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상처 난 다리에 연고를 발라주던 사람이, 어쩌다가 연고를 발라주지 못했을 때 "넌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단정 짓는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않길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당신의 외로움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외로움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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