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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Dec 03. 2022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함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이 주는 특유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아지고 있다. 퇴근 후 가사가 없는 잔잔한 노래를 틀어둔 뒤 밝은 조명은 끄고 무드등만을 켠 채 멍하게 앉아있으면, 기분 좋은 한숨과 함께 하루 종일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공간, 음악뿐만 아니라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만남"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가면'을 하나 이상 가지고 살아간다. 회사에서의 '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의 '나', 친한 사람들 앞에서의 '나' 등등.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과연 내 진짜 모습은 뭘까?"



물론 각각의 상황에서 나오는 자신의 모습들 또한 '나'에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나오는 '맞춤형 나'이지, '진정한 나 자신'이라 보기엔 힘들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가면을 벗을 때는, 자신의 심신이 가장 편안한 상태일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것에 대해 처음으로 느꼈던 건, 몇 년 전 상담 일을 할 때였다. 상담 일을 하기 전 첫 직장에서 사람과 일에 치여, 몇 달만에 타지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나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심장이 빨리 뛰곤 했었다.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신경 썼으며, 자세는 위축되어 있었고, 목소리엔 자신감이라곤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상담 일을 시작하면서, 내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삐걱거릴 때도 있었지만, 방문한 손님들로부터 '말을 잘 들어준다', '목소리가 좋다', '섬세하다' 등의 칭찬을 들으며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구나'라는 자기 확신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매일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종종 퇴근하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다.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과도 장난을 치며 즐겁게 지낸 것 또한 내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점차 일에 적응을 하며 긴장이 풀리자 다른 사람들과도 조금씩 농담을 하며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사적으로도 따로 볼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매우 불안정하고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던 상황에서, 매일을 웃으며 즐겁게 지내는 환경으로 바뀌자 어느 새부터 나는 평소에도 묘하게 들떠 있던 상태가 되었다. 속에서부터 들끓는 에너지와 텐션을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출근만 하면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을 웃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농담을 던지고, 내 농담을 듣고 상대가 깔깔대며 웃는 것을 보며 뿌듯해하곤 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완전히 방전된 상태가 되어,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씻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다시 잠에 드는 나날이 이어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 같이 상담 일을 했던 직장동료 한 분을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땐 상담 일을 할 때보다 훨씬 차분한 상태였고, 내 그런 모습이 어색했던 상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XX 씨는 그때가 훨씬 더 재미있었는데."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짓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분이 했던 말처럼, 나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보다 내 일상은 훨씬 더 균형 잡혀 있었다. 과거에 상담 일을 할 때만 해도 나는 누구보다 텐션이 높았었지만, 퇴근 후엔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타고난 성향, 평소 편안할 때의 모습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일과 사람에게 사용하고 있었기에, 집에서는 그만큼의 충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는 게 즐거워서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사용해야, 저녁뿐만 아니라 다음날까지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지 말이다. 타고난 성향과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 만났을 때 유독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가진 특징과 내가 좋아하는 대화 주제까지, 나라는 사람이 '진정한 나'로 행동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과거보다는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억지 텐션'을 끌어올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피곤해지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무리해서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있든, 무슨 말을 듣든 간에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비슷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조금은 분위기가 무겁거나 진지해지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런 생각을 갖고 살게 되었을 때 본인의 삶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다. 모든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인 채로 말을 걸었을 때, 상대방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대답을 해주길 원한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와 친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땐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솔직한 자기 심정을 말하거나, 평소보다 대화에서 좀 더 진중한 모습을 보일 때. 그럴 때야말로 '조금 더 가까워졌구나'라는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중요한 건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당신 또한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 또한 갖춰야만 한다. 상대가 아무리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도, 자신이 말을 꺼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바이다.



솔직하다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 솔직해질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지나친 솔직함은, 오히려 드러내지 않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인지하고, 자신과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며, 호기심을 이유로 들어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것을 지킬 수 있다면, 당신 또한 답답한 가면을 훌훌 벗어버리고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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