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시간'엔 저마다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상대와 만난 지 1~2시간 만에 마음을 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몇 달이 걸려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단지 '낯을 가린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향이더라도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처음엔 말수가 적고 부끄럼이 많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없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친해지는 것과 마음을 여는 것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금보다 훨씬 예전엔, '친해진다는 것'이 '마음을 여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상대를 편하게 대하면서 함께 한 추억이 쌓여가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하는 등의 행동들이 '내가 이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구나'라고 여기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에 의문을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 내게 있어 친한 사람들 중 하나인데, 그런 사람과 만나면 '솔직한 나'를 드러내는 게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고민들을 자주 말하거나, 서로가 알고 있는 지인의 험담을 속닥거리거나, 내 생각이나 행동들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것들이 반복되자 그들을 만나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분명 그들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나와 함께 한 시간들이 적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나 또한 그들을 편하게 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친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나', '솔직한 나'를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낸다는 건 내겐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상대방이 싫어하고 불편해할 것이 뻔히 보인다면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내게 가장 부담스러웠던 건 내가 느끼는 상대방에 대한 친함보다, 상대방이 내게 드러내는 친밀감이 훨씬 더 클 때였다. 친하다는 게 꼭 알고 지낸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몇 번 만난 적도 없는데, 마치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처럼 선을 넘는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점점 그들에 대한 마음은 굳게 닫혀만 갔다.
과한 친절이나 배려, 선을 넘는 짓궂은 장난, 예의 없고 무례한 행동들. 누군가와 친하다고 생각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것들이 본능적으로 나오곤 한다. 자신과 결이 비슷하며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이런 행동들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에 비해 마음을 여는 속도가 아주 느린 상대를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화를 통해 잘 풀릴 수 있다면야 다행이지만, 서로 오해가 쌓이고 쌓여 관계가 끊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엔 선이 없지만,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야 뚜렷한 '자기만의 선'이 존재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친절함과 배려를 보고, '나를 좋아하니까 이렇게까지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일 수 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사람 자체를 좋아하기에 타고난 친절함과 센스를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성향의 사람이든 잘 맞춰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본적인 친절함이 많을 뿐, 알면 알수록 이들의 기준에서 '친한 사람'과 '더 친한 사람', '더욱 친한 사람'이 나뉜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이들과 친해지고 싶다면 단 2가지만 기억하라. '선을 지키는 것', '기다림'. 그들이 당신에게 보여주는 다정함을 이유로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 것. 그들이 당신을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줄 것. 처음 당신이 그들과 친해진 시간보다, 그들이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질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이 2가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들 또한 당신을 처음보다 훨씬 좋게 생각할 것이며, 전보다 훨씬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친해졌다고 해서 모두가 그만큼의 속도로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니다. 친함과 마음을 여는 속도가 비슷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때로 자신이 상대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해서, 상대 또한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음을 열고 대하길 막연하게 바라곤 한다. 그로 인해 별 것 아닌 것으로 서운함을 자꾸만 토로하거나, 계속해서 바라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건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호감이 있다는 이유로 받을 준비조차 되지 않은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자꾸만 전달한다면, 상대에겐 그러한 언행이 부담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기다림이 필요한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 아닐까.
